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글 씁니다.



2개월 남짓의 짝사랑이 오늘로서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 분은, 저에게 정말로 관심이 없으십니다. 
지금까지 저와 했던 대화들도 모두 동료로서의 대화 그 이상은 아니었어요.




오늘, 조심스럽게 지난번에 약속했던 제가 저녁 사겠다는 것... 혹시 내일이나 이번 주말 어떠시냐고, 시간 가능하시냐고 묻자

조금 곤란해 하시면서, 어제부터 일을 하나 새로 맡았는데 
이번엔 마감 기간이 급한 일이기 때문에 주말에는 그 일에 매달려 있어야 할듯 싶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프리랜서 일도 하시거든요)



그 순간, 진심으로 실망하고, 진심으로 자존심 상했습니다. 



다른 분들도 제가 예전에 많이 망설이며 고민할 때 리플로 용기 북돋아 주시면서 말씀해 주셨지만... 

(동료끼리) 밥 한끼 같이 먹는거... 그렇게 어려운 일이, 그렇게 큰 일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때 정말로 큰 용기를 내어서, 거의 제 인생 처음으로 그 정도로까지 용기를 쥐어 짜내어서, 
제가 저녁 한번 사겠다는 말을 했었잖아요.
그런데 지난주에는 (일이 끝났기 때문에) 친구와의 술 약속이 있어서,
이번주에는, 새로 맡은 일이 바빠서... 입니다.
몇 시간동안 먼 곳에서 데이트 하자는게 아니잖아요.  
가까운 곳에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십니다) 그냥 간단히 같이 밥 한번 먹자는건데...
그것도 제가 사겠다는 것인데...
빠르면 한 1시간? 정도면 될텐데.

저와 일하는 곳이 아닌 곳에서는, 저와 단 둘이 있는 상황 자체를 꺼려하신다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순간 온 몸으로 깨달았지요.

이 분은, 정말로, 진심으로, 내가 그분에게 그동안 보였던 호감을 잘 알고 있지만
나에게 그만큼의 관심은 없는거구나...
게다가 내 성격상, 당시 얼마나 큰 용기를 냈었는지도 잘 알면서도
내가 보이는 호감 만큼의 관심은 전혀 없구나...
그냥 내가 먼저 대화를 유도해 내면 거기에 대한 대답만 했던 거구나...



결심했습니다.

같이 일하는 이상, 계속 얼굴은 보겠지만요
그리고 혼자서 미친듯이 두근거리는 마음도 아마도 당분간은 여전하겠지만

내가 저분을 좋아하는 것 만큼
저분은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
저분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이렇게 계속 반복해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녁을 이쪽에서 사겠다는 약속을 이미 한 이상, 게다가 같이 일하는 이상
언젠가는 같이 밥을 먹으러 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지금처럼 매 주말오기 전마다, 이번주 시간 되시냐고 먼저 묻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대화도 최대한 일 관련해서만 필요한 만큼만 할 거고, 제가 먼저 대화를 걸지 않겠습니다. 
답문을 제외하고는 문자도 먼저 보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다만 너무 아쉬운 것은...


내가 아무리 예전에 먼저 밥 한번 사겠다고 약속했다 하더라도
내가 지금 하는 것처럼 이번 주말 시간 되시냐고 묻지 않는 이상은

둘이서 같이 밥 먹을 일은 아마도 영영 없을것 같은데...


같이 밥 먹을때 하려고 준비했던 여러 대화 소재들, 거울보고 연습했던 여러 표정들, 
어떤 옷을 입고 가면 좋을지 이것저것 예쁜 옷들 준비했던 것, 화장이랑 헤어도 어떻게 할지 생각했던 것들...
이런것들이 많이 아쉬워요.
대학 때 전공 이야기... (당연히 지금 하는 일과는 관계가 전혀 없는 전공이거든요. 제 전공에 호감을 보이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 일 하기 전에 했던 일 이야기...
외모 때문에 대인공포증이 심했는데 이번 일 시작하고 나서 많이 밝아지고, 무엇보다 사람 대하는 법을 배워서 감사하다는 이야기...
좋아하는 영화, 음악 등등...
그리고 밥 먹으면서 그분에게 자연스럽게 물어보고 싶었던 그 분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도 많았는데.
혹시라도 둘 중 하나가 일 그만둔다 하더라도, 앞으로도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으니 꾸준히 서로 연락 했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들도 모두 하고 싶었는데...


아마 어렵겠지요. 아마도요. 아마도요.




하지만, 저의 외모와 관련된 자기 비하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화장을 딱히 하지 않고 그냥 선크림만 바른 상태로 일하러 가도, 안경을 벗은 이후에는 
손님들이 저에게 큰 눈이랑 깨끗한 피부가 정말로 예쁘다고, 제 외모에 대해서 칭찬을 해 주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오늘도요.

그리고 예전에 안경을 쓰고 있을 때에도, 듀게에도 한번 깨달음에 대한 글을 올렸던 것처럼
http://djuna.cine21.com/xe/?mid=board&document_srl=4198091
저보고 예쁘다고 말씀해 주신, 제 인생에 있어서 첫 번째 남자분인 어떤 고마우신 손님도 있었고요
(그런데 저는 그때 제가 좋아하는 분을 머리속 한가득... 생각하면서 방실방실 웃고 있었어요...^^;; 생각해보니 참 이것도 아이러니네요.)


그냥 제가 혼자서 좋아하던 그 분은, 아마도 다른 대다수의 남자분들의 여성 취향이 그러한 것처럼 
체구가 작고 마른, 전형적인 미인 타입의 여자분들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그러겠지...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항상 그랬지만, 짝사랑 시작하고 나서 더 뼈저리게 느낀게 뭐냐 하면.

거리의 수많은 연인들을 보면... 그리고 행복한 부부들, 젊은 엄마 옆에서 아장아장 걷는 예쁜 아기들을 보면 
마음 한 켠이 너무나 아플 정도로, 너무 허하고, 너무 쓸쓸해서, 
꼭 왈칵. 눈물이 주르르 나올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나는 이렇게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었는데,
다른 이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예전보단 많이 나아진 것인데, 


저는, 항상,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는 있지만
아무도 나를 사랑할 수는 없을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거든요.

저는 저의 커다란 체구와, 다행히도 고도비만에서 경도비만으로 내려간 지금의 살집많은 몸매와, 
얼굴에서 큰 장점인 예쁘고 큰 눈과, 흰 편인 깨끗한 피부와, 커다란 손발과, 커다란 얼굴과, 숱 없는 부시시한 곱슬머리가 

진심으로 마음에 듭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만큼, 타인이 나를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말자...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주기만을 기다리면서 슬퍼하지 말자...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 어떤 고마우신 남자 손님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저에게 예쁘다고 말해주었던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예쁜 웃음을 짓고 있었는지 생각하며...
앞으로도 자주 활짝 웃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쁜 옷들을 사는 것은 아직 무리예요. 체구가 크니까, 빅사이즈 옷들이랑 신발은 아시다시피 가격도 좀 있는 편들이거든요. 
그리고 앞으로 열심히 살을 더 빼서 정상체중으로 내려가고싶은 욕심도 있어서요.

하지만 화장만큼은, 큰 가격 부담이 없는 만큼, 동생의 도움을 받아서 조금씩 배우려고 합니다. 하다보면 늘겠지요.
특히 저의 가장 큰 장점인, 얼굴에서 가장 예쁜 부분인 큰 눈을 너무 티나지 않게 강조할 수 있는 눈화장 법을 배우려고 합니다.
(지난번에 처음으로 렌즈 착용하고 갔을때 동생이 눈화장을 참 예쁘게 잘해주었거든요^^;;)
렌즈를 착용하고 나니 눈화장을 조금이라도 했을 때와 안했을때, 거울속 제 모습의 차이가 엄청나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던 기억이 나서요.

아마도 그동안 거의 화장을 안 해서, 피부가 트러블 없이 깨끗하고 좋았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의 저는 진심으로 조금이라도 변화하고 싶고, 예쁘게 화장해서 얼굴을 예쁘게 꾸미고 싶어요.




짝사랑을 하고 있다고 처음으로 깨달았던 이후 지난 두어달 동안, 

매일 매일이 기적 같았고, 매일 매일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습니다.

굉장했어요.

지난 두어달을 생각해보면 한 일년은 고스란히 지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매일 제가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적어 놓았어요. 
마치 작가들이 공들여서 소설을 쓰듯, 하루하루 행복하게 기록을 했습니다.
그 양이 지금 보니 엄청나네요...;;

엄청난 분량의 짝사랑 기록들...  지금 다시 읽어본다면 상당히 가슴이 쓰라리고, 
당시에는 누가 봐도 뻔한 신호들을 (듀게 분들도 리플로 많이 지적해 주셨지요.)
그저 혼자서 행복한 마음에 무시하고, 내가 보고싶던 것들만 봤던 실수도, 그 글들에는 고스란이 적혀 있겠지만...


이 기록들 만큼은 버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중에, 백발의 등 굽은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 제가 기록했던 이 글들을 읽어본다면, 정말로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 땐 이미 그분의 얼굴도, 이름도 희미해져 있겠지요.



비록 그때도 지금처럼 제 옆에는 아무도 없다 해도... 

아니면 그렇게 혼자 사는 할머니가 되어서 까지도 
다른 어떤 홀아비 할아버지;;를 향한 짝사랑 감정에 힘들어한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괜찮을 것 같아요.




비록 제가 사랑한 만큼 돌려받지는 못했지만

저는 진심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고, 사랑 했었고, 그렇게 사랑이란 행복한 감정 안에서 세상이 정말로 아름답다고 느꼈거든요.

그리고 저는 지금에서야 저 자신을 좋아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으니까, 

할머니가 된 그때쯤이면.... 온전히 저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짝사랑 하기 시작하면서는, 책 한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이어리에 매일매일 글 쓰느라고요;;)

운동도, 주로 유산소 운동만 해서, 고도비만이라 초반부 상당히 빠르게 부피가 줄었지만, 물렁한 살들은 여전해요.
이젠 근력운동을 조금씩 다시 시작하려고요.
예전에는 근력운동을 병행해서 하다가, 역시 나같은 고도비만 환자들은 초반에 살을 빼려면 유산소 운동이 최고인것 같아! 
이러면서 걷기 운동 위주로 올인했던 거거든요.
일단 제가 목표로 잡은 초반부 체중 줄이는 것은 성공 했으니, 근력운동이 필수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분에게 정말로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매일매일이 놀라운 나날들이었거든요.

소극적이던 제가 이렇게까지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스스로에게 정말로 놀랍습니다.





이렇게 듀게에 연재되던(?) 제 짝사랑 시리즈 글들은 오늘로서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정말로 고마운 여러 조언 말씀 주시고, 또 저에게 큰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 주셨던 수많은 듀게 분들에게, 

라곱순은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소극적이던 제가 이렇게까지 용기를 내서 조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었다는 그 자체가, 저에게는 큰 기적 같습니다.



라곱순 올림







p.s.

집에 오면서 치즈케익 하나 들고 왔어요... 먹으면서 울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실연 당했을때 달고 맛있는 것들을 먹는지 알겠더라고요. 
입에서 착착 감기면서 사르르 녹는 치즈케익을 씹어서 삼킬 때마다, 머리속에서 뭔가 달콤한 호르몬이 분비가 되는 느낌?

하지만 그러면서 왜 울었냐;;; 치즈케익이 너무 맛있어서도 울었고...

난 생각해보니 이건 진짜 실연도 아니잖아... 흑흑...
이렇게 생각하니 스스로가 많이 슬프고 처량해서... 울었습니다.

그래도 치즈케익은 맛나더이다.



p,s,2 

지금에서야 제가 적어놓은 짝사랑의 나날들 기록들 훑어 보면서 깨달았는데... 

저의 날아다니는 동글동글 삐뚤빼뚤 글씨체랑, 제가 좋아하는 그분의 글씨체랑 비슷해요. 
누가 보면 같은 사람이 쓴 것이라고 잘못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역시 그분과는 인연이 아닌거지요. 그런 거지요......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