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코브라 트위스트

2015.01.14 17:09

나니아 조회 수:1791

펌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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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사건을 보고 떠오른 4년 전 겨울 한 어린이집의 공포

할머니의 코브라 트위스트....

4년전 상황임을.... 다시 한 번 .

어느 날 후배의 전화가 걸려 왔다. 어린이집을 취재 중인데 웬만한 그림들 다 확보했고 이제 D데이를 잡아 어린이집과 그 관리 책임이 있는 관공서를 동시 방문 (우린 이걸 ‘친다’라고 표현한다)하려는데 좀 도와 달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관공서를 가 달라고 했다. 향용 있는 일이고, 마침 시간도 나서 그러마고 했다. 그럼 뭘 물어 보면 되냐? 그러자 후배는 백문이 불여일견 한 번 보라면서 테잎을 내밀었다.

테잎 안에 담긴 어린이집의 가장 큰 특징은 한 할머니가 주연처럼 등장하고 있다는 거였다. 어린이집도 엄연히 국가의 지도 감독을 받는 보육 시설이고 보육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에 한해서 아이들을 돌보게 되어 있다. 나이 일흔이 다 되어 간다는 할머니가 보육 교사 자격증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이 안 되었지만 30명 가까운 아이들이 올망졸망 뛰어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제대로 된 보육교사로 보이는 사람은 도통 눈에 띄지 않았다.

“저 할머니 손녀가 보육교사 자격증이 있다고 해요, 그런데 거의 위층에서 잠만 자고, 애들 보는 일은 없더라구요. 할머니가 애들 다 봐요.”

할머니가 무자격자라면 물론 문제였지만 그림을 계속 지켜보니 자격증이 있다면 그건 더 문제였다. 도무지 아이들을 보육하는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방마다 신문지를 촘촘히 말아 만든 매들이 있었고 할머니는 아이들이 조금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가차 없이 그걸 꺼내 들었다. 하지만 구태여 때릴 필요는 없는 듯 했다. 다음 순간 미운 다섯 살이라고 천방지축 부모 말도 무시하고 까불어댈 나이의 아이들이 막 전입온 신병들 형상으로 벽 등에 붙이고 각 잡고 앉는 게 아닌가. 척 보아도 어지간히 매 맛을 본 몸짓이었다.

점심 먹고 3시까지는 아이들은 무조건 낮잠을 자야 했다. 할머니는 험한 욕설을 퍼부으면서 자빠져 자라고 호령했고 아이들은 끽 소리도 하지 못하고 이부자리에 누워 양 천 마리를 세고 있었다. 물론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재울 수는 있고, 성장기의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조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매를 손에 들고 뭐 같은 년들 뭐 같은 새끼들 퍼부어대면서 눈 뜨면 각오하라며 서슬이 시퍼런 할머니가 강요하는 낮잠은 일종의 감옥이었다.

곧 기절할만한 영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 아이가 감기에 걸려 약을 먹어야 하는 모양이었다. 약병을 든 건 할머니였다. 약을 먹기 싫어하는 것이야 빈부귀천 동서고금 막론한 아이들의 본능. 아이는 울면서 도리질쳤다. 꿀꺽~~~을 연발하던 할머니는 매우 신속하게 설득을 포기하고는 행동에 돌입했다. 아이를 두 다리로 깔아뭉개고 옴싹달싹을 못하게 하고는 약을 입에 털어 넣으려 하는 게 아닌가. 그래도 아이가 반항하자 이번엔 코를 막아 버렸다. 아이가 견디지 못해 입을 벌린 순간 약을 뿌리듯 퍼부었고 아이는 사래에라도 들린 듯 기침해 댔다. 그러면서 계속 퍼부어지는 욕.... 욕.... 욕

처음엔 불청객 취재진의 느닷없는 방문에 불쾌해하던 공무원도 영상을 보고는 말을 잃고 침통해 했다. 역시 그 할머니는 보육교사 자격증이 없었다. 또 그 어린이집에 근무하게 되어 있는 보육교사는 서류상으로만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다른 어린이집 인가를 내놓고 그곳의 아이들을 문제의 어린이집으로 옮겨 놓았다. 원장은 다른 시설의 업무를 겸할 수 없다고 법에 규정되어 있음에도 노인복지 시설과 상조회에까지 손대는 마당발이었다.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자원봉사자를 보육교사로 위장하기도 했고, 보육교사가 할 일은 할머니의 우격다짐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경찰도 흥분했고 어린이집 연합회 관계자도 이마를 싸맸다. “부모님들이 이해가 안가요. 할머니가 저 정도면 애들이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어요. 집에 와서 하는 말에 욕이 안 섞일 리가 없고, 어떻게 그렇게 눈치를 못챘을까요. 민원도 한 번 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그랬다. 왜 그랬을까. 첨 보는 제작진이 물어 봐도 ‘맴매’를 많이 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아이들 가운데는 저마다 반장이 있었다. 할머니는 그 아이에게 매를 대신 때리게도 한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끔찍한 일은 모두 일어난 판국인데 왜 아무도 눈치를 못챘을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나가던 중 나는 그만 울컥하는 말에 덜컥 발이 걸리고 말았다. 왜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한 아이가 이런 답을 한 것이다.

“동생도 여길 다니는데요. 집에 가서 얘기하면 쫓겨나요 그럼 갈 데가 없어요.”

할머니는 서너살 된 아이의 뺨을 때리면서 말했었다. “애들을 좃같이 키워서 이 모양이야.” 좃같이 키워진 아이들의 부모들로부터 돈 받아 챙기면서 원장은 무자격자인 자기 엄마에게 애들을 맡겼고, 분명 이렇게 돈 벌 심산으로 보육교사 자격증을 땄을 원장의 딸은 고고히 자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의 부모는 피 같은 돈을 바쳐가면서 아이들에게 차별과 공포와 포기를 심어 주고 있는 셈이었다. 아이들은 서럽게 배우고 있었다. 자신들이 어떤 처지이며,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자기 아이를 데리고 아이 맡기려는 엄마로 가장하고 어린이집에 갔던 작가가 치를 떨었다. 원장이 그렇게 사근사근하고 친절하고 아이를 끔찍하게 귀여워하는 듯 보이더라는 것이다. 내막을 뻔히 알고 있는 자신도 원장의 유려한 말솜씨에 깜박깜박 혼미해질 정도였다고 한다. 아이를 위하노라, 아이들 크는 것이 보람이노라 떠벌이는 혓바닥 뒤로 원장은 분주히 머리를 굴려 눈먼 돈을 긁으면서 아이를 팽개치고 있었다.

'무시'였다. 이런 고만고만한 동네에 사는, 자식 챙기고픈 맘은 있어도 몸이 따르지 못하는 맞벌이 부모들과 그 아이들을 원장 가족은 그렇게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좃같이 길러서 싸가지없는 새끼들은 상처 안남는 신문지 몽둥이로 좀 두드려 패도 괜찮았고, 프로그램 따위 돌릴 거 없이 자빠져 자라고 윽박지르면 몇 시간은 때울 수 있는 것이다. 뭐라고 항의해 오면 "그럼 애 데리고 가세요." 하면 그만이다. 원장은 잠입한 취재진에게 떠들어댔다. "보육교사 자격증만 따와, 내가 살 길 열어 줄게."

경찰도 공무원도 교수도 모두 이를 갈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발을 굴렀다. 자기도 새끼 낳아 길렀으면서 어떻게 저런 후안무치를 벌일 수 있느냐면서 가슴 아파했다. 애들한테는 저럴 수 없는 거 아니냐면서 말이다. 맞다. 애들이라서 더 가슴이 아프다. 할머니의 다리에 코브라 트위스트가 걸려서 코까지 막힌 채 캑캑거리며 약을 먹어야 했던 아이의 공포는 그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영혼의 트라우마로 남을지도 모른다. 애들한테는 이러면 안되는 것이다.
할머니의 명령에 따라서 반 아이들을 때리는 법을 배운 반장, 그 반장에게 맞고 할머니에게 좃같이 키워진 망나니로 불리우는 아이들, 그 얘기를 부모에게 하면 부모는 물론이요 자신도 난처해질 줄을 배운 이 슬픈 조기교육의 수혜자들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요람에서 무덤까지 분수와 주제가 정해져 가는 이 빌어먹을 동방의 카스트 사회라고 해도, 애들한테는 정말로 이러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에게만 욕설을 퍼붓기엔 우리 처지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할머니가 오줌 묻힌 애를 끌고 가서 뺨을 갈기고 좃같이 길러져서 니가 이렇다고 악을 쓰던 그날 , 공교롭게도 대한민국 국회는 결식아동 지원금 5백4십억을 간단히 없앴다. 보육 시설 확충 예산 200억도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여야 합의로 늘리기로 했던 보육교사 인건비와 대체교사 인건비 비용도 그냥 없던 일이 됐고 방과 후 청소년 공부방에 대한 지원 예산은 완전히 끊겼다. 입만 벌리면 서민을 위하고,맘 놓고 애를 낳으라고 국가가 길러 주겠다고 사탕발림에 당뇨병 돋던 정당은 그렇게 어린이집 원장처럼 모질게 배신을 때렸다. 그들이 애초에 서민을 위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사람들을 무시할 수 있는 걸까. 생때같은 애들에게까지 이 따위의 목조르기를 감행할 수 있는 걸까.

구태여 애들 밥 굶는 거까지 나라가 나설 필요 없이 지역에서 알아서 하고, 애들 보육 비용은 연평도 사태 등 국방 예산이 시급해서 날려 버렸다고 머리 긁적이는 것들이 대통령 형님의 ‘과메기 홀’과 대통령 부인의 ‘한식 홍보’에는 삭감된 결식 아동 지원금의 네 배에 가까운 액수를 배정했다. 그래도 원내 대표는 이것이 정의라고 선언했고, 한때 데모 좀 했다는 386짜리는 민주주의를 지켰다고 우쭐댔다. 순간 나는 할머니의 코브라 트위스트에 걸린 아이가 된 것 같았다. 할머니의 다리에 눌린 채 발버둥치면서 캑캑거리면서 억지로 뭔가를 들이켜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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