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맞이 잡설

2014.08.01 20:04

Johan 조회 수:821

0. 전에 저희집은 한옥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여름철엔 7월 더위보다 8월 늦더위가 살인적이었습니다. 어디로도 도망갈 곳이 없을 정도 였으니까요. 그 시절이 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고추말리기' 였습니다. 어머니가 돈을 들고 고추를 삽니다. 그걸 옥상이 있는 옆집에 널어 놓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재앙은 시작됩니다.

그쯤 되면 우리 가족들의 인기 프로는 일기 예보가 됩니다. 태풍은 오는지 집중 호우는 어떻게 되는지 경험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구름의 모양을 보고 이게 비를 뿌릴 건지 아니면 지나갈지를 판별 합니다. 그리고 구름이 낮게 깔리고 구름 굴곡을 생생하게 느끼게 되면 아버지를 제외한 온 가족들은 옆집으로 뜁니다. 왜냐구요? 비가 쏟아진다는 신호니까요.

그리고 집안에는 매케한 고추냄새가 진동합니다. 햇볕으로 말리지 못하는 고추를 방안에서 말리게 되는 거죠. 빈 방에 불을 넣고 거기서 고추를 말립니다. 혹시나 곯는다고 선풍기를 동원하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고추를 이리 저리 뒤집습니다. 그렇게 구름이 또는 태풍이 지나갈때 까지 기다립니다. 그때만 해도 제 소원은 옥상이 있는 집에 사는 것이었습니다. 옷도 옷 답게 챙겨입지 못한채 집에서 입던 채로 할아버지나 아버지에게 등떠밀려 남의 집에 고추 걷으러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한참 사춘기에 정말 죽도록 가기 싫거든요. 

그래도 어쩝니까? 가야죠. 한 달은 그렇게 보내면 고추가 마르고 그 마른 고추를 들고 방앗간으로 가면 모든게 끝납니다. 아니 11월에 김장을 담그면서 모든게 끝나게 되죠. 이제 집엔 옥상이 생겼지만 고추를 말리지 않는군요. 


1. '레드 벨벳' 이란 그룹이 새로 선보였다고 해서 찾아봤습니다. 저는 신선 해서 좋았습니다. 사실 걸그룹이 나오면 너도 나도 벗고 나와서 짜증나거든요. 그런데 너무 풋풋하게 본연의 색깔로 나오니 불쾌한 것도 없고 그냥 정공법 대로 나온 것 같아 호감도가 생겼습니다. 


2. 오늘 버스 타고 집에 가는데 중학생쯤 되보이는 학생이 내릴곳 다 왔다며 자리를 양보합니다. 일단 앉기는 했습니다만 집에와서 거울을 봤습니다. 대머리도 아니고 얼굴에 주름이 심한 것도 아닌데 심지어 백발도 아닌데 왜 자리를 양보했지 싶었습니다. 딴엔 앞에 두리번 거리는 아저씨에게 친절을 베푼다고 했지만 저는 별로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자리 양보 받으려면 30년은 남았거든요. 


3. 여름을 탓는지 한 동안 식욕부진에 시달렸습니다. 먹는 양이 보통때 보다 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뭘 먹고 싶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미드고 뭐고 책이고 나발이고 다 치우고 그냥 게임 레벨업에나 신경쓰면서 한 달 가까이 보내다 며칠 전 부터 식욕을 겨우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부모님 모시고 동네 순대국집 가서 순대국과 머릿고기 좀 먹고 왔습니다. 그러고 나니 좀 살것 같군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19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76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204
126049 프레임드 #774 [2] new Lunagazer 2024.04.23 35
126048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5] new 조성용 2024.04.23 211
126047 잡담) 특별한 날이었는데 어느 사이 흐릿해져 버린 날 new 김전일 2024.04.23 93
126046 구로사와 기요시 신작 클라우드, 김태용 원더랜드 예고편 [2] update 상수 2024.04.23 185
126045 혜리 kFC 광고 catgotmy 2024.04.23 164
126044 부끄러운 이야기 [2] DAIN 2024.04.23 302
126043 [티빙바낭] 뻔한데 의외로 알차고 괜찮습니다. '신체모음.zip' 잡담 [2] update 로이배티 2024.04.23 234
126042 원래 안 보려다가 급속도로.. 라인하르트012 2024.04.22 198
126041 프레임드 #773 [4] Lunagazer 2024.04.22 52
126040 민희진 대표님... 왜그랬어요 ㅠㅠ [8] update Sonny 2024.04.22 967
126039 미니언즈 (2015) catgotmy 2024.04.22 77
126038 칸타타 콘트라베이스 스위트 아몬드, 라떼 catgotmy 2024.04.22 78
126037 최근 읽는 책들의 흐름. [6] 잔인한오후 2024.04.22 329
126036 듀게 오픈채팅방 멤버 모집 물휴지 2024.04.22 36
126035 눈물의 여왕 13화?를 보고(스포) [2] 상수 2024.04.21 309
126034 [왓차바낭] 선후배 망작 호러 두 편, '찍히면 죽는다', '페어게임' 잡담입니다 [10] update 로이배티 2024.04.21 233
126033 프레임드 #772 [4] Lunagazer 2024.04.21 41
126032 LG 우승 잔치는 이제 끝났다… 3년 뒤가 걱정이다, 구단도 냉정하게 보고 간다 [5] daviddain 2024.04.21 200
126031 [넷플릭스] ‘베이비 레인디어’ 굉장하네요 [10] update Gervais 2024.04.21 948
126030 [왓챠바낭] 다시 봐도 충격적일까 궁금했습니다. '성스러운 피' 잡담 [4] 로이배티 2024.04.20 66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