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일기입니다. 반말체인 것 양해해주세요. 이제 다음부터는 다시 격식을 차려 존댓말로. ... ㅠㅠ
아, 상세한 내용 있습니다. 해당 영화 안 보신 분들은 피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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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5일 알프레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

1월 17일 관금붕의 연지구

1월 18일 로버트 스트롬버그의 말레피센트

2월 9일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

  

1. 알프레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는 그의 많은 작품들처럼 대중을 의식하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개성을 잃지 않는다아내를 살해하려 한 토니의 행적이 밝혀지느냐 아니냐는 작품 전반에서 초미의 관심사인데문제는 관객이 토니가 꼬리 잡히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는 점이다졸지에 살인마를 응원하게 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우선 불륜에 빠진 아내 마고 때문이기도 하고워낙 처음부터 솔직하게 토니가 전략을 짜시는지라 보고 있는 관객은 공범 노릇 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히치콕의 작품들은특히 범죄와 관련해서는 한때 범람한 추리소설을 영상화한 느낌이다전형적이고 고상한 미인과 약간의 치정기품을 잃지 않으려는 범죄자와 치밀한 작전최선을 다하려는 경찰과 권선징악적 결말까지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공식에서 벗어나질 않는다그 점이 히치콕을 재미없게 만드는데이러한 과정을 또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것이 히치콕의 엄청난 재능이다.

작위적인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 히치콕의 이러한 영화 양식은 조금 지루한 면이 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기민하고 재능 있었던 영화감독작가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여전히그의 작품에서는 내가 영화에 기대하는 종류의 예술성을 볼 순 없지만.

  

2. 관금붕의 연지구는 어떻게 보면 참 촌스러운 영화이다이건 상황 때문에도 그렇다. 2015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1980년대의 홍콩을 돌아다니는 1930년대의 여자 유령이 주인공인 영화를 본다니게다가 또 주인공 배우들조차 장국영과 매염방이다그렇지만 그 특유의 촌스러움과 촌스러울 만큼 순수한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새로운 맛이 있기도 했다.

1930년대의 퇴폐적이고 호기롭던 시절을 구가한 한 쌍의 남녀는 서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을 비관해 같이 자살을 기도하였다죽은 뒤에 다시 만나자는 언약을 잊지 못하고 남자를 기다리던 여자주인공 여화는 오십년이 지나도 안 오는 십이 도련님 때문에 1980년대의 홍콩을 방랑하게 된다여화를 도와주는 1980년대의 커플도 있고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어 결국 사태는 나름의 진실을 찾게 된다

참으로 비극적이게도꽃답고 연약하던 십이 도련님은 제대로 죽지도 못하고 살아남아 멋진 경극배우도 되지 못하고 실패한 엑스트라 인생으로 전락해버렸다참으로이 영화는 결국 마지막 장면이 눈물을 자아내게 만든다애타게 찾고 찾았건만 결국 발견한 것이 그렇게나 구차한 그 사람의 모습이라니언제까지나 사랑하자고 맹세해놓고 비참하게 자기만 남아서는그렇다고 또 잘 살지도 못하고 그렇게나 서글프게 살아가고 있다니길거리에서 노숙하며 마작하고 술만 마시며 인생을 낭비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어떻게 그 옛날의 십이 도련님일 수 있을까차라리 좋은 여자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여러모로 여화의 마음에는 편했을 것이다자신의 목숨을 건 것이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어진 여화가 마음을 싹 정리하여 새로운 인생을 찾아가는 것이 나는 무척이나 공감되었다마지막 노래도 너무 좋았고.

누군가에는 53년을 지속하는 사랑이누군가에게는 젊었을 때의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았으니많은 것이 불공평하고허무하다모든 것이 그렇게 바람 같고아련하니지킨 사람만 마음 아파진 사랑의 슬픔을 잘 그린 영화다홍콩 영화 특유의 애타고 쓸쓸한 분위기가 그 슬픔에 한몫을 톡톡히 더해준다.

  

3. 말레피센트는 언급을 하지 않겠다안젤리나 졸리만 보고 나오면 되는 영화다.

  

4.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보았다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보다보니 점점 그의 추종자가 되어가는 기분이다물론 내가 라스 폰 트리에를 좋아하는 급으로 좋아하진 않지만확실히 자기만의 양식이 잘 잡힌 감독이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보니 귀향과 같은 그의 다른 영화가 연상되었다그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 좀 알 것 같은 기분이다전체적으로 그가 갖는 여성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찬미의식삶의 순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비슷비슷한 배우들과 비슷비슷한 이야기들 속에서 반복된다그러나 그 반복 양상은 지루하지 않고볼 때마다 흥미진진하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그의 영화 안에서 인생의 비극은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진행된다아니슬퍼할 것은 온전히 드러나지만그것의 감내도 동시에 꿋꿋이 이루어진다아들을 잃어야만 한 그 상실감은 다시 같은 아버지를 둔 아이를 그녀가 돌봐야 하는 막중한 사명감으로 이어진다

개인의 성적 정체성들이 사회 지표상으로 나눠지듯이성애 중심이 아니라는 점도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의 특징일 것이다아마 페미니즘에서 이 등장인물들을 다른 식으로 읽는 시도가 있었을 듯하다사회 약자들의 옆에서 봉사하던 로사가 일종의 성전환 수술을 한 에스테반(롤라)와 자서 아이를 가진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 같다최근에 읽은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이 생각나는 영화이기도 하다남성과 여성의 사이를 애매하게 지나쳐 가는남성성을 버리지 못하고 흩뿌리고 다니는 한 존재의 업을 숭고한 결실과 희망으로 지켜나가는 여성성의 박애적인 모습이 알모도바르가 지향하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 아닐까 싶다써놓고 보니 마치 알모도바르가 남성과 여성을 갈라놓은 것처럼 여겨지는데그렇게 여겨진다면 그건 나의 표현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가끔 감독이 정말 그런 것 아닌가 의심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연극과 영화에 대한 그의 무한한 동경도 마찬가지다. 이브에 대한 모든 것(심지어 제목을 따오기까지 한)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자신의 영화 안에 그대로 녹여놓고, 인용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예술에 대한 사랑은 그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비슷하게 재생산된다.

  비슷하면서도, 반복되면서도, 힘과 매력을 잃지 않았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최근작인 내가 사는 피부를 다시 보고 싶어진다. 그 작품을 보고 별로라 느꼈던 나 자신의 생각을 점검할 기회를 가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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