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성혐오론자들에게 성차별의 지표적인 특성들(임금격차, 유리천장, 고용률격차, 결혼시기/출산육아시기 노동시장 퇴출압박, 맞벌이 부부의 불평등한 가사분담률)을 제시하면, 중구난방인 반론이 돌아옵니다. 1) 형식적 평등 부문에서 한국은 OECD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반론, 2) 꾸준히 상황이 개선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나아지리라는 반론, 3) 임금격차의 발생은 남성이 고위험직종/노동집약적 직업군에 종사하기 때문이지 다른 원인 때문이 아니라는 반론 4) 데이트 비용 분담(더치페이)과 군대 문제에 있어서 여성이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 있기에 성차별 당해도 할 말 없다는 반론 따위가 그것들입니다. 

#2
  형식적 평등의 강조와 과도하게 긍정적인 전망이 대표하는 1과 2의 반론들에 대해서는 별로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80년대 말 남녀고용평등법이 마련된 후에도 지표적 측면에서 여성의 삶은 크게 개선되었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형식적 평등이 지표적 평등을 가져올 수 있는 능력이 한국사회에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 1의 주장은 의심스럽습니다. 90년대 후반 IMF-비정규직법과 함께 여성의 노동조건이 후퇴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텐데, 출산/육아휴가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정규직에의 편입이 이전보다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에도 여성노동에 대한 대우나 질이 나아지리라는 예측을 내놓는 사람들은, 근거 없이 자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기에 2의 반론도 의심스럽습니다. 

#3
  3의 반론(종사하는 직업군의 차이가 임금의 차이를 만든다)은 뿌리깊은 선입견과 얽혀 있습니다. 소위 남자들이 힘든 일을 하니까 많이 받는다는 논리인데, 선입견을 제거하고 지표만 볼 때 남는 것은, 남성 노동자들과 여성 노동자들이 서로 다른 직업군에서 서로 다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뿐입니다. 따라서 몇 가지 반론을 드릴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 설명은 여타 성차별적인 지표들(유리천장 지수, 노동시장 퇴출압박, 불평등한 가사분담률)을 반박하지는 못하고, 따라서 지표적으로 성차별적인 상황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분의’ 지표들은 문제와 단순히 무관한 것이 아니라, 임금격차를 그 자체로 조장하는 지수들입니다. 승진기회의 불평등, 출산육아시기의 퇴출압박과 더불어 불평등한 가사분담률은, 기업의 시각에서는, 남성은 원잡을 뛰는 노동자인 반면 여성은 투잡(일/가정)을 뛰는 노동자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들이 누구를 더 대접할지는 뻔한 문제입니다.
  
  두 번째로 이 설명은 서비스업을 비-노동집약적 산업/저위험직군으로 간주해 낮은 보상을, 또한 제조업과 공업과 건설업 등을 노동집약적 산업/고위험 직군으로 간주해 높은 보상을 주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대기업화하면서 더욱 높은 착취율을 획득하고 있는 측면을 무시합니다. 이마트 캐셔의 컨베이어 벨트와 공장 노동자의 컨베이어 벨트 사이에, 노동집약성의 측면에서 어떤 본질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또한 서비스업 직군에 고유한 감정노동의 측면을 무시하는 것 역시 타당하지 않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제조/건설업등이 서비스업에 비해 덜 힘들다는 것이 아니라, 직군별/성별 임금격차가 그들이 종사하는 직무의 노동강도 격차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동선/원숙연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소개합니다. “남성의 공적영역인 노동시장에 여성들이 진입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로, 노동시장 내 존재하는 주류 남성적 가치가 여성에게 차별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Binder(2010) 등은 생산성의 측정 역시 남성적 기준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에 정확한 생산성 측정이 이루어진다면 성별임금격차는 3%로 낮아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실제 임금의 성별 차이에 대해 Oaxaca 임금분해 함수를 적용한 결과, 미국은 임금격차 36% 중 27%가 차별에 기인한 것이고(Borjas, 1996), 한국의 경우 전체 중 60%가 차별에 기인하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Bai & Cho, 1995).”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통계이지만 성별임금차이의 44.9%가 설명되지 않은 차별에 기인한다는 다음과 같은 설명도 있습니다(웹진 WoORI). “우리나라 남녀임금격차를 정량적으로 보면 남성임금(시간당 임금기준)을 100.0으로 하면 여성은 69.9로 차이가 30.1인데, 차이를 가져오는 남녀임금차이(30.1)의 24.1%와 17.5%는 각각 남성의 근속년수 및 교육수준이 여성보다 높아서, 7.8%와 4.8%는 각각 남성이 고임금 업종이나 대기업이 종사하는 비율이 여성보다 높아서 발생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성별임금차이의 44.9%는 설명되지 않는 차별에 기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이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있으며, 임금격차를 발생시키는 전체 요인인 교육격차(교육에 있어서의 성차별) ․ 근속년수 격차(유리천장과 노동시장 퇴출압박 문제에 있어서의 성차별) ․  종사직군 차이(마미트랙; 가사양육노동이 직업선택에 미치는 영향) 각각에 내재되어있는 고유한 성차별의 문제를 외면합니다.
  
  덧붙여, 이 설명은 나무위키가 좋아하는 설명이기도 합니다. (임금격차를 설명하며 : “대표적으로 노가다. 이런 일들이 사회적으로는 무시 당하지만 의외로 임금이 높다. 이런 직종들은 여자를 뽑지 않으니 어찌보면 어쩔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나무위키를 애독하는 여성혐오론자들의 지표 해석 수준을 나타내 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4
  4의 반론(데이트 비용 분담과 군역)은 일단 어폐 자체를 수정하지 않고서 논의를 이어갈 수가 없겠습니다. 먼저 국방의 의무에 있어서, 여성은 한국법이 규정하고 있는 의무(광의의 국방의 의무)를 충족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여성혐오자들의 문제제기는 여성이 의무를 수행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아니라, 특정한 종류의 국방의 의무 자체가 병역법에 의해 여성에게 부과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로 향해야 하는데, 이 두 가지 논점을 제대로 구별할 줄 아는 혐오자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논점을 구별한다는 것은, 한국의 현행 징병제를 이미 정당화 된 의무로 규정한 뒤 여성이 이것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것인가, 혹은 공동체에 불가결하며 정당한 의무가 무엇인지 논의하고 법적으로 평등하게 재규정 할 것인가의 문제를 구별하는 일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모든 여성혐오 남성들조차도, 20대 초반의 21개월을 20여만원의 월급을 받으면서 극단적으로 부조리한 환경에서 강제로 착취당하는 것, 그 자체가 정당하다고 말하지는 못할 겁니다. 과장된 휴전국가 이데올로기와 애국주의로 범벅이 된 채 유지되는 부조리와 불평등, 저임금 문제를 내버려두고, 현행의 부당한 의무를 골고루 나누자고 말한다면, 이는 “불의의 평등”에 대한 주장이지 합리적인 주장이 아닙니다. 
  
  “의무가 없으면 권리도 없다”는 정체불명의 표어(아마도 군사정권 시대에 유포된 것 아닐까요?) 역시도 유행인데, 비슷한 수준의 어리석음을 보여줍니다. 현대 민주사회의 모체가 되며, 그로부터 현대적인 권리의 개념이 길어올려진 프랑스 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인권을 천부적인 것으로 규정하며, 무조건적인 것으로 정합니다. 한국 헌법 또한 기본권을 천부인권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어떤 조건적인 요소를 근거로 삼아 권리 주장의 유효성을 없애려는 것은 반민주주의적인 사고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10년에(이하 위키피디아) 남자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한 것이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위헌소송을 각하하며 “집단으로서의 남자는 집단으로서의 여자에 비해 전투에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개개인의 신체적 능력에 기초한 전투적합성을 객관화해 비교하는 검사체계를 갖추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여성은 신체적 특성상 병력자원으로 투입하기에 부담이 큰 점 등에 비춰 남자만을 징병검사의 대상이 되는 병역의무자로 정한 것이 자의적인 차별취급이라고 보기 어렵다. 비교법적으로 보아도 징병제가 존재하는 70여개 나라 가운데 여성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국가는 이스라엘 등 극히 일부 국가에 한정돼 있으며 그러한 국가도 남녀의 복무내용, 조건을 다르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병역법이 자의적 기준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위헌의견을 낸 목영준 재판관의 말이 흥미롭습니다. “(가) 남성과 여성은 전반적으로 다른 신체적 구조와 체력을 가지고 있고, 국방의무의 이행에 있어서도 이로 인한 차별취급은 당연히 용인되어야 한다. 그런데 병역법상의 병역의무 중 복무의 내용 자체가 신체적인 조건이나 능력과 직접 관계되는 것은 현역 복무와 상근예비역 및 승선근무예비역에 한정된다[2]. 보충역이나 제2국민역의 경우 반드시 남성으로서의 신체적 능력이 필수적 전제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남성과 여성 간의 신체적 상이 및 그에 따른 사회적 역할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하여 병역법상의 모든 국방의무를 남자에게만 부과하는 것은, 헌법상 규정된 국방의무의 부담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을 합리적으로 차별한다고 볼 수 없다. 이는 오히려 과거에 전통적으로 남녀의 생활관계가 일정한 형태로 형성되어 왔다는 사실이나 관념에 기인하는 차별로 보이는바, 그러한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목영준 재판관의 시각을 따라, 여성혐오자 남성들이 평등한 병역법을 얻고자 한다면, 그들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50년대에 병역법을 만든 사람들이 남성을 부당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현행 병역법을 만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은 군역에 어울리는 성역할이 남성의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근거는 남성의 신체적 구조와 체력이 우월하다는 점과 여성은 임신출산, 약한 체력 등의 사유로 군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긴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목영준 재판관의 입장을 지지하는데, 이는 60년 묵은 현행 병역법이나 여타 재판관들의 입장은 여성의 체력적 열등성과 신체구조적 부적합성을 과장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와 목영준 재판관이 보기에, 현행 병역법은 잘못된 것인데, 그것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기인한 차별(미소지니)에 기인한 것이지 여성에 대한 우대에 기인한 것이 아닙니다. 즉 여성혐오가 원인인 현상이 결과적으로 남성차별처럼 간주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데이트 비용 분담의 문제는 어떨까요? 일단 2012년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지 않지만 여성과 남성이 65:35 정도로 데이트 비용을 상대가 분담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이상적인 데이트 비용 분담률이 60:40 비율이라고 응답했고, 이 응답은 응답자 특성별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20대 남녀가 받는 임금격차가 거의 없고(남성이 1.02배 많이 받음:연도 불명, 통계청) 같은 조사에 따르면 특히 20대에서 데이트 비용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하기에, 이 문제는 주로 20대 이성애 관계에서 이슈가 되는 듯합니다. 데이트 비용은 성별간 소득격차(100:67)을 반영한다는 페미니스트의 반박에 대해서, 혐오론자들이 주로 제시하는 재반론도 20대 소득에서 차이가 없는데 20대가 더치페이를 안 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두 가지가 문제될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로, 데이트 비용 소비에 반영되는 것은, 오늘 살고 내일 죽을 생각 아니라면, 당장의 소득이 아니라 평생 기대소득이라는 점입니다. 연공서열제가 상당히 무력해졌지만, 여전히 남성의 소득곡선은 연령에 비례하는데 반해,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남성에 비해 소득이 줄고 특정한 시기에 확 꺾입니다. 모든 데이트 비용 소비자들이 이런 점을 구체적으로 반영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격차가 데이트 문화라는 사회문화적 구조에 반영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경제활동참가율의 차이(100:75) 역시도 데이트 비용 분담에 영향을 끼치는 성차별적 요인입니다. 두 번째로, 노동/경제적 구조의 변동이 사회문화적 구조 변동에 걸리는 시간적 지연이 지표에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소득격차와 경제활동참가율이 각각 100:62, 100:50에 가깝던 시절에 조성된 문화가 아직도 관습으로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부분이 간과됩니다. 이 모든 근거들은 “여자가 돈내기 싫어한다”라는 원인불명의 여혐적 규정보다 훨씬 유용하게 문제를 설명해줍니다. 데이트 비용 분담의 차별적 구조는, 과거 여성이 스스로 비용을 지불해 주도적으로 데이트에 참여할 수 없었던 성차별적 시기의 잔재이며, 현재에도 문제시되고 있는 여성에게 차별적인 노동시장 구조를 반영하는 문화라는 점입니다. 이 역시도, 여성혐오가 원인인 현상이 결과적으로 남성차별처럼 간주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3921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234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0748
125851 이런저런 정치 잡담...(조국) new 여은성 2024.03.29 74
125850 댓글부대 영화개봉에 부쳐(화면 속, 네트는 넓어서... 판타지스러움) new 상수 2024.03.29 73
125849 정치 뉴스 몇개(호위무사 인요한, 진중권, 김경율) new 왜냐하면 2024.03.29 137
125848 프레임드 #748 [2] Lunagazer 2024.03.28 53
125847 의사 증원 2000명이 천공 밈화 되는 걸 보면서.. [1] update 으랏차 2024.03.28 411
125846 이미 망한 커뮤에 쓰는 실시간 망하는중인 커뮤 이야기 [7] update bubble 2024.03.28 656
125845 몬스터버스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돌도끼 2024.03.28 114
125844 롯데 인스타에 [12] daviddain 2024.03.28 217
125843 고질라 곱하기 콩 봤어요 [3] 돌도끼 2024.03.28 253
125842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3] 조성용 2024.03.28 335
125841 데드풀 & 울버린, 배드 보이즈:라이드 오어 다이, 더 배트맨 스핀오프 시리즈 더 펭귄 티저 상수 2024.03.27 127
125840 하이브 새 아이돌 아일릿(illit) - Magnetic MV(슈퍼 이끌림) [2] 상수 2024.03.27 174
125839 프레임드 #747 [4] Lunagazer 2024.03.27 48
125838 [핵바낭] 다들 잊고 계신 듯 하지만 사실 이 게시판에는 포인트란 것이 존재합니다... [18] update 로이배티 2024.03.27 446
125837 예전 조국이 이 게시판에 글을 쓴 적이 있지 않습니까? [4] 머루다래 2024.03.27 686
125836 ZOOM 소통 [9] update Sonny 2024.03.27 283
125835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사람 catgotmy 2024.03.27 218
125834 문득 생각난 책 [1] daviddain 2024.03.27 143
125833 종교 유튜브 catgotmy 2024.03.27 109
125832 [왓챠바낭] 엉망진창 난장판 코믹 호러, '좀비오2' 잡담입니다 [4] update 로이배티 2024.03.27 15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