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서울에 놀러가는데 지하철을 한참 타야될 것 같아서 핸드폰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다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인생의 명시 100선>이라는 책을 전자도서관에서 다운받았어요. 


그런데 이건 뭐 다 처음 보는 시네요. ^^ (제가 한국인이 아니거나 제목이 뻥이거나 ^^) 


이 시들을 정말 한국인이 좋아하는지 좀 의심스럽긴 하지만 재미있는 시가 몇 편 나와서 옮겨 봅니다. 




취하라


          샤를 보들레르



늘 취해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그것만이 문제다.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하는

시간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노상 취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에?

술에건, 시에건, 미덕에건, 당신 뜻대로 

다만 취하기만 하라. 


그러다가 

궁전의 계단에서나 

도랑의 푸른 풀 위에서나

당신 방의 음침한 고독 속에서

당신이 깨어나 취기가 이미 덜하거나 가셨거든 물어보라.

바람에게, 

파도에게, 

별에게,  

새에게, 

시계에게, 

달아나는 모든 것에게, 

울부짖는 모든 것에게,

굴러가는 모든 것에게, 

노래하는 모든 것에게,

말하는 모든 것에게, 

몇 시냐고 물어보라.


그러면 바람이, 

파도가, 

별이, 

새가, 

시계가, 

대답하리라.

"취할 시간이다!" 

시간에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노상 취해 있으라! 

술에건, 시에건, 미덕에건, 당신 뜻대로. 



(앞으로 누가 몇 시냐고 물어보면 "취할 시간이다!!!"라고 대답해 줘야겠어요. ^^ 

술자리에서 이 시 한번 읊어주면 술맛 제대로 나겠는데요. ^^) 




고양이와 새


       자크 프레베르 



온 마을 사람들이 슬픔에 잠겨

상처 입은 새의 노래를 듣네

마을에 한 마리뿐인 새


마을에 한 마리뿐인 고양이

고양이가 새를 반이나 먹어치워 버렸다네

새는 노래를 그치고

고양이는 가르랑거리지도

콧등을 핥지도 않는다네


마을 사람들은 새에게

훌륭한 장례식을 치러주고

고양이도 초대받아

지푸라기 작은 관 뒤를 따라가네

죽은 새가 누워있는 관을 멘

작은 소녀는 눈물을 그칠 줄을 모르네


고양이가 소녀에게 말했네

이런 일로 네가 그토록 가슴 아플 줄 알았다면

새를 통째로 다 먹어치워 버릴 걸

그런 다음 얘기해 줄 걸

새가 훨훨 날아가는 걸 봤다고

세상 끝까지 훨훨 날아가더라고


너무도 먼 곳으로 가버려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러면 네 슬픔도 덜어줄 수 있었을 걸

그저 섭섭하고 아쉽기만 했을 걸

어떤 일이든 반쪽만 하다

그만두면 안된다니깐 



(정녕 이런 엽기적이고 잔혹한 시를 한국인이 좋아한단 말입니까.... orz) 




술 노래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실은 그것뿐.

나는 입으로 잔을 가져가며

그대를 바라보고 한숨짓는다.



(이건 어쩐지 한국인이 좋아할 것 같아요. ^^) 




늙은 선승의 노래


         모리야 센안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 줘.

운이 좋으면

밑동이 샐지도 몰라. 



(저는 왜 이렇게 술에 관한 시가 재밌을까요?? ^^) 




용서하는 마음


            로버트 뮬러



일요일에는 자신을 용서하라.

월요일에는 가족을 용서하라.

화요일에는 친구와 동료를 용서하라.

수요일에는 국가의 경제기관을 용서하라.

목요일에는 국가의 문화기관을 용서하라.

금요일에는 국가의 정치기관을 용서하라.

토요일에는 다른 나라들을 용서하라.



(역시 국가는 죄가 많군요. 사흘에 걸쳐 꼼꼼하게 국가 기관들을 용서해야 하다니... ^^

그나저나 이건 한국인이 좋아할 시 같지 않은데 말이죠. ^^) 




음악은


           퍼시 비시 셸리



음악은, 부드러운 음성이 멈출 때

기억 속에서 떨리고, 

향기는, 달콤한 제비꽃이 시들 때

깨어난 감각 속에 살아 있네.   

장미 꽃잎은, 장미가 죽었을 때

사랑하는 이의 침상에 쌓이고,  

그대 생각은, 그대가 떠나고 없는 날 

사랑이 그 위에서 잠들리라. 



(좀 쓸쓸하지만 로맨틱해요. ~.~) 




유월이 오면


         로버트 브리지스



유월이 오면 나는 

온종일 향긋한 건초더미 속에

내 사랑과 함께 앉아

산들바람 부는 하늘에

흰 구름이 지어놓은 

눈부신 궁전을 바라보련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고

나는 노래를 지어주고

아름다운 시를 온종일 부르리.

남몰래 내 사랑과 건초더미 속에 누워 있을 때

오, 인생은 즐거우리, 유월이 오면. 



(사랑하는 사람과 건초더미 속에 누워 하늘을 본다고 상상하니 흐물흐물 기분 조아요. ^^)   




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에밀리 디킨슨



애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한 생명의 아픔 덜어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래줄 수 있다면. 

헐떡이는 작은 새 한 마리 도와

둥지에 다시 넣어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이 시를 읽으니 헛되지 않은 삶을 살기는 의외로 쉬운 것 같기도 하네요.) 




고독


          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독은 비와 같은 것

저물 무렵 바다에서, 

멀고 쓸쓸한 들녘에서,  

언제나 그것을 품고 있는 하늘로 간다.

그리고 하늘에서 도시로 내린다. 


그것은 내린다. 

밤과 낮이 뒤엉킨 시간에, 

아침을 향해 거리가 몸을 일으키고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육신들이

실망과 슬픔에 젖어 서로를 떠나갈 때, 

그리고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한 침대에서 잠을 이루어야 할 때. 


그리고 고독은 강물과 함께 흘러간다.



(뭔가 몹시 고독한 느낌이에요. ^^) 



혹시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세계의 명시를 알고 계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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