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듀게에 대안은 있을까?

2014.08.01 20:20

잔인한오후 조회 수:1405

1년 전 이맘 때에 새벽의길이란 닉네임을 쓰시는 분에게 듀게 변혁에 대한 불능론을 이야기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 당시의 번혁 주제는 운영권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더 크게 다뤄졌던건 게시판의 기술 안정성이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제가 아는 공과 사에 낀 다른 커뮤니티들은 포털에 흡수되거나, 운영/관리자의 IT 계열로의 전향으로 무보수로 게시판을 때려고쳐서 제로보드에서 자작으로 다 넘어가버렸죠. 마치 [유년기의 끝]에서 마지막에 남은 사람처럼 듀게는 기술적인 부분의 문제를 전권자도 아닌 분들이 무보수로 안고 계속 나아가고 있는 상황이죠. (그러고보니 유년기의 끝에선 그 사람은 ...)


저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가끔 국가에 대입시키곤 하는데, 듀게 사용자들은 여기가 국가였다면 보수가 엄청나게 많다고 봐야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요, 불평불만은 자주 나오긴 하지만, 실제로는 게시판을 굴리는 행정조직을 있는 그대로 신뢰하고 있으며 무언가 바꿔볼 요량이면 두려움에 떨죠.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지금보다 좋은 선택이 있기는 할까, 그걸 시도했을 때 나타나는 문제점들보다 좋은 점들이 많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 천년만년 이 상태를 유지하면서 대안은커녕 대안의 담론 형성조차 잘 되지 않아요. 그 이유는...


... 무엇을 얼마나 요구할 수 있는지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겠죠. 저는 전부터 대리전과 대리자는 싫어해왔습니다. (투표로 사법부를 뽑는다면, 그건 그야말로 합법적인 네임드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저는 반대입니다.) 이 게시판의 소유자는 듀나님입니다. 여기에 전세인지 월세인지 모르겠지만 입주해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실질적으로 불편한 일이 있으면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표없이 과세없다]가 역으로 먹히는 곳이 듀게죠. 보수 되기 딱 좋은 곳이에요. 이 상태 그대로 있으면 서버가 엎어지기 전까지는 계속 굴러가긴 할테니까요. 외부에서 욕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대안을 제시하기는 했나요? 현재의 듀게가 이상한 상태라고는 말할 수 있지만 이상적인 상태의 집단을 묘사하지는 못할겁니다. 듀나님도 요즘의 싸움이 이상하다고는 하지만, 그런게 없어야 한다고는 하질 못하지요. 결국에 진보적인 성향이 갖는 약점이죠. 남을 존중하는만큼 계도적으로는 나서지 못하는 겁니다. 모두가 동일한 이상을 가질 수도 없는 것이고. 여튼 저는 기술적인 문제 외의 이상향을 설정하련다면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현재가 이상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에서는 그걸 확신을 못하는 상태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네요. 


다른 식의 두려움으로서는... 전에 서버와 형식을 돈을 줘서 고치려면 얼마 정도 견적이 나올 것인가 물었을 때, 5천 정도 나온다고 했었던가요. 거기에 대해 반대하신 분들은 어느 정도의 두려움이 있었겠죠. 저도 마찬가지로 몇 가지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1. 5천만원 모으자고 해놓고 안 모이면 어떻하지? 엄청 창피할거 같다. 2. 모인다고 해서 돈 낸 사람들끼리의  격차 부담감은 어떻게 해소하지? 아예 안 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며 해야할까. 그 이야기가 게시판에서 전면으로 나오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 안하는게 좋겠는걸. 3. 모인다고 하면 누가 그걸 책임지고 유지하면서 담당하지? 전에 별로 안 좋은 전례가 (그것도 무보수로) 있었던 기억이 나는걸. 듀나님의 평소 가능한 일들을 보면 행정처리적인 일을 맡아 하시진 않을 것이고. 그리고 그걸 맡으면 게시판 끝날 때까지 맡아야 되는게 아닌가. 컴퓨터와 관련된 것들이란 끊임없이 보수가 필요한데, 그런 분들이 더 있게 되어야 하나? 정당한 급여를 주려면 연회비라도 모아야 되나, 그렇다면 총무나 회계도 필요한가? 차라리 이 상태가 낫겟어. 뭐 이런 식의 끝도 없는 새로움으로 향할 때 치러야하는 삯을 낼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죠, 여태껏.


저는 듀게 망한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아요. 다루는 내용과 형식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실질적으로 등업 신청하는 사람들이 3~4개월에 한 명씩 등업 글을 쓰면 모를까 그렇지 않는 이상은 가장 심하면... 재미가 없어진다는 거겠죠. 듀게에 대해서 악평 들을 때마다 느끼는건, 재미없는 책 읽고 서평 쓴걸 읽는 기분입니다. 그런데 요새 웹에서 재미지게 글을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은 커뮤에 그런 느낌이 많이 났었던 게 훨씬 이상한 편향이였겠죠. 희소한 사람들은 당연히 집단 내에서 희소한 만큼 있는거지, 우글우글하는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또한... 저는 가입-탈퇴에 관한 규칙을 개편한다고 한다면 좀 더 행정적인 측면에서는 간단하고 쉬운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지금보다 일이 많아지는 것보단 적어져야 한다는 거죠. 그런 원칙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위의, 얼마나 요구를 할 수 있는지 너무 애매모호한 상황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규칙 자체가 담론에 영향을 덜 주는게 좋겠죠. 규칙을 다루는 담론은 언제봐도 치졸해보이니까요. 그런데 저로선 그런 이상적인 방향에서의 대안 같은건 생각 안 납니다. 바꾼다 하면 더 부담을 주는 방향으로 바꾸게 되겠죠.


제 입장에서는 가라타니 고진과 복거일의 행정 방식이 자꾸만 떠오르는데 그건 쉽지 않은 일이죠. 둘 다 선거의 허위성을 밝히고 차라리 제비뽑기로 선출을 하자는 이야기였는데 뭔가 자꾸 그게 기억이 나요. 듀게에서 직접민주주의를 하려면 주기적인 참여와 실제 이용자수를 파악해야할 필요가 있을텐데 (간단하게 과반수라는 것만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건 너무 비용이 많이들고 전체 담론을 흔들 가능성이 커보여요. 그 이야기가 주맥락으로 떠올라버린다던가 하면서요. (댓글로 단다던가 하는건 누군가를 지지하거나 반지지하는 것인데 아주 작은 수준의 애정과 혐오만 드러나더라도 엄청 혼나는 듀게에서 저 사람 쫒아내는데 111 222 333, 안 쫒아내는데 1111 222222 하면 안 쫒겨났을 때는 그 뻘쭘함 어쩔껀가요.) 제가 생각하는건 배심원 제도의 제비뽑기화인데 이것도 복잡할 거 같아요. 그래도 선출직 배심원이라던가, 행동하는 익명 소수의 배심원보다는 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서 말이죠...


핵심은 대략 9명의 배심원(그냥 홀수면 됩니다)을 제비뽑기로 뽑아서, (그 추출할 배심원 명단을 어떻게 만들것이냐도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잠수하는 사람들까지 전부 포함해서 돌릴 수는 없고 자기가 신청해놓으면 뽑기 안에 들어간다던가. 근데 그런 사람들이 9명이나 있을까요?) 신고누적이 된 사람에 대해 지지 / 반지지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평을 200자나 300자 분량으로 적는거죠. 그러면 공시를 할 때 배심원의 이름을 빼고 찬반이 몇, 그리고 그 내용은 이것, 하고 나오는 겁니다. 각각의 배심원 서로는 모르고. 아, 근데 이게 될거란 생각도 없고 정말 귀찮을거란 생각만 드는군요. 저도 듀게에서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지금 상태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편이거든요. 여튼 맘대로 상상해보자면 제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는거죠. 무슨 단편 소설 공모작의 비평란이나 영화의 20자 평같은 느낌이 들긴 합니다만, 전 다른 대안은 잘 모르겠어요.


군더더기를 덧붙이면, 애초에 과세없이 또는 의무없이 대표없는데 어디 커뮤니티도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한 적은 없을꺼라 생각합니다. 의사결정을 다수결로 한다거나 그런거였겠죠. 헌법 초안도 만들고, 영토와 의무도 확정하고 그런 곳이 혹시 있었나요.


(우리는 듀게가 문닫았을 때만 한시적 어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4821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379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1728
126026 [KBS1 독립영화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43] new underground 2024.04.19 50
126025 프레임드 #770 [2] new Lunagazer 2024.04.19 23
126024 아래 글-80년대 책 삽화 관련 new 김전일 2024.04.19 78
126023 요즘 계속 반복해서 듣는 노래 new Ll 2024.04.19 80
126022 PSG 단장 소르본느 대학 강연에서 이강인 언급 new daviddain 2024.04.19 81
126021 링클레이터 히트맨, M 나이트 샤말란 트랩 예고편 상수 2024.04.19 122
126020 [왓챠바낭] 괴이한 북유럽 갬성 다크 코미디, '맨 앤 치킨' 잡담입니다 [1] 로이배티 2024.04.18 184
126019 오늘 엘꼴도 심상치 않네요 [7] daviddain 2024.04.18 156
126018 프레임드 #769 [4] update Lunagazer 2024.04.18 50
126017 [근조] 작가,언론인,사회활동가 홍세화 씨 [11] 영화처럼 2024.04.18 510
126016 80년대 국민학생이 봤던 책 삽화 [8] update 김전일 2024.04.18 339
126015 나도 놀란이라는 조너선 놀란 파일럿 연출 아마존 시리즈 - 폴아웃 예고편 [1] 상수 2024.04.18 182
126014 체인소맨 작가의 룩백 극장 애니메이션 예고편 [1] 상수 2024.04.18 119
126013 [웨이브바낭] 소더버그 아저씨의 끝 없는 솜씨 자랑, '노 서든 무브' 잡담입니다 [5] 로이배티 2024.04.18 252
126012 이제야 엘꼴스럽네요 [3] daviddain 2024.04.17 191
126011 프레임드 #768 [4] Lunagazer 2024.04.17 61
126010 킹콩과 고지라의 인연? 돌도끼 2024.04.17 139
126009 파리 생제르맹 선수들이 찍은 파리 바게트 광고 [1] daviddain 2024.04.17 209
126008 농알못도 몇 명 이름 들어봤을 파리 올림픽 미국 농구 대표팀 daviddain 2024.04.17 134
126007 아카페라 커피 [1] catgotmy 2024.04.17 13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