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

2016.02.07 04:45

김감자 조회 수:1952

wHNewst.jpg

누런 숲, 천에 아크릴, 60cm x 73cm




우리는 몇가지가 같고 몇가지가 다릅니다.


나는 우울한 음악을 좋아하고 당신은 신나는 음악을.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당신은 모든 것을 기억합니다.

나는 낯을 가리지 않고 당신은 낯을 가려요.

배 나온 아저씨에 대해 뻔뻔함에 대해 우리는 같은 생각입니다.

당신은 내 나이를 알지만 나는 당신의 나이를 모르는군요.

나는 당신의 얼굴을 알지만 당신은 내 얼굴을 알지 못해요.


나는 전화를 걸고 당신은 전화를 받아요, 그리고 웃죠.

내 어색한 사투리에 당신이 또 웃는군요.


당신은 내게 내 말투를 따라한다고 말해요. 

나는 당신에게 그대의 글버릇을 따라한다고, 말하지 않았죠.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해지기 전의 따듯한 빛이 좋아서

다섯시에 전화를 건다고,

낮과 밤이 바뀌는 사이의 시간이 좋다고 말해요.

당신도 밝음에서 도망친 적이 있다고 말해요.

너무 밝은 빛은 어울리지가 않아서, 라고 

말 대신 우리는 침묵합니다.


저는 그림 그릴 때 불어를 들어요.

음악은 금방 질리니까. 

아예 모르는 언어를 듣고 있으면 집중이 잘 되죠.

뭘 듣냐면, 어린왕자를 들어요.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알려준건데

친구를 사귀려면 매일 같은 시간에 가야한대요.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져야한대요.

그래서 다섯시에요.

다섯시는 따듯한 빛의 시간이니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니까.

당신은 웃습니다.


이렇게 말해봐야 믿지 못하겠지만,

당신은 자신이 애교가 하나도 없다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합니다.

나는 수다를 못떠는 성격이라고,

당신에게 끝없이 떠듭니다.

이렇게 말해봐야 믿지 못하겠지만,

서로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면 설명할수록

나는 내가 아니게 되고

당신은 당신이 아니게 되어

도통 분간할 수가 없군요, 뭐가 뭔지.


다행인 건

사람이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데에

우리가 같은 생각인 것입니다.

아마 이걸 알기 위해 몇번

우리는 지독히 밝은 거울 속, 

적나라한 혼자를 보며 피해야 했죠.

그늘이 좋겠어요, 마주 보기에는.

미지근한 그늘. 목덜미와 머리의 경계가 어스름한

그늘에서 실컷 오해하고 싶어요.


아, 아직 나는 잊어버릴 게 많아요.

더 많이 당신을 오해하고 싶어서

해가 누그러들기를 기다리고

해질 때까지 쉴새 없이 떠듭니다.


*


음. 좋아하는 것은 좋군요.

왜냐면 좋아하는 것은 좋은 것이니까요.

하하.

들떠서 그림도 못그리고. 뭐.

좋네요, 그래도.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482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38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1736
126027 조지아 블랙, 라떼 new catgotmy 2024.04.20 3
126026 [KBS1 독립영화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44] update underground 2024.04.19 123
126025 프레임드 #770 [2] update Lunagazer 2024.04.19 28
126024 아래 글-80년대 책 삽화 관련 김전일 2024.04.19 107
126023 요즘 계속 반복해서 듣는 노래 Ll 2024.04.19 105
126022 PSG 단장 소르본느 대학 강연에서 이강인 언급 daviddain 2024.04.19 102
126021 링클레이터 히트맨, M 나이트 샤말란 트랩 예고편 상수 2024.04.19 136
126020 [왓챠바낭] 괴이한 북유럽 갬성 다크 코미디, '맨 앤 치킨' 잡담입니다 [1] 로이배티 2024.04.18 192
126019 오늘 엘꼴도 심상치 않네요 [7] daviddain 2024.04.18 162
126018 프레임드 #769 [4] Lunagazer 2024.04.18 52
126017 [근조] 작가,언론인,사회활동가 홍세화 씨 [11] 영화처럼 2024.04.18 536
126016 80년대 국민학생이 봤던 책 삽화 [8] 김전일 2024.04.18 358
126015 나도 놀란이라는 조너선 놀란 파일럿 연출 아마존 시리즈 - 폴아웃 예고편 [1] 상수 2024.04.18 189
126014 체인소맨 작가의 룩백 극장 애니메이션 예고편 [1] 상수 2024.04.18 124
126013 [웨이브바낭] 소더버그 아저씨의 끝 없는 솜씨 자랑, '노 서든 무브' 잡담입니다 [5] 로이배티 2024.04.18 261
126012 이제야 엘꼴스럽네요 [3] daviddain 2024.04.17 194
126011 프레임드 #768 [4] Lunagazer 2024.04.17 61
126010 킹콩과 고지라의 인연? 돌도끼 2024.04.17 140
126009 파리 생제르맹 선수들이 찍은 파리 바게트 광고 [1] daviddain 2024.04.17 213
126008 농알못도 몇 명 이름 들어봤을 파리 올림픽 미국 농구 대표팀 daviddain 2024.04.17 13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