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간 지하철 풍경

2014.04.23 23:05

poem II 조회 수:4344

1. 한적한 전철이었습니다.맞은 편에 앉은 약 30대 정도의 뚱뚱하신 양반이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내가 이제까지 왜 고생을 안 했나 생각했더니, 그냥 혼자라서 편했던거야. 쭉 혼자니까 고생하고 마음 쓸 일도 없었던 거지"

저는 그 사람이 혹시 이어폰을 끼고 전화 대화 중인가 확인해 봤지만 역시 혼잣말이었습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인데 퍽 외로운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대꾸를 안 하고 모두 전화기에 고개를 쳐박고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 뉴스를 보기만 했습니다.


2. 옆에 자리에 앉은 남자가 전화통화 중이었습니다. 당연히 엿들었죠. 딱히 할 일도 없으니.

" 이번 세월호 때문에 모든 공연이 취소되었는데, 연락 못 드린 점 죄송합니다"
범상치 않게 캐주얼한 의상을 보니 공연예술 관련자 같았어요. 한숨을 좀 푹 쉬더군요.


3. 시간대가 그러해서 한적하고 조용한 지하철이었어요. 옆 칸에 중학생과 초등학생 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친척과 놀러가는 것 같았습니다.어찌나 왁자지껄 떠드는지 옆 칸까지 쩌렁쩌렁 울리더라구요.
평소 같으면 " 쯔쯔.. 공공장소에서 무슨 짓" 할텐데 저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지적을 안 하기도 하겠지만, 마음이 뭐랄까
" 그래 어디 놀러가는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놀러갔다와"

그렇게 생각했어요.

4. 교복 입은 아이들을 보면 자꾸 얼굴을 쳐다 보게 됩니다.


5. 남아있는 사람의 트라우마라는 건 때론 아주 늦게 오기도 하더군요. 장례를 의연히 치르고 분노하고 함께 분노하던 사람들이 모두 하나 둘 생활터로 떠나고 ,혼자 남게 되었을때 생활을 혼자 이어가야 할 때 아주 조용한 때

그때 남긴 작은 눈빛, 작은 말들, 작은 내가 남긴 후회하는 말들 그런 것들이 파도처럼 밀려와요. 모든 게 다 기억이 나요.그 때 자신도 모르게 먼저 간 사람들의 감정과

나를 복습하며 자신도 모르게 여러가지 심리적 후유증에 시달리더군요. 저는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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