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7 12:01
7월 하순에 서울로 출장을 갔었는데
자몽음료가 한창 유행이더군요. 날씨가 무척 더웠는데 그래서 저도 커피대신 많이 마셨습니다. 제가 자몽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러다가 '아, 자몽술이 마시고 싶다'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한글 웹싸이트에서 과일주 만드는 법을 찾아보니 대부분이 소주 댓병을 사서 거기에 썬 과일과 설탕을 넣고 밀봉해서 숙성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ㅠㅠ
일단 제가 소주를 싫어한다는 것은 둘째치고, 대체 과일과 설탕을 소주에 넣으면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건가요?
과일만 넣는다면 소주에 과일향을 더한다는 점에서 이해가 가는데 설탕? 농도가 짙은 알콜속에서 설탕이 분해되어 발효가 가능한가요?
어쨌든 이런 가짜 과일주 말고 진짜 술을 빚어보고 싶습니다.
직장동료들이 자몽같은 귤종류는 산도가 강해서 술을 빚을 수 없다고 만류하였으나 영문웹싸이트에는 의외로 자료들이 소소하게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자몽 사이다와 자몽 와인 레시피들이 뜹니다.
차이는 이스트의 종류... 사이다는 맥주 이스트로, 와인은 와인 이스트로 발효를 합니다.
이 동네는 집에서 소소하게 양조하는 문화가 발달해서 가정용 양조용품을 판매하는 곳도 많아서 구입이 쉽고
과정도 의외로 복잡하지 않습니다. 엄청 기대됩니다.
판매하는 이스트의 종류가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고 일일이 라벨이 붙어 있는 것을 흥미롭게 살펴보다가
문득 제가 이 곳에 와서 십 수번 김치를 담그어 봤지만 계속 실패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듀게에도 한 번 문의한 적이 있었을 거예요.
여기 저기 물어보고 다녔는데 대부분 대답이 냉장고에 넣기전에 실온에서 숙성해야한다. 김치 양념이 비밀이다. 소금/젓갈의 농도가 안 맞다 등등의 조언을 하셨는데
심지어 엄마가 오셔서 담그어주신 김치마저 익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 때 엄마는 집에서 하던 식으로 청국장을 만들려고 하셨는데 그것 마저도 실패했죠. 청국장이 안 뜬다고 하시더군요.
아, 비밀은 이스트였구나... 맥주 효모균 종류를 살펴보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입니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발효식품들의 레시피를 살펴보면 누룩균을 집어넣는 과정이 전혀 없습니다.
김치, 된장, 청국장, 심지어 과일청 (요즘은 효소라고 부르기도 하던데) 까지 이스트에 대한 분석이나 종류는 전혀 없어요.
그냥 공기중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알아서 알맞게 반응하나봐요.
그런데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생으로 만드니 누룩이 없어서 발효가 안되는 상황...
우리도 김치, 청국장등으로 이름 붙여서 판매하면 좋으련만 그렇게까지 시장이 있는 건 아니겠죠.
일단 가장 큰 시장인 한국에서는 굳이 구매하지 않아도 저절로 발효가 될테고 외국이 그렇게 큰 시장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이 곳에서도 실력자들은 모두 김치를 담그고 청국장도 만들어 먹는데 그래서 다음엔 시장에서 산 김치 한 조각을 이스트균으로 쓸 생각입니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김치 이스트의 부재라는 제 이론이 입증이 되는 것입니닷!
술에서 시작하여 김치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만
어쨌든 실험 양조를 시작합니다.
2016.08.27 12:27
2016.08.27 13:28
올여름에 처음 자몽차를 먹어봤는데 맛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자몽술은 또 어떤 맛일지 궁금하네요. 성공 기원합니다. ^^
2016.08.27 13:58
오 맛있을거 같아요 제가 소주에 과일액 탄 것 같은 과실주를 싫어하는데 그것과는 다를거 같습니다. 성공하시고 글 남겨주시길.
2016.08.27 14:31
소주에 과일 절이는 담금주는 원래는 과일을 설탕에 절여서 숙성, 발효시키는 방식인데 그렇게 하면 도수가 낮으니까 소주를 추가하는 거에 가까울 거에요. 소주는 의외로 상당히 순수한 주정에 물을 타서 희석시킨 거고 특유의 향이 적어서 담금주 만들기에 괜찮은 술입니다. 그거 말고 국화주나 각종 약재를 넣은 소주(뱀술 따위) 등은 말씀하신 대로 그 자체로는 술이 되지 않는 재료로 가향을 하는 방식이고요.
자몽 사이다나 자몽 와인을 만들어먹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게 그렇게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은 만들기 까다롭거나(레서피가 간단해보여도 막상 만들자면 어려운 것도 있으니), 만들었을 때의 결과물이 노력에 비해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그러니 전 그냥 자몽이 들어간 칵테일을 먹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신포도 논리! 시트러스에는 특히 데낄라 조합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래도 성공하게 되면 알려주세요. 궁금하네요.
2016.08.27 14:59
과일을 절여서 발효시킨 후 소주를 나중에 추가하는 것이라면 말씀하신 의도에 가깝겠으나 대부분의 레시피는 과일 설탕 조합에 소주를 붓고 밀봉하여 보관하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단 알콜 속에서 (그것도 담금주를 만드는 소주는 시중 소주보다도 알콜 농도가 높더군요) 과일의 발효가 일어날리가 없고 그냥 과일향을 소주에 첨가하는 효과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설탕을 넣을 필요가 없는 것이죠. 자몽,오렌지, 레몬 등의 발효주가 없는 이유는 산도가 높아서 발효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높은 농도의 알콜 속에서 발효가 안되는 것처럼) 만약 레몬소주를 만들었다면 그게 발효로 만들어진 방식이 아니라는 증거죠. 물론 담금주도 장점은 있죠. 과일의 산성도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과일, 채소 종류는 무엇이든지 이용할 수 있고 소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금상첨화겠죠. 또 잘못될 위험도 적어서 안전하고요. 발효 잘못해서 독성 물질이 잔뜩 생성되면 사람잡는 일까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실험에서 제일 걱정되는 것도 이 부분입니다.
그런데 사이다는 과일 그 자체가 아니라 과일주스를 발효시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설탕을 많이 넣고 끓여서 어느정도 조절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레시피도 그런 이유로 돌아다니는 것 같더군요. 레몬 사이다는 없지만 자몽 사이다는 만들었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2016.08.27 14:56
2016.08.27 15:03
2016.08.27 16:15
2016.08.27 16:37
과일에 소주를 부어 만드는 건 발효랑은 무관하고 알코올로 과일향 등의 성분을 침출해 내는 거죠. 설탕은 껍질의 쓴맛 같은 불필요한 성분까지 우러나오는 걸 가리는 용도고요. 포도주처럼 발효를 해서 자몽주를 만드시려면 설탕이 꽤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유럽의 양조용 포도가 22~24브릭스 이상(효모를 통한 발효의 최적조건)인데 그레이프프루트는 11브릭스만 넘어도 달다고 하거든요. 성공하시면 좀 알려주세요. 전 그냥 간단하게 설탕에 절여둔 자몽청을 보드카나 소주에 섞어 소다 넣어 마시는 수준이거든요.
2016.08.27 19:34
2016.08.27 17:34
유튭에 '터보 사이더 만드는 법'이라고 여러가지 영상이 올라와 있어요. 수퍼마켓에서 파는 주스로 만드는 건데 초보자용으론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냥 일반 페트병에다가 적은 양으로 시작할 수 있고요. 물론 저는 자몽 주스를 직접 짜서 쓸겁니다.
저도 자몽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데 술에는 영 약해서 자몽 쥬스로 만족하려구요. 술 잘 드시는 분들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