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4일 하니 아부 아사드의 오마르

2015년 3월 5일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파우스트

2015년 3월 14일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버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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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니 아부 아사드의 오마르


  오마르 같은 경우는 포스터가 무척 끌려서 보게 된 작품입니다. 포스터가 끌려서 본 작품치고 망한 작품이 거진 없었다는 거 생각하면 제가 생각할 때 스스로 감이 참 좋은 편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좋은 작품입니다. 명작이라든지 대단한 걸작이라든지의 칭호를 붙여주기에는 조금 힘든 것 같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현재 국면을 생각하면 이 영화가 갖고 있는 힘은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좋은 점은 단순히 사회정치적 면만을 파고들고 있지 않고, 인간 본연의 감정과 욕망까지 걸쳐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한 면모 때문에 이 영화가 갖는 정서적 힘은 더욱 강해집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단순히 지엽적인, 거리가 먼 중동 어디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감응의 일로로 다가가기 쉽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마르라는 인물은 상당히 영웅적인 인물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인물의 일대기를 생각해보면 영웅 모티프의 전형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름다운 약혼자, 시련, 민족의 운명, 시험 받은 우정과 배신, 꺾여지지 않는 의지와 그 고결함으로 인한 처절한 비극. 정말 전형적인 상황들의 총체적 집합입니다. 하지만 그 '전형'이라는 것도 특수한 맥락과 사정에 의해 덧입혀지는 순간 다른 무엇이 되죠. 이 영화는 정말 그런 걸 잘 살립니다.

  3월에 본 영화였고, 3개월 정도 지난 지금에도 오마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 정도로 슬픈 영화였어요. 이스라엘의 구질구질한 핍박과 그것을 묵묵히 감내하고 끝없이 당해야기만 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아픔을 괜시리 공감할 수 있는 이유도 아마 일제강점기라는 시간을 배웠던 한국인의 정서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 상황에서 제가 주인공과 같은 선택을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영화감독 하니 아부 아사드의 출생지를 보니 이스라엘이군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인인 것인지 팔레스타인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이든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고, 알릴 생각을 하며, 미래와 평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겠죠. 세상에는 암흑을 품은 사람도 많지만 빛을 품은 사람도 많다는 위안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는 슬픕니다. 정말 처절하게 슬픈 영화입니다. 제가 오마르를 보고 난 이후에 이 정도로 슬프고 암담했던 영화는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의 리바이어던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 영화도 이제 곧 다른 영화일기에서 쓸 것이긴 합니다만... 제가 이 영화의 주인공을 신화의 주인공에 비유한 이유는 이 주인공 같은 경우 내리는 선택들이 고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긍지를 저버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약혼녀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 무너졌을 때도 우아하고 아름답게 이겨냈고,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친구를 그녀 때문에 용서합니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죽음까지 선택해가며 그는 팔레스타인으로서 용서할 수 없는 이스라엘에 마지막 저항까지 하죠.

  어떻게 보면 인간으로서의 그의 선택들은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치였지만, 여전히 개인적 저항의 차원, 개인적인 비극으로만 보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들은 결국 그가 그러한 국면에 처할 수밖에 없게 된 조건들을 생성해낸 인간사회와 환경의 문제로 귀속됩니다. 그 끔찍한 아픔에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말은 사실 별로 없을 겁니다. 아주 멀리 떨어진 사람들로서, 그 나라의 문제를 알고, 비록 먼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여전히 불의와 자신들이 당하는 비극에 처절히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가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아무리 멀리 떨어진 우리라도, 그 사람들을 어떻게든 도울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2. 얀 슈반크마이에르(쯔반크마이어?)의 파우스트


  아, 이 영화는 정말 아주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파우스트라는 소재가 아주 흥미롭긴 한가봐요. 이런 제목의 책, 영화, 애니메이션을 정말 많이 본 기분이 듭니다. 제대로 세보면 또 막상 안 그럴 수도 있겠지만요.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실사영화이긴 한데 중간중간에 점토 애니메이션이 삽입됩니다. 그래서 아주아주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요. 게다가 이 영화는 우리가 아는 파우스트 이야기를 현대판으로 옮겨서 만들었는데, 마치 이 모든 것을 악몽처럼 만들어놓았습니다. 게다가 제가 아는 파우스트는 나중에 구원 비슷한 거라도 받는 것 같은데, 이 파우스트는 개뼈다귀 신세가 되어버리죠.

  이런 분위기 좋아하는 분이시라면 정말 좋아할 것 같은 영화입니다. 꽤나 감각적이어서 설명을 듣는 것보다는 직접 보시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게다가 사실 설명하기도 좀 애매한 느낌이 듭니다. 기본적으로 부조리한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보면서 전개가 그렇게 딱히 말이 되는 건 아니고, 이미지 중심적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미지들이 연결되면 정말 흥미로운 그림들이 많이 나와요. 얀 슈반크마이에르가 잡은 도심의 분위기를 상당히 좋아하는데, 무척이나 현실적입니다. 무슨 미국드라마 프렌즈 같아요. 그런데 그 안에서 인형탈을 쓴 괴물들과 악마들이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안 쓰죠. 묘하게 더욱 현실적입니다. 아마 도시 사람들은 진짜 신경 안 쓸 거에요.

  장면하니, 진짜 재미있는 장면들이 몇 개 생각나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아무래도 중간에 걸인과 다리살점들, 테이블에서 솟아나는 포도주 같은 것들이네요. 으,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가보니 여자인형에 미쳐버린 파우스트 박사의 비참한 욕망에 대한 장면들도 생각나네요. 

  어쨌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고 흥미롭게 본 파우스트 관련 제2차 창작물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주제의식을 가장 잘 살린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 주제의식에 맞춰 잘 만들어진 형식도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얀 슈반크마이에르라는 사람의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졌어요. 거장일 것 같다는 느낌이 팍 들었습니다.


3.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버드맨


  이 작품 같은 경우 정말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제 취향이 아니었지만 이 정도의 완성도를 구가하니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마음에 들더군요. 제 취향이 아니라고 말씀 드리는 이유는, 사실 저는 좀 정적이고 현실적인 장면들 속에서 새어나오는 느린 정서와 감각적인 장면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한테 버드맨은 연극적이고, 지나치게 인위적인 작품이었어요. 중간중간 액션영화들 흉내내며 조롱하는 장면들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조금 인위적인 느낌들이 드는 게 저한테는 거리감을 주더라고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그런 요소들 때문에 못 만들었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런 형식들이 주는 훌륭한 효과를 모를 리도 없고, 정말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번에 한 번 본 그들 각자의 영화관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칸느영화제에서 아마 제 기억에는 페데리코 펠리니였나, 어떤 감독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거장감독들이 삼분 이내의 단편을 만들어서 모았었습니다. 그 수많은 단편들 중에서 제 보기에 좋았던 단편들을 찍은 영화감독들 작품들을 골라서 보는데,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의 퀄리티를 가진 영화를 찍을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마이클 키튼인 줄 몰랐어요. 저한테 마이클 키튼은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배트맨 역할을 했던 좀 부담스럽게 느끼하게 생긴 아저씨에 불과했거든요. 나중에 마이클 키튼이란 걸 알고서는 얼마나 놀랐는지. 그래서 마이클 키튼을 골랐구나, 버드맨이 배트맨이었구나!!!! 뒤늦게 생각하며 소름을 느꼈다는 ... (....) 그런데 진짜 마이클 키튼도 대단하긴 하네요. 이런 작품 고를 생각을 하다니. 본인이 뭔가 영화 찍으면서 진짜 몰입 엄청 했을 것 같긴 해요. 실제로도 너무 좋게 연기가 나왔고.

  에드워드 노튼도 너무 매력적으로 나왔죠. 저는 이 양반의 매력을 여기서 진짜 제대로 느꼈습니다. 사실 제일 좋았던 부분도 에드워드 노튼이 나오는 부분이긴 해요. 비평가 역으로 나온 린제이 던칸(이 사람이 옛날 HBO 시리즈 ROME에서 브루투스 엄마 역으로 나왔던 사람이었어요. 어쩐지 낯이 익더라..)과 연기와 비평에 대해 논하는 부분이 최고였어요. 저는 이 부분에 대한 비유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연기는 실제의 부분이고, 비평은 그것을 관찰하고 평하는 부분이기에 결국 서로 공생하지만, 서로 혐오하고 깔아내리기도 하죠. 그렇지만 결국 서로 없으면 못 살아가는 부분이고...마이클 키튼을 깔아뭉개던 비평가가 마이클 키튼의 연기를 보고 허둥지둥 나가는 장면, 결국 감탄하며 평론을 써준 부분도 이 부분에 대한 감독의 고찰이 느껴져 좋았습니다.

  제가 연기지도나 이런 것에 대해선 알 수가 없습니다만, 딸 역으로 나온 엠마 스톤이었나요, 마이클 키튼과 으르렁거리는 부분의 장면도 아직도 생각나네요. 마치 연극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꽤나 길게 잡더라고요, 장면을. 그래서 그런지 진짜 아버지한테 센 말 말해놓고 아차 싶어 후회하는 딸의 표정도 다 잡혔어요. 섬세한 감정을 포착한 장면들과 다소 저한테는 화려했던 형식적 카메라 워킹이 만나니까 그렇게 어떤 퍼포먼스 같으면서 진정인 정서들이 막 노출되고, 드러나더군요. 

  지금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명작이에요.

  그리고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보면서 이상하게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하나는 감독, 하나는 배우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내용면으로도 그렇고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적어도 제 느낌에는요. 둘 다 영화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공상과 현실이 무참하게 섞여있어요.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과, 동시에 같이 갖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애처롭게 제어되지 않은 채 드러나는 것도 그랬고요. 사실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 부분은 중간쯤이었나, 도심을 날아오르는 그 부분이었던 것 같네요. 8과 1/2 도입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나봐요.

  어쨌든, 명작이었습니다. 요즘 전체적으로 질 낮은 영화도 많지만, 좋은 감독들도 정말 많아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행복합니다, 그 부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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