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의 이야기...(길거리음식)

2017.01.11 23:38

여은성 조회 수:1253


 1.어느날 친구와 만나서 뭘 먹을까 하며 한참동안 강남역을 돌았어요. 뭘 제안할 때마다 회도 족발도 초밥도 곱창도 못 먹어봐서 안먹는다고 하는 내게 친구가 한숨쉬며 말했어요.


 '내게 인생을 그렇게 즐기라고 하더니 자네야말로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것 같군.' 


 그리고 역시 언제나처럼 피자를 먹으러 갔죠.


 뭐...그래요. 요즘 생각해 보면 아마 나는 세상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언제나 가는 곳에 가서 언제나 먹고 마시는 걸 먹고 마시는거죠. 심지어는 호두과자도 지난 해 처음, 우연한 기회로 먹어 봤어요. 


 이브 며칠 전에, 그냥 돌아가면 보나마나 거한 야식을 시켜먹을 거 같아서 간단하게 식사를 때우려고 돌아오는 길에 김밥집에 들르려 했어요. 김밥집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여서 거리를 걸어 돌아오는데 노점상들이 눈에 띄었어요. 언제나 그렇듯이 길거리음식을 너무 먹고 싶었어요. 지난 10년동안 늘 그랬죠. 핫도그를 한두번인가 사먹은 걸 빼면 길거리음식을 내 손으로 사먹은 적은 10년동안 없던 것 같아요.


 

 2.그렇게 평소처럼 길거리음식을 보며 지나가는데...정말 먹고 싶었지만 스스로에게 중얼거렸어요. '저걸 먹고 싶어? 저 음식들은 하루종일 저곳에 있었어. 온갖 사람들과 매연을 뿜어내는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저곳에 말야.'라고요.


 하지만 그날은 정말...정말 빌어먹을 호떡을 먹고 싶었어요. 호떡을 먹은 지는 오래됐지만 호떡을 씹는 순간 안에서 달콤한 소스가 나오는 그 느낌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거든요. 달콤한 소스가 많이 분포되어 있는 부분을 맛보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오래 끌려던 어렸을 때의 기분도요.


 아니 정확히는 호떡이 아니었어요. 내가 20년동안 호떡을 먹지 않은 동안 호떡은 씨앗호떡이라는 걸로 진화해 있는 것 같았어요. 노점상을 바라보다가...발을 돌렸다가 노점상을 바라보다가 다시 횡단보도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노점상을 바라보다가를 반복했어요. 


 그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길거리음식을 먹고 먹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고요. 내가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3.그래서 길거리음식을 먹기로 했어요. 사실 다른 때였으면 역시 못 먹었을 거예요. 왜냐면 보통은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거든요. 현금을 뽑으러 가는 몇 분 안에 생각이 바뀌었겠죠. 그런데 또 그날은 어쩌다보니 현금이 있었어요. 그래서 호떡집에 가서 가격을 물어봤어요.


 천원이었어요! 원래는 두개만 먹으려고 했는데 2천원어치를 사는 건 좀 너무한 것 같아서 세개를 샀어요. 혹시나 싶어서 카드가 되냐고 물어봤는데 안된다고 하며 옆의 돈통을 가리키며 계산은 셀프라고 했어요.


 그렇게 호떡을 사니 어차피 길거리음식에 손을 댄 김에 다른 것에도 손대보고 싶어졌어요. 마약도 그렇잖아요. 마리화나에 한번 손대면 크랙 코카인 헤로인 스피드볼까지 일사천리인 거니까요. 그래서 닭꼬치집에 가서 매운닭꼬치를 두 개 샀어요.



 4.휴.



 5.그리고 이제 돌아가려다가...한가지 사실을 깨달았어요. 나는 지금까지 핫바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거요. 핫바...핫바라는 게 어떤 맛인지 늘 궁금했어요. 그래서 핫바 노점상에 갔어요. 


 핫바 노점상에는 사람이 꽤 있어서 한쪽 구석에 가서 섰어요. '환영합니다 어서오세요 모시겠습니다'같은 인사는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계속 주문을 하는데...끼어드는 건 내 전문 분야가 아니어서 파는 사람이 뭘살거냐고 말걸때까지 가만히 있었어요.


 사람들이 좀 빠져나가고 한참만에 파는 사람이 뭘살거냐고 말을 걸어서 제일 무난해 보이는 소시지핫바를 달라고 했어요. 왕소시지핫바와 소시지핫바가 있었는데 그냥 소시지핫바를 골랐어요. 그리고 왜 소시지핫바와 왕소시지핫바의 가격이 같은 걸까...라고 궁금해하는데 메뉴판을 자세히 보니 소시지핫바엔 괄호 표시와 함께 (목우촌)이라고 써 있었어요.



 6.파는 사람이 소시지핫바를 건네며 '이거 목우촌입니다.'라고 말했어요. 그게 뭔가 대단한 거라는 듯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포장해 주지 않는거냐고 물어보려다가 하나 사가면서 포장해달라고 하면 너무한 것 같아서 그냥 받았어요. 



 7.얼마만인진 모르겠지만 나는 혼자 길거리음식을 길거리를 걸어가며 손에 들고 먹었어요. 그리고...다 먹었지만 딱히 죽음의 냄새 같은 것도, 죽음에 가까워지는 기분도 들지 않았어요. 


 앞으로는 종종 길거리음식을 사먹어도 될 것 같아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290699
» 어느날의 이야기...(길거리음식) [5] 여은성 2017.01.11 1253
105435 [스포] 여교사, 어쌔신 크리드, 얼라이드 [1] 화려한해리포터™ 2017.01.11 1260
105434 돌고 돌아 다시 그 자리 [5] 닥터슬럼프 2017.01.11 1632
105433 심은경은 왜 가까이 보기 전에는 나이 들어 보일까 가끔영화 2017.01.11 931
105432 독감에 걸렸습니다. [4] 가라 2017.01.11 859
105431 반지의 제왕 1편 재개봉 감상. 역시 인생영화 [6] 일희일비 2017.01.11 939
105430 라라랜드 마지막 상영을 보고 왔어요 :) [13] 티솔렛 2017.01.11 1687
105429 요즘 게시판 페이지뷰를 살펴보니 [4] 가끔영화 2017.01.11 649
105428 영화평도 남들 눈치 보면서 써야 하는 세상인가요? [21] 휴먼명조 2017.01.11 2541
105427 듀나인) 법률적 도움 부탁드립니다.(직장 퇴사 관련) [4] 칸쵸양 2017.01.11 1067
105426 이런저런 잡담...(카드) 여은성 2017.01.11 375
105425 지미 펠론 골든글로브 오프닝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네요 [7] 스무디킹 2017.01.11 1258
105424 신구 가끔영화 2017.01.10 302
105423 펌ㅡ친문과 친여가 조작하는 여론조사 [13] 튀밥 2017.01.10 1341
105422 돌아온 탕자.. [11] 라인하르트012 2017.01.10 1405
105421 <너의 이름은.> 보고 왔습니다. (스포있음) [7] 정리 2017.01.10 1520
105420 2011 어나더 어스 같이 지구가 또 하나 더 있다면(동기화 되지 않은) [2] 가끔영화 2017.01.10 401
105419 본문 펑 [3] 가라 2017.01.10 861
105418 커피 추천해주세요! [4] eoskan 2017.01.10 773
105417 스타워즈 로그원ᆞ너의 이름은ㅡ 돈아까웠음 [15] 튀밥 2017.01.10 240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