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가 왔다. 살 때 6주가 걸린다고 했는데 8주가 되어서야 왔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내가 엄청 대단한 소파를 산거 같지만, 이케아를 제외하고 대부분 가구를 사면 제작에 들어가기에 이렇게 걸린단다. 스웨덴 친구들은 아무도 놀라와 하지 않았다. 기다리다가 지쳐서 인지 지난 달에는 소파가 왔는데 색깔이 너무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 이게 정말 제가 주문한 색인가요? 했더니 가구를 가져온 사람들이 종이를 보여주면서 그럼요 여기 사인하셨잖아야 라고 말한다. 이런, 이제 또 몇년을 맘에 안드는 소파를 안고 살아가야 하나 하다가 꿈에서 깼다. 


그 전에 있던 소파를 내가 얼마나 싫어했는지, 이미 썼다. 소위 침대소파인 소파는 무겁고 어둡고 안기에 불편하고, 이제는 너무 오래되서 색깔도 이상해 졌고 여기 저기 이유가 뭔지 기억도 안나고 알고 싶지 않은 얼룩도 있다. 가구를 움직이는 게 직업인 두 남자가 조심스럽게 먼저 이 소파를 꺼내간다. 소파가 있던 자리에 쌓여있던 먼지며 쓰레기를 청소기로 치우는데 선물이가 현관 앞에서 소리를 지른다, 엄마 큰 선물이야! 팔짝 팔짝 뛰는 아이에게 중년의 남자가 쿠션을 주면서 아저씨 도와줄래? 이것좀 가져다 놓으렴 이라고 말하자 아이는 무슨 대단한 임무를 받은 양 심각한 표정으로 쿠션을 옮긴다. 그리고는 현관으로 쪼로록 달려가 더 도와드릴수 있어요 라고 말한다. 남자는 그보다 더 무거운 쿠션두개를 가지고 와서는 이건 좀 무겁다, 하나씩 천천히 움직이렴 이라고 설명한다. 


꿈속에서와는 달리 마음에 무척 드는 색의 소파. 이렇게 작고 가벼웠나? 싶다. 그 전 소파와는 달리 앉았다 일어나면 가벼워서 움직여져 있다. 다리부분이 길고 밀기가 쉬우니 이 소파 밑으로 먼지가 쌓일 일은 없을 것이다. 몸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앉아보니 그렇게 편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뭔가 실망에 가까운 느낌이 마음속에 자리잡는다. 선물이가 소파에 누워 이 소파 너무 좋아 라고 말하자 그재서야 기분이 좋아진다. 생각해보니 내 실망은 내가 느끼지 않은 감정에 기인하고 있다. 나는 그 무거운 소파가 사라지만 말 그대로 13년간의 체증이 사라질 줄 알았다. 물건들은 기억한다. 물건들에 기억이 담겨있고 감정이 담겨있다. 둘이어서 행복할 수 있었던 날들에 행복이란 걸 생각지 않아야 견딜 수 있을 만큼 외로웠던 날들, 소파가 사라지면 내 기억도 좀 더 가벼워 지리라 바랬다. 이런, 나 자신을 모르는 양 기대한 감정이다. 


나는 기억하는 사람이다. 남들이 스쳐 지나가듯 하는 말, 내가 남들한테 하는 말, 내가 남한테 한 행동, 그들이 나한테 한 행동. 그래서 때때로 자신이 한말을 기억못하는 사람들에게 네가 예전에 이런거 가지고 싶다고 말했잖아 이러면서 놀라게 해 줄 수도 있고, 네가 나 힘들때 이렇게 위로 했잖아 하면서 오랫동안 감사할 수도 있고 반대로 여전히 12살 아이인 내가 한 행동에 괴로워 할 때도, 그들이 나한테 한 행동에 힘들어 할 때도 있다. 기억하고 싶어서, 그들을 미워해서 기억하는 게 아니다. 어쩌면 그들이 이렇게 나한테 행동하도록 내버려둔 나 자신을 벌주느라 내 가 기억하고 나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이 들때가 있다. 기억이 마치 도사리고 있다가 차갑게 그러면서도 오후의 차를 마시듯 아무렇지 않게 즐기면서 마음 아프게 할려고 말을 던지는 영화속 등장인물 처럼 나를 시시때때 괴롭힌다. 


연락을 끊고 몇달 뒤, 3개월간 자신이 나한테 한 행동을 지각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아니 이제서야 자신이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다고  열심히 메일을 보낸 H와 저녁을 먹었던 2월 마지막 날, 그가 탈 기차를 기다리면서 산 커피가 종이컵에 담겨 나왔다. 뜨거운 것을 잘 못참는 그를 향해 나는 아무말없이 넵프킨을 건냈고 그는 아무말 없이 받았다. '내가 너한테 한일은 아마 평생 너의 집 잔듸를 깎아도 보상하지 못하는 그런 거겠지. 넌 내가 한 걸, 내가 만든 상처를 잊을 수 없겠지? 내가 그걸 너한테 요구한다면 넌 가능하지 않다라고 말하겠지?' 라고 그가 물어왔다. 'you did what you did to me'.  커피 한모금 마시고 다시 고개를 저었다. '용서하고 안하고 가 아니야. 기억은 남아있어. 그때 네가 한 행동들, 그 행동의 의미들, 다 그대로 있어'. '그렇지만..'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내가 좋은 기억을 만든다면, 네가 그럴 수 있도록 시간을 준다면, 그래서 내가 좋은 기억을 만든다면 그 무게가 더 무거워 진다면, 그게 답인거지?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거지? " 내가 물개 박수를 치면서 참을 수 없다는 듯 크게 웃으며 '아이고 드디어 깨달았구나' 라고 말하자 그의 눈빛이 어투가 한결 가벼워진다. '내가 늙은 개도 아니고 (스웨덴 속담에 늙은 개 가르치기 란 표현이 있다, ) 좀 늦어서 그렇지 나도 배운다고'. 그러더니 '너는 나를 미워할 때도 쉽게 나랑 같이 있으면 웃어.' 라고 나한테 하는 말인지 자신한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글쎄, 그러고 3게월이 지난 지금, 그는 자신이 늙은 개임을 증명했다. 

불쌍한 H.  그는 아마도 자신이 어려울 때 자신의 말을 지킬 수 있는 친구가 아니라는 것과 자신이 결국 이렇게 얇은 사람이란걸 증명한 나의 존재를 계속 힘들어 하고 미워할거다. 어찌하랴, 내 잘못은 아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선 본 소파가 있는 나의 거실이 맘에 든다. 이 소파로 인해 모든 기억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이 소파와 관련된 친구들과의 대화 같은 좋은 기억들이 많이 생기기를 기도한다. 지금은 이 소파를 보면 누워서 엄마 이 소파 너무 좋아라고 환하게 웃는 선물이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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