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0 11:35
제가 어제 그르니에님의 글에 덧글을 달았는데, 어느새 게시물을 없애버리셨더군요. 때문에 제 덧글도 날아가 버렸는데,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본문 내용을 지우는 거야 본인의 자유이지만, 남들의 발언까지 지워버리는 것은 소통의 에티켓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행히 컴퓨터에 제가 썼던 글이 남아 있어 이것부터 옮겨 봅니다.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인격체로서의 실존인물이다'라는 말이 더 신화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좀 재미있는 상황인 것이 그르니에님은
"단군은 실제인물이지 단지 신화가 아닙니다. 고대역사서는 은유와 상징을 연구해야지 직독직해하면 안되죠. 가령 웅녀는 곰을 토템으로 하던 민족의 수장을 상징하죠."
라고 하셨는데, 사실 한국 학계는 이미 단군신화를 그르니에님과 동일한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09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나온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33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 신화는 그 시대 사람들의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 모든 신화에 공통되는 속성이기도 하다.
단군의 기록도 마찬가지로 청동기 시대의 문화를 배경으로 한 고조선의 성립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중략)...환웅 부족은 주위의 다른 부족을 통합하고 지배해 갔다. 곰을 숭배하는 부족은 환웅 부족과 연합하여 고조선을 형성하였으나,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은 연합에서 배제되었다. 단군은 제정 일치의 지배자로, 고조선의 성장과 더불어 주변의 부족을 통합하고......"
이즈음에서 도대체 그르니에님의 문제 의식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제가 보기엔 그냥 허수아비 치기를 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 사학계와 동북아역사재단은 단군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덕일 등 "환단고기"를 믿는 사람들의 괴이한 '단군상'을 믿지 않을 뿐이지요. '자기들이 믿는 형태의 단군'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 사학계와 동북아역사재단이 '단군 자체를 부정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기에 가까운 언술입니다.
이덕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학계에서는 기본적으로 이 사람을 학자로 보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자기 전공 시대 외의 논문은 거의 쓰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사 전공자가 조선사 논문이나 책을 쓴다는 것은 거의 보기 힘든 일입니다.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덕일이 쓰는 글을 보면 고대사부터 근대사까지 모두 건드립니다. 왜일까요, 이 사람이 천재라서? 그게 아니라 학자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사람이 쓴 글들을 보면 오류투성이고, 본인의 망상=역사적 사실로 단정하여 서술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이덕일의 글이 재미있고 많이 읽히는 이유로는 그가 가지고 있는 문재(文材)도 인정해 줄 수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이 사람이 쓰는 글이 ‘역사’가 아니라 ‘문학’에 가깝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역사적 실체에 대한 논리적 접근과 복원이라기보다 ‘이러한 역사면 좋겠다, 혹은 재미있겠다’가 그의 기본적 태도입니다.
이덕일의 또 한 가지 세일즈 포인트는 쇼비니즘을 이용하여 텍스트 바깥의 비본질적인 것으로 텍스트의 가치를 높아 보이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자신은 우리나라의 진실한 역사를 발굴해 알리고 있는 외롭고 정의로운 투사로 묘사하고, ‘식민 사관에 물든 역사학계’라는 거대 악을 상정하여 본인이 핍박받는 구도를 연출합니다. 이거 어디에서 많이 본 모습이지요? ‘충무로’라는 거대 악을 상정하여 핍박받는 예술가로서 스스로를 포지션화한 심형래와 똑같습니다. 네, 이덕일은 역사학계의 심형래입니다.
이덕일은 “그러다가 한중수교 이후에 중국에 왔다갔다하게 되니가 그쪽 중국 지역에서 엄청나게 많은 고조선 유물유적들이 쏟아져 나옵니다.”라고 하였는데, 이건 그냥 자기 혼자 생각이지요. 유물들에 ‘메이드 인 고조선’이라고 써져 있는 게 아닙니다. 홍산 문화를 고조선의 문화라고 단정할 어떤 근거도 없습니다. 심지어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고조선의 지표라 언급되는 고인돌이나 비파형 동검, 미송리형 토기조차도 고조선의 독자적인 유물이라 보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이들 유물들의 중심 분포 범위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문화적 지표인 유물만 가지고 고대 정치체의 영역을 단정한다든지 하는 것도 위험한 행위이고요. 그런데 이덕일은 이 무식할 정도로 위험한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행합니다.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느냐의 문제. 이미 수십 년 전에 다 정리된 내용입니다. 문헌적 연구가 미성숙하고, 고고학적 발굴이 거의 없었던 100년 전에는 있을 수 있는 논란이었지요. 광복 이후 평양 지역에서 발굴된 낙랑 유물만 해도 엄청난 수준입니다. 심지어 낙랑군의 25개 현별 호구조사 명부까지 확보해서 낙랑군의 기원전 인구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게 현재 학계의 수준인데, 이덕일은 아직도 진도를 못 따라잡고 100년 전에 신채호가 했던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르니에님의 링크 내용을 보아도 제가 보기엔 동북아역사재단이 잘못한 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동북아재단을 비난하는 이들이야말로 쇼비니즘에 발을 담그고 있는 정도를 벗어난 이들이라 여겨집니다. 그 가운데에 있는 이덕일이야 본인 장사에 도움이 되니까 저러는가보다 할 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휘둘리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2014.04.10 11:49
2014.04.10 11:52
문제는, 혹세무민하여 지위와 부를 쌓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고 거기에 부화뇌동하여 정상적인 학문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죠.
2014.04.10 11:50
정답이 없어도 증거기반이 부족한데 우기는 학문 따위는 존재가치가 없어요.
2014.04.10 11:56
아이고 칸막이님 착하기도 하셔라.. (비아냥 절대 아님.. 정말 이예요)
논란이 된 원글을 댓글까지 해서 지워버리고 다른 게시글을 써서 댓글달지 말고 새글로 반박하라고 쓴 걸 그대로 하셨어요.
저도 이덕일씨 관심있어서 어제 제목이랑 간단히 보고 오늘 다시 보려고 찾아보니 글이 없어져서 이상타 했거든요.
논쟁이 된 글을 그냥 삭제해 버리는건 좀 아닌거 같아요. 사생활이 노출된 것도 아니고...
2014.04.10 12:24
사실....우익들이 가장 열성적으로 해야할 일들 중의 하나를 하시는 분이군요. 그런데 정작 한국 우익들은 쿨한척 한다는게 함정;;
2014.04.10 12:31
맙소사
단군상을 강요하는게 아니라
동북아는 단군을 신화로 해석함으로써 고조선을 부정하고 위만조선을 인정하고 있어요.
칸막이님 논리대로라면
한반도에 한사군인 중국이 지배했다는건데 식민사관의 핵심입니다.
북쪽엔 한사군 남쪽엔 임나일본이 한반도를 다스렸으므로 한일병합이 합당하다는 논리예요. 이런 논리를 동북아가 미국까지가서 재배포하는 바람에 까이는거구요.
이걸 뒤집는게 삼국사기인데 4세기 이전에 고조선이라는 강력한 왕권이 있었다는 주장이고, 이걸 부정하는게 식민사관이고 동북아재단 논리입니다.
도대체 읽어보긴하셨어요?
바뻐서 나머지 댓글은 밤에 달겠습니다.
고조선 묘제가 중국 동부에서도 발견되었다면
아 우리민족의 이동경로가 그렇구나해야지, 그렇다면 한강이북은 고조선이 아니라 중국땅이었구나가 맞습니까 순전히 동북공정 논리잖아요.
2014.04.10 12:49
2014.04.10 12:55
이해가 안되네요.
어제부터 계속 같은 말만 반복되는데, 아니 신화를 신화라 하지 뭐라 그래요. 그게 왜 고조선을 부정하는 겁니까?
어제 님이 쓰신 글처럼 신화를 '직독직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답니다. 하다못해 고등학교 국사시간에도 배우는 것 같은데...
평양 근처에서 관련 유물이 발굴되는 것으로 낙랑의 존재를 추정<-이건 고고학적 증거로 역사적 사실을 추론한 겁니다.
이걸 일제가 말 그대로 견강부회로 자기네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든 거고요.
일제가 A라는 사실을 근거로 B라는 억지주장을 한다고 해서 A라는 사실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2014.04.10 12:58
그 묘제가 고조선 것이라는 이유가 고조선 지역에서 발견됐다는 건데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됐다면 아, 이건 고조선 고유의 것은 아니구나 혹은 고조선이 여기까지 영향을 미쳤나? 이런 여러 가지 추론이 가능한 것이지 어떻게 거기도 고조선 땅이구나라고 단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겁니까? 그 묘에 '조선 것'이라고 씌여있기라도 했나요?
그리고 임나일본부설을 동북아역사재단이 뭘 어째요?
http://blog.naver.com/correctasia/50162310982
이거나 읽어보고 그런 소리 하시죠.
2014.04.10 13:08
2014.04.10 13:12
2014.04.10 12:49
2014.04.10 12:53
2014.04.10 12:54
2014.04.10 13:10
2014.04.10 14:17
이덕일 아저씨 팬은 아니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병도가 얼마나 고생했는지와도 또 별개로, 그가 조선사 편수회에서 활동을 했었고, 해방후에 서울대 사학과 교수로재직했으며, 국사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여전히 입맛이 씁니다.
2014.04.10 15:49
2014.04.10 13:47
그르니에님은 “고조선 묘제가 중국 동부에서도 발견되었다면 아 우리민족의 이동경로가 그렇구나해야지”라고 하셨는데요, 그르니에님의 논리를 그대로 되돌려 드릴 수 있어요.
평양 지역에서 엄청나게 많은 한나라 묘가 발굴되었습니다. 압도적인 양의 한나라 유물-도장, 칠기, 청동 거울, 죽간, 목독 등등-도 같이 발견되었고요. 그르니에님 논리에 충실히 따르면 당연히 ‘아, 여기가 한사군 영역이었구나’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르니에님이 “한강이북은 고조선이 아니라 중국땅이었구나가 맞습니까 순전히 동북공정 논리잖아요”라고 하셨는데, 무슨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 정리가 안 되어 있어 이해가 잘 안 갑니다. 우리나라에는 한강 이북이 고조선 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는 없습니다. 여전히 엉뚱한 허수아비 치기를 하고 계시는 거지요.
고조선 멸망 시 중심지가 지금의 평양 지역이었음은 이미 논의의 대상이 되지도 못합니다. 옛날 옛적에 다 끝난 이야기에요.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고조선의 중심지가 처음부터 평양 지역이었는가, 아니면 요하 유역에 있다가 어느 시기엔가 평양으로 중심지가 이동하였는가 하는 정도입니다. 이는 학자마다 생각이 다르니 어느 하나가 옳다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고조선 멸망 시 중심지가 평양 지역이었던 만큼 낙랑군이 설치된 곳도 평양 지역이었음은 명약관화합니다. 이덕일 같은 사람은 평양에 낙랑군이 존재하면 안 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겁니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일제에 식민지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싫어서 식민지가 된 적이 없다고 우기는 것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사실 자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과 그것에 대한 의미 부여와 해석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전자를 무시하고, 후자에만 몰입하면 망상이 됩니다.
2014.04.10 13:58
도서관 갈 체력이 안 되어 인터넷에서 몇 개 주워왔습니다.
자 이건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발견된 허리띠. 어디서 많이 보셨지용?
그리고 이게 우리 눈에 익숙한 국보 89호 낙랑혁대입니다.
이건 한대 때 것.
낙랑에서 발굴된 칠기입니다.
그보다 앞선 서한 초기 마왕퇴 칠기.
자꾸 칸막이님 글에 지저분하게 댓글 단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동검 유물 쪽으로도 할 것도 있는데 거기까지 하자니 제 체력이 문제네요. 이 글 보시는 분들 부디 건강히 잘 지내시기를요. 좀 쉬겠습니다.
2014.04.10 14:13
긍정 부정 다 역사적 일리가 있는 사안이긴 한데
혼란스럽기만 해 꼭 정답이 필요할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