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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 남성들의 굴절된 저항

[기고] 상남자만화와 데이트 폭력

 

 

상남자만화와 5만 개의 ‘좋아요’

당신은 상남자만화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최근 '데이트 폭력'을 형상화한 ‘상남자만화’라는 웹툰이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만화는 3,4개의 간단한 장면으로 이뤄져있다. 예를 들어 여성이 “오빠 우리 메르스 때문에 마스크 써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물으면 남성은 여성의 얼굴을 매우 강하게 가격하고 난 후 쓰러진 여성에게 입을 맞추며 “이게 네 마스크다”라고 말한다. 모든 회차의 구성이 이처럼 [여성의 질문-남성의 욕설과 물리적 폭력-터프하지만 ‘따뜻한’ 대답]으로 동일하다. 이 만화에 달려있던 한 여성의 댓글을 그대로 옮겨본다. “내용과 구성 모두 역겹다.”

만화의 작가는 작품의 폭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에 대해 “이걸 보고 진짜로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는 000다” 라고 말했다. 장애에 대한 차별적인 표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맞는 말이다. 심지어 그는 겸손하기까지 하다. 작가의 말처럼 누가 저토록 저급한 만화를 보고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겠는가?

사실 이 만화의 효과와 관련해서 독해해야 하는 징후는 ‘모방’이라기보다 에티엔 발리바르가 말한 ‘대중적 주변성’이다. 발리바르는 유럽으로 유입되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청년들의 인종주의와 혐오를 주변성의 주제로 이야기했고, 이 청년들의 인종주의 즉, 주변성이 다른 시민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대중화되는 경향을 지적했다.

상남자만화에 달린 ‘좋아요’가 5만 개를 훌쩍 넘고 있다. 아무리 습관성 ‘좋아요’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지만 ‘엄지를 치켜든 손’이 우리 시대의 공감과 동조의 표상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5만 개가 넘는 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좋아요'를 꾸욱 눌렀을까?

남성지배, 가장 오래된 지배체제

일베의 여성혐오부터 ‘상남자만화’까지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혐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적 계약’이 ‘사회 계약’에 선행하듯 가부장제는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지배체제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지배받고 시중드는” 유순한 신체로 훈육되는 한편, 남성은 “지배하고 시중받는” 신체로 훈육된다. 그러나 남성들은 자신이 가진 권력과 헤게모니를 인식하는 순간, ‘훈육됨’을 넘어 여성을 훈육을 하는 가부장제의 지배자가 된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식의 언술은 유사인종주의적 성격을 갖고 사회 곳곳에서 재생산된다. 이는 현실에서 무의식처럼 작동하며 다양한 형태의 ‘남성지배(부르디외)’를 정립 및 보존한다.

따라서 나를 포함한 모든 남성들은 그들의 인정여부와 상관없이 성적계약의 수혜자이며, 그런 의미에서 ‘착한남자’란 있을 수 있어도 ‘지배하지 않는 남자’란 있을 수 없다.

최근 두 명의 잘 나가는 사회비평가들의 데이트 폭력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진보운동진영에서 빈번히 이뤄지는 “착하고 정의로운” 오빠들의 (성)폭력은 이를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는다. “지배는 언제나 폭력을 동반한다.”

두려움의 징후?

동시대, 여성에 대한 남성지배의 다양한 양식들을 마주하며 문득 스치는 생각은 어리석게도 근원에의 물음이다. “오랜 기간 이토록 견고한 지배체제를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열한 방식으로 여성에 대한 혐오를 일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을 정확히 내릴 수는 없지만 지배의 속성을 통해 몇 가지 단서는 찾을 수는 있다.

그람시의 ‘동의’와 푸코의 ‘규율’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권력과 지배는 ‘강제'는 형식을 전면에 드러내길 원하지 않는다. 지배는 언제나 ‘효율성’을 지향한다. 그러나 비상상태라 판단되는 순간에 지배체제는 효율성을 잠시 뒤로 미뤄두고 강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제는 ‘지배가능성’의 표지이기보다는 ‘지배가능성’의 위기 즉, 체제붕괴의 두려움에 대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어쩌면 최근 남성들의 극단적인 여성혐오는 우리가 ‘남성지배의 위기’라 호명할 수 있는 것, 즉 여성의 인권과 경제적 지위가 확대되고 여성들의 공개적인 '진실말하기'들을 통해 도래하고 있는 ‘남성지배의 불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의 징후가 아닐까?

이런 점에서 남성성을 여성성에 대항한 하나의 구축물, 즉 여성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라고 한 부르디외의 언급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남성이 진짜 때리고 싶은 대상은 누구인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혐오는 프로이트식의 꿈작업과 유사하다. 꿈작업은 크게 압축-전치라는 과정을 거치며 이루어진다. 압축과 전치는 무의식이 표출하고자 하는 소망을 의식의 검열에 걸리지 않는 형상으로 변형-가공하여 꿈 이미지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압축-전치의 꿈-작업처럼 대부분의 남성은 자신을 억누르는 진짜 적들을 향한 저항을 하지 못하고 대신에 만만한 대상인 여성에게 분노를 표출하며 온갖 혐오와 폭력을 투사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혐오는 굴절된 저항이다.”

[상남자만화]를 읽으면서 머릿속에 든 생각은 딱 한가지였다. “만화의 작가와 작품을 읽은 독자들이 진정으로 때리고 싶은 대상은 누구일까?” 먼저 할머니, 할아버지, 어린이, 장애인, 이주노동자를 폭력의 대상에 넣지 않은 이유는 왜일까?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아마도 의식적인 ‘도덕규범’의 검열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여성은 의식의 검열을 받지 않는 대상이란 것인가? 대답을 먼저 하자면 “그렇다.” 여성에 대한 남성지배의 역사는 이에 대한 ‘허용’을 가능케 한 기반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이 도덕규범과 죄책감 따위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현재적 이미지, 그들이 바로 여성인 것이다. 압축-전치 뒤에 숨은 남성들의 무의식적 억압의 대상은 누구일까? 그들이 진짜 때리고 싶은 대상은 누구일까? 그들에게 필요한 덕성은 아무래도 용기인 것 같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진짜 적을 바로 볼 수 있는 용기. 두려운 것을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상남자’라는 게 존재한다면 이런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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