2013년 한국의 성인 영화와 그 주변

2013.07.13 18:23

하룬 조회 수:3642

1. 여배우

좀처럼 일이 손에 안 잡혀서 영화를 본다는 게, 이상한 남자들이 여자들과 이상한 관계를 맺는 영화들만 세 편을 내리 봤습니다.

처음에는 짜증, 나중엔 허무한 폭소, 종내엔 피로감으로 점철된 감상이었지요.

에로비디오의 유제 위에서 제작된 것이 틀림없는 이들 영화는, 어딘가 똑같이 생긴 여배우들과, 판타지와 욕망을 결국은 실현하고마는 남자 주인공 캐릭터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대체로 멀끔하게 생긴 남자 배우와 달리,

여배우들은 모바일 섹시 화보(이통사 콘텐츠 매출 중 가장 쏠쏠한 영역!) 속에서 많이 보던 얼굴이더군요.

결론적으로 별로 안 예뻤다는 말인데, 사실 이 영화들 속에서 그녀들은 빼어나게 예쁠 필요가 없었을지 몰라요.

대부분의 영화에서 중요하게 촬영되는 몸 부분은 '얼굴'이 아니었기에...

(그런데 왜 가슴 큰 주인공들을 안 썼는지 모르겠어요. 수술한 가슴이 없는 거 같던데...)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한국 에로비디오 시장의 팽창 속에 '스타 배우들'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소연(하유선)은 에로비디오에서 얻은 인기를 기반으로 지상파에까지 '진출'하고자 했으며, 그녀 선배뻘 진도희 역시 여균동을 비롯한 '주류' 감독들의 캐스팅 순위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죠.

유리(성은) 역시 빼놓을 수 없을 거에요.

요새 성형한 얼굴관 달리, 그녀들은 정말 예쁘더군요. (저랑 동시대 분들은 아닙니다)

아... 스타는 실로 특정 시대의 산물이에요.

 

요새 일본 AV 에서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예쁜 언니들이 많아서 그런지,

예쁜 여배우들 없이 만들어지는 이런 영화들은 얼마간 슬프고 애잔한 느낌을 줍니다. 

 

2. 그러나 익숙한 '텐프로 얼굴'의 미학?

과거 휴대폰 WAP시절, 모바일 화보를 비롯한 몇 가지 기초 콘텐츠들을 월별로 무료 제공하는 서비스('SKT 프리존'이라고...)에 가입한 적 있었는데,

잠 안 올 때 가끔 "스타 화보"나 "그라비아 화보" 같은 걸 보곤 했어요.

그 상투적이고 지루한 형식의 사진들,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포즈들을 계속 넘기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지고 잠이 왔거든요.

성적 흥분보다는 어떤 '익숙함'과 '편안함'... 혹시 이게 이런 콘텐츠들의 전략인가?!

 

예전에 한 친구가, 얼굴을 대폭 성형한 것으로 유명한 모 배우를 가리켜,

"그 여배우가 데뷔한 뒤, 강남 텐프로 언니들의 얼굴 트렌드가 바뀌었다. 즉, 남자 고객들이 견디어낼만한, '성형한 얼굴'의 수위가 확 상승한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만큼 익숙한 '텐프로 얼굴'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합리화된 캐스팅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싶네요.

 

3. 가장 중요한 건 시장 규모

지루하고 재미없다며 타박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1990년대 영상문화의 이면을 거대하게 장악하고 있었던 게 에로비디오이듯,

이런 "한국 AV"(yes24 영화 다운로드 사이트의 분류체계 중 하나), 혹은 유사 성인물이 모르긴몰라도 오늘날 '인터넷 다운로드 문화'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겁니다.

패킷비용만 내서 공짜로 다운받는 일본 야동에 비해 열세일 것같긴 하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걸 보면 신통방통하고, '물산장려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나 싶을 정도예요.

(매뉴팩쳐 이전 단계에서 조악하게 만들어진 '셀카 야동'을 벗어나, 일제, 미제 야동으로부터 독립할 길은 이런 영화들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효?!)

그치만 제가 혀를 끌끌 차면서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무수한 모텔, 케이블 유료 채널,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나름 먹고 살 만큼은 팔리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런 수치는 어디서 찾아볼 수 있나 모르겠군요.

 

 

제가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아 에로비디오 시대를 살진 못했기에

이래저래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네요. 풀어야 할 질문들도 많고.

 

 

비는 종일 주룩주룩 우울한 날들이군요. 전 다 됐고, 이따 그냥 오리지널 <이블 데드> 같은 거나 하나 보고 자고 싶습니다. 집에서 팝콘 하나 튀겨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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