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6 17:36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전통적 사회 현상 중 하나로 '대세 타기'라는 게 있죠.
이건 뭐 옛날 표현 그대로 호랑이 등에 타서 질주하는 것과 같아서 한 번 흐름을 타면 무시무시한 파괴력과 파급력을 보여 줍니다.
아이돌로 치면 한 번 대세 궤도에 오르면 한동안은 노래가 구려도, 모자란 실력이 뽀록나도, 다수의 안티들이 씹도 뜯고 맛 보고 즐겨도 다 상관 없어요. 무조건 잘 나가죠.
이렇게 잘 나가던 대세가 무너지는 패턴은 대략 두 가지 정도입니다.
첫 째는 대세를 누릴만큼 누린 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착륙하는 것.
또 하나는 자폭.
- 11일 화요일.
문제의 유치원 대전이 발발되었죠.
뭐 복잡한 얘기, 특히 안철수의 유치원 정책에 대한 평가 같이 어려운 부분은 무식한 제가 보탤 말이 없으니 다 차치하구요.
제게 인상 깊었던 건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무신경함, 내지는 센스 부족이었습니다.
사실 욕 먹게 될 거란 상상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서, 어쨌든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지게 해 주겠다는 공약이잖아요.
까놓고 말해서 문재인이 수퍼 울트라 캡숑 포퓰리즘 파워!!! 를 발동하며 실현 가능성 제로의 사탕발림 낚시 공약을 내놓지 않는 이상에야 그렇게 큰 차별점을 두기 힘들 겁니다.
그런데 그걸 정말 최악의 방식으로 발표를 한 거죠.
학부모 단체 모아 놓고 '병설 6000개를 늘릴 자, 그게 누굽니꺄!!!!' 하면서 발표해서 박수 받고. 단설도 늘려 보겠으나 이런 저런 현실적 문제로 인해 병설 위주로 확장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하고.
그 다음에 사립 유치원장들 모아 놓고 '너무 걱정 마. 너희들 지원도 더 잘 해 줄게. 관리 감독도 그냥 적당선에서 하기로 하고' 이랬음 되는 거잖아요.
도대체 무슨 약을 하셨길래... 라는 생각 밖에 안 드는 발표 방식이었습니다. 스스로 아주 고급진 관짝을 제작해 놓고 제 발로 들어가 드러 누운 듯한 느낌.
그리고 이어지는 해명 릴레이도 문제였어요.
정말로 그 모든 게 오해였다면 광속으로 입장 정리해서 짠~ 하고 해명해서 데미지를 최소화 했어야 했는데.
그 날은 그냥 보도 자료나 페이스북, 트위터 글로 때우고. 다음 날엔 쌩뚱맞게 김경진 의원이 라디오에서 애매... 하게 해명하고.
그 다음 날이나 되어서야 해당 분야 전문가가 나와서 상황을 정리했죠. 하지만 이미 빡칠 사람들은 다 빡친 후이고...
이제 나중에 공약이 자세하게 비교가 되어서 '문재인이나 안철수나 유치원 공약은 거기서 거기'가 되어도 이미 입은 데미지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 12일 목요일.
1) 소소하지만 위의 유치원 대전과 연결되며 좀 덜 소소해진 일이 또 있었습니다. 바로 공무원 임금 조정 관련 기사 수정 사건.
이런 일이었습니다만.
역시 국민의당 입장에선 좀 억울한 감이 있을 겁니다. 1년 전에, 그것도 정식 공약도 아니고 해 보려고 추진하다 접었던 일이 지금와서 다시 회자되며 표를 깎아 먹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렇다면 그냥 '예전에 자아암깐만 고려하다 접은 건이다. 오해 말라.' 라고 해명하고 깔끔하게 접으면 되는데. 전날 유치원 건 때문에 소심해졌는지 좀 괴상하게 처리를 합니다.
아니 뭐 아예 오보였다면 모를까, 1년 전 기사 자체는 그냥 멀쩡한 기사였던 거잖아요. 이걸 왜 이제사 수정 요청을 해요. 아니라고 밝히기만 하면 되지. ㅋㅋ
게다가 저 날 나온 국민의당 공식 논평에는 저런 구체적인 설명도 없었습니다. 그냥 '그건 가짜 뉴스임. 배포하면 가만 두지 않겠음.' 으로 끝이었죠.
아마도 저런 걸 고려했었다는 사실 자체를 최대한 감추고 싶었던 것 같은데. 결과적으론 거짓말도 아닌데 거짓말하는 것처럼 되어 버리잖아요. 가뜩이니 이미지 깎이던 와중에 말이죠.
2) 그리고 그 날 밤이 바로 문제의 토론...;
토론회에 대한 이야긴 전에도 매우 짧고 무성의한 글을 적은 적 있으니 길게 얘기하진 않겠지만.
일단 누가 뭐래도 가장 데미지를 입은 건 안철수입니다.
왜냐면 애초에 이미지 메이킹을 유능하고 똑똑한 전문가로 잡았던 데다가 그동안 문재인에게 1vs1 토론 제안으로 어그로를 끌며 토론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어필하고 있었으니 말이죠.
바로 전 날 일로 이미지에 상처를 입은 상태로 토론회에서 이렇게 반전의 어버버를 시전하고 나니 데미지도 2배. 문재인은 지지자들 조차도 기대를 안 해서 데미지 제로!!!
근데 아직도 토론에 희망을 걸고 돌아가며 둘씩 짝지어 하는 스탠딩 토론으로 문재인 측을 도발하고 있더군요. 도대체 이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별로 가능해 보이지도 않지만 어찌저찌 문재인을 일 대 일로 털어낸다고 쳐도 그 후에 유승민, 심상정에게 발리고 나면 결국 캐릭터 설정상의 문제로 본인 데미지가 더 클 텐데 말입니다.
그 와중에 '늙어서 두 시간 서 있기도 힘들지?'라고 도발하다가 노인 비하 논란에 스스로 말려드는 건 보너스였구요.
- 13일 금요일
전날 밤에 언론에 의해 제기된 김미경씨의 보좌관 부림 의혹.
이걸 국민의당에서 이 날 오전에 매우 시크하게 '사실 무근' 이라고 논평을 냅니다.
그러고 오후에 바로 김미경씨가 사실임을 인정하고 사과합니다(...)
차라리 논평을 내질 말든가요. 몇 시간도 안 되어서 이렇게 될 걸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해서 또 쓸 데 없이 이미지를 구기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가네요. 한 대 맞고 끝낼 일을 계속해서 두 대로 늘려 맞는 느낌.
그리고 그 와중에 국민의당과 안철수 본인은 이 건에 대해 침묵을 지키죠.
계속 문재인 아들을 공격하고, 아내의 교수 임용 건은 자신 있다는 얘길 반복하면서도 이 건에 대해선 묻고 가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그러다가
- 14일 토요일
안철수가 종편에 출연해서 보좌관 건에 대해서 사과를 했습니다.
아내에게(...)
자기 돕느라 너무 힘들고 바빠서 보좌관들에게 자기 일 좀 시킨 것 같다며... 그래서 자기가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음... 이건 정말 너무 난감해서 뭐라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이해가 안 가서 기사를 한 번 읽고 또 다시 처음부터 한 번 더 정독을 했네요.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책임지는 정치인, 새정치의 상징께서.
그리고 그나마 오늘, 일요일은 별 일이 없는 가운데...
뭐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안철수든 국민의당이든 분명히 대선 시즌 시작 이래로 쭉 잘(이 표현에 거부감 느끼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냥 자기들 입장에서 최선을... 이라는 의미입니다.) 해 오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갑자기 이렇게 한 주 동안 장렬한 불꽃 쇼를 보이며 자폭을 하니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네요.
어쨌든 덕택에 안철수는 갑자기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동안 민주당의 네거티브 역공이 전혀 먹히지 않았던 건 우호적인 언론들 덕도 있지만 그동안 잘 가꿔 온 안철수 본인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워낙 강력했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놈의 무릎팍 도사
그런데 그 강력했던 이미지가 이번 주를 기점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제 저 쪽에서 던지는 네거티브들이 날아와서 팍팍 꽂히게 된 거죠.
문재인 아들 건으로 아무리 공격해봤자 그 건은 사실상 (진위 여부를 떠나서) 부정을 100% 입증하는 게 불가능한 건이라 문재인 입장에선 그냥 '아니거든?' 이라고 대꾸해 버리면 끝날 일입니다. 게다가 이미 한 달 넘게 우려 먹은 떡밥이라 약효도 심히 떨어졌구요. 반면에 안철수는 그동안 상당히 덜 까였던 관계로 신선한 떡밥들이 수두룩한 가운데 대선은 4주도 안 남았으니 네거티브 전쟁으로는 일발 역전은 커녕 더 이상 재미를 보기도 힘들어 보입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아마도... 지금 이 시점에서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진짜 역량(?)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서 다시 상승세를 찾아 올 것이냐.
아니면 이대로 주저 앉아 적당히 질만한 차이를 유지하며 투표일을 맞아 속절 없이 '60대 이상 화이팅!'만 외치고 있을 것이냐...
뭐 개인적으론 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만.
안철수의 이토록 화려한 자폭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듯이 문재인에게도 남은 3주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두고 봐야겠... 지만 아무튼 만약 이번 대선이 문재인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면 이 사월 세 번째 주는 안철수 인생의 흑역사로 기록되게 될 것 같습니다.
2017.04.16 17:59
2017.04.17 08:38
원래 스포츠 경기를 봐도 결승전 같은 단기전, 단판 승부에선 실수 적은 쪽이 이긴다는 게 거의 공식이긴 하죠. 실수 적은 것도 실력이니까.
그런 면에서 민주당은 지금까지는 딱히 잘 하는 것도 안 보이지만(...) 동시에 큰 삽질은 없다는 점에서 국민의당보다 유능해 보이긴 합니다.
저야 어쨌든 민주당 쪽에 조금이라도 더 기대를 거는 입장이니 민주당이 극도의 소심 예민 모드로 남은 3주 잘 버텨주길 바랄 뿐이네요. ㅋㅋ
2017.04.16 18:59
이와 관련하여 김종인의 큰 그림 썰이 있더군요.
1. 2016년 4월, 20대 총선 비례대표에서 민주당은 15석 이상, 국민의당은 최대 8석 가량 목표하고 있었음
2. 김종인이 자신을 비례 2번으로 올린 것을 포함 민주당 비례대표 선정과 관련하여 각종 무리수 연발
3. 국민의당은 9번 이후의 비례대표는 안철수계 중심으로 별생각없이 선정
4. 유권자들은 민주당 비례대표에 실망하게 되고 국민의당은 반사이득
5. 총선결과 국민의당은 비례 투표에서 기적적인 선전을 하여 비례 13번까지 당선
6. 이 때 비례 13번, 막차로 원내 입성한 사람이 현직 어린이집 원장이자 전국 어린이집 연합회 부회장인 최도자 의원
7. 이때까지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유치원 관련 정책을 뚜렷하게 세워둔 것이 없었음
8. 선거가 시작되자 최도자 의원은 전국 어린이집 대회에 안철수를 초청하고 어린이집 원장들이 정말로 원하는 정책이 뭔지 알려주게 되는 데 ...
2017.04.17 08:57
디테일이 쓸 데 없이 훌륭해서 그만 웃어 버렸습니다(...)
2017.04.16 19:22
2017.04.17 09:00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가 잠시나마 무적의 캐릭터로 보였던 게 기존 야권 지지층을 상당히 흡수하면서 동시에 기존 새누리 지지층을 대부분 끌어 들이고 있었기 때문인데.
기존 새누리 지지층이야 이런 이슈들에 둔감해서 별 반응이 없겠지만 야권 지지층 입장에선 실망할 수밖에 없겠죠. 문재인-민주당 이미지가 맘에 안 들어서 갈아탔더니 얘가 더 해(...)
2017.04.16 19:57
국가가 정해놓은 게임의 규칙이라는 게 있어요. 토론은 어떤 방식으로 하자와 같은... 그런데 지금 이 방식으로 하면 내가 못이겨, 내가 유리하지 않아. 상대가 불리하지 않아 라는 이유로 규칙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이런 떼쓰기가 어디있나요? 정당내의 경선이라면 정당 자율사항이라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선에서라니...처음부터 다 이런 식이라는 것을 알고 진행한 거잖아요. 그냥 진행하면 누구한테도 유리하지도 않고 불리하지도 않은 것. 바꾸자는 측의 주장대로라면 상대방은 규칙대로라면 노인주제에 힘들지 않게 토론하니 노인네 힘들게 하는 토론방식으로 바꿔달라는 거잖아요. 이딴 소리를 대놓고 하고 있어요. 고령자 체력장 테스트
게다가 1+1교수 채용에 대한 해명을 "퀴리부인도 남편과 함께 1+1 노벨상 탄 것도 비난할거냐?"같은 신박한 멍멍이 소리를 하는 당이었다니...
2017.04.17 09:11
1위가 아닌 (상대적) 약세 후보이자 역시 1, 2위가 아닌 (상대적) 작은 정당이라는 포지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거죠. 덧붙여 우호적 언론까지.
사실 민주당이 나서서 토론 방식 바꾸자 이런 얘기 꺼냈음 얼마나 욕 먹었겠습니까. ㅋㅋ
나름 영리한 플레이이긴 한데 뭐 그 당 지지하지 않는 입장에선 짜증나긴 합니다.
2017.04.16 20:58
2017.04.17 09:13
'도덕성에 큰 타격!!!'
이런 제목의 기사가 하나도 안 나오는 걸 보고 대한민국 언론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었습니다. ㅋㅋ 갑질까진 그렇다 쳐도 사과 없이 당당한 건 정말 치명적인 문제인데 말이죠.
근데 이 건에 대한 안철수의 반응을 보고 이 양반은 대통령 되기 힘들겠다 싶었습니다.
자존심 하나로 대결하자면 절대 뒤지지 않는 박근혜도 대통령 되고 싶어서 인혁당 사과(매우 부실했지만)까지 했는데 안철수 이 분은...;
2017.04.16 22:39
언론이 언론이기를 포기한지 오래 되기는 했지만,,,
(세월호 묻혀진 진실에 대하여는 이제 기사화 해도 될것 같은데 자세가 여전한 것을 보면 씁쓸합니다. 확 뒤집어 엎어 개혁을 하긴 해야 하겠는데, 지들이 저지른 행실은 모른쇠하고 언론탄압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테니 그리 하기도 어렵고,,, 정말 방법이 없나봐요. 독자들이 야무져지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는.)
2017.04.17 11:01
근데 뭐 거창하게 언론 개혁... 이라고 해도 조선 중앙 동아 같은 델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될 일이고.
그냥 공영 방송들이나 좀 제정신 차리게 했음 좋겠습니다. 이건 뭐 종편보다 더 하니.
2017.04.17 01:46
비서관한테 장을 봐 오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저 부부는 절대 청와대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팍팍 듭니다.
2017.04.17 11:02
전 거기까진 '걍 전형적 한국 사장님이시네' 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걸린 후에 아무런 사과 없이 뭉개고 가는 걸 보며 절대 청와대 넣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 중입니다.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요. ㅋㅋㅋ
문재인이 광화문 한복판에서 똥을 싸지 않는한 대통령이 될거라 했었는데, 이젠 똥을 싸도 대통령이 될것이다로 바뀔지도 모르겠군요.
원래 승부라는 것은 자신이 잘해서 이기는 경우도 많지만 도토리 키재기 싸움일 경우는 상대의 자폭으로 이기는 경우가 더 많은거 같습니다.
남은 기간 각 후보들의 실수보다는 진짜 실력이 더 드러나는게 바람직할텐데 지금의 언론환경, 수준으로 그게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어제, 오늘 튀는 뉴스꼭지가 하나 있었는데 YS 상도동계 일부가 문재인에 줄을 섰다는 것과 박영선이 간을 보다가 결국 눌러 앉기로 했다는거
DJ 동교동계가 적폐세력과 손을 잡거나 국민의당으로 줄을 선 것과 김종인, 정운찬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장면들과 오버랩 될 수 밖에 없었어요.
87년의 양김의 분열과 90년 삼당합당에 이르는 한국 중도보수정치세력의 흑역사가 30여년만에 매듭이 지어지고 있는 느낌이 들고
2017년 대선에선 이제 더 이상의 세력간 이합집산으로 인한 변수는 없을것이라는 신호로 보입니다.
이제 얼마나 멋지게 이기느냐 vs 얼마나 멋지게 지느냐 만 남은 싸움이라 김이 샐 수도 있지만 진짜 내공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