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 패배 이후 세월호

2014.08.01 20:30

김실밥 조회 수:1618

특별법 분위기가 여러모로 최악이네요. 새누리 선거 승리 논평 '세월호를 지나 민생과 경제로 나아갈 때'에서 시작해서, 김태흠은 세월호 유가족을 노숙자에 비유하고, 오유같은 반새누리 커뮤니티에서도 슬슬 무관심해지는 분위기. 이런 분위기라면 아마 민주당 노선 전환 과정에서 세월호 과제는 유야무야 하자는 쪽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월호를 예방과 구조를 외면한 정부는 물론 그것을 은닉한 언론과 은폐하는 정치권이 합심한 국가범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별 애정도 없는 새정련의) 7.30 패배보다 세월호 특별법이 좌절될 위기에 처한 게 더 안타깝습니다.

 

전반적인 무기력이 감도는게, 이게 '더 이상 어렵다'라는 인상을 반새누리 유권자가 공유하고 있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잊지 않겠다는 말은 굉장히 소중한 말입니다. '불행한 교통사고일 뿐이니 덮자'라는 선전문구에 대항해서 그것이 실제로 어떤 사건이었는지를 밝히고, 다시는 그런 비극이(사고로서, 혹은 양심에 일어나는 비극으로서) 일어나지 않도록 꼼꼼히 모든 것을 살피자는 함의를 갖고 있거든요. 그런데 형사, 도덕, 정치적 책임은 물론이거니와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이 져야 하는 진실에 대한 책임조차 이제는 질 방법이 없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잊지 않는다는 말이 특별법이라는 실천적 문맥에서 떨어져 나와 단순히 사적인 책임감으로 돌아가는 일이 끔찍한데, 이미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고 그들을 탓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자주 박근혜 당선을 봤을 때의 절망감이 되돌아오는 느낌입니다. 그 때 막연하게 절망했던 감각, TV에 나오는 새누리당 캠프의 환호와 박근혜의 웃음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때 막연했던 것들이 이것들을 앞질러 예감했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 보는 비현실적인 풍경들과 막연한 절망감들이 또 무엇을 예감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죄가 덮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걸 덮어버린 사람들은, 자신이 덮은 것이 튀어나오는 광경을 보면 소스라치는 게 당연하지요. 그래서 노량진 노란리본도 가위 들고 굳이 찾아가 자르고 유가족도 노숙자니 뭐니 해대겠지요. 대한민국과 민생이라는 순결한 이름을 믿는,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기억은 치워내야 할 장애물 같겠지만요.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이 쓴 문장이 자주 생각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은 조선시대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읽은 지 오래된 글이라 맥락은 정확하지 않은데, 소설가 조세희가 생각나는 문장입니다. 난장이와 은강이라는 모순적으로 아름다운 이름의 공단 이야기를 읽으며 울다가도 지금에 와서 산업화 시절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나 의아했는데, 이제 나름의 답을 찾았습니다. 한 시절의 일을 가장 첨예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은 현재와 과거 뿐만 아니라 미래도 기억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게 아니라면 과거의 일들이 그토록 현재적으로 보이지는 않을테니까요. 기억이 어쩔 수 없이 사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면, 그것이 언젠가는 다시 공적인 것이 되어야 하기에 공적인 것으로 불러들일 준비도 같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수사권이라도 갖춘 특별법이 통과된다면 참 좋겠지만 말입니다...

 

여전히 단식중인 유가족들이 광화문에 계십니다. 매일 7시 30분 집회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미지나 공지를 찾을 수가 없군요(자세히 아시는 분은 제가 틀렸다면 수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꼭 그 시간이 아니더라도 특별법 통과에 찬성하는 지지자들을 요청하고 계시기 때문에, 주말에는 작은 피켓이라도 만들어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사고 이후 어느 때보다, 요즘이 그분들에게 가장 힘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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