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전통적 사회 현상 중 하나로 '대세 타기'라는 게 있죠.

이건 뭐 옛날 표현 그대로 호랑이 등에 타서 질주하는 것과 같아서 한 번 흐름을 타면 무시무시한 파괴력과 파급력을 보여 줍니다.

아이돌로 치면 한 번 대세 궤도에 오르면 한동안은 노래가 구려도, 모자란 실력이 뽀록나도, 다수의 안티들이 씹도 뜯고 맛 보고 즐겨도 다 상관 없어요. 무조건 잘 나가죠.

이렇게 잘 나가던 대세가 무너지는 패턴은 대략 두 가지 정도입니다.

첫 째는 대세를 누릴만큼 누린 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착륙하는 것.

또 하나는 자폭.



- 11일 화요일.


문제의 유치원 대전이 발발되었죠.


뭐 복잡한 얘기, 특히 안철수의 유치원 정책에 대한 평가 같이 어려운 부분은 무식한 제가 보탤 말이 없으니 다 차치하구요.

제게 인상 깊었던 건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무신경함, 내지는 센스 부족이었습니다.


사실 욕 먹게 될 거란 상상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서, 어쨌든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지게 해 주겠다는 공약이잖아요.

까놓고 말해서 문재인이 수퍼 울트라 캡숑 포퓰리즘 파워!!! 를 발동하며 실현 가능성 제로의 사탕발림 낚시 공약을 내놓지 않는 이상에야 그렇게 큰 차별점을 두기 힘들 겁니다.

그런데 그걸 정말 최악의 방식으로 발표를 한 거죠.

학부모 단체 모아 놓고 '병설 6000개를 늘릴 자, 그게 누굽니꺄!!!!' 하면서 발표해서 박수 받고. 단설도 늘려 보겠으나 이런 저런 현실적 문제로 인해 병설 위주로 확장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하고.

그 다음에 사립 유치원장들 모아 놓고 '너무 걱정 마. 너희들 지원도 더 잘 해 줄게. 관리 감독도 그냥 적당선에서 하기로 하고' 이랬음 되는 거잖아요.

도대체 무슨 약을 하셨길래... 라는 생각 밖에 안 드는 발표 방식이었습니다. 스스로 아주 고급진 관짝을 제작해 놓고 제 발로 들어가 드러 누운 듯한 느낌.


그리고 이어지는 해명 릴레이도 문제였어요.

정말로 그 모든 게 오해였다면 광속으로 입장 정리해서 짠~ 하고 해명해서 데미지를 최소화 했어야 했는데.

그 날은 그냥 보도 자료나 페이스북, 트위터 글로 때우고. 다음 날엔 쌩뚱맞게 김경진 의원이 라디오에서 애매... 하게 해명하고.

그 다음 날이나 되어서야 해당 분야 전문가가 나와서 상황을 정리했죠. 하지만 이미 빡칠 사람들은 다 빡친 후이고...

이제 나중에 공약이 자세하게 비교가 되어서 '문재인이나 안철수나 유치원 공약은 거기서 거기'가 되어도 이미 입은 데미지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 12일 목요일.


1) 소소하지만 위의 유치원 대전과 연결되며 좀 덜 소소해진 일이 또 있었습니다. 바로 공무원 임금 조정 관련 기사 수정 사건.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16084&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이런 일이었습니다만.


역시 국민의당 입장에선 좀 억울한 감이 있을 겁니다. 1년 전에, 그것도 정식 공약도 아니고 해 보려고 추진하다 접었던 일이 지금와서 다시 회자되며 표를 깎아 먹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렇다면 그냥 '예전에 자아암깐만 고려하다 접은 건이다. 오해 말라.' 라고 해명하고 깔끔하게 접으면 되는데. 전날 유치원 건 때문에 소심해졌는지 좀 괴상하게 처리를 합니다.

아니 뭐 아예 오보였다면 모를까, 1년 전 기사 자체는 그냥 멀쩡한 기사였던 거잖아요. 이걸 왜 이제사 수정 요청을 해요. 아니라고 밝히기만 하면 되지. ㅋㅋ

게다가 저 날 나온 국민의당 공식 논평에는 저런 구체적인 설명도 없었습니다. 그냥 '그건 가짜 뉴스임. 배포하면 가만 두지 않겠음.' 으로 끝이었죠.

아마도 저런 걸 고려했었다는 사실 자체를 최대한 감추고 싶었던 것 같은데. 결과적으론 거짓말도 아닌데 거짓말하는 것처럼 되어 버리잖아요. 가뜩이니 이미지 깎이던 와중에 말이죠.


2) 그리고 그 날 밤이 바로 문제의 토론...;

토론회에 대한 이야긴 전에도 매우 짧고 무성의한 글을 적은 적 있으니 길게 얘기하진 않겠지만.

일단 누가 뭐래도 가장 데미지를 입은 건 안철수입니다.

왜냐면 애초에 이미지 메이킹을 유능하고 똑똑한 전문가로 잡았던 데다가 그동안 문재인에게 1vs1 토론 제안으로 어그로를 끌며 토론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어필하고 있었으니 말이죠.

바로 전 날 일로 이미지에 상처를 입은 상태로 토론회에서 이렇게 반전의 어버버를 시전하고 나니 데미지도 2배. 문재인은 지지자들 조차도 기대를 안 해서 데미지 제로!!!


근데 아직도 토론에 희망을 걸고 돌아가며 둘씩 짝지어 하는 스탠딩 토론으로 문재인 측을 도발하고 있더군요. 도대체 이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별로 가능해 보이지도 않지만 어찌저찌 문재인을 일 대 일로 털어낸다고 쳐도 그 후에 유승민, 심상정에게 발리고 나면 결국 캐릭터 설정상의 문제로 본인 데미지가 더 클 텐데 말입니다.


그 와중에 '늙어서 두 시간 서 있기도 힘들지?'라고 도발하다가 노인 비하 논란에 스스로 말려드는 건 보너스였구요.



- 13일 금요일


전날 밤에 언론에 의해 제기된 김미경씨의 보좌관 부림 의혹.

이걸 국민의당에서 이 날 오전에 매우 시크하게 '사실 무근' 이라고 논평을 냅니다.

그러고 오후에 바로 김미경씨가 사실임을 인정하고 사과합니다(...)

차라리 논평을 내질 말든가요. 몇 시간도 안 되어서 이렇게 될 걸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해서 또 쓸 데 없이 이미지를 구기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가네요. 한 대 맞고 끝낼 일을 계속해서 두 대로 늘려 맞는 느낌.


그리고 그 와중에 국민의당과 안철수 본인은 이 건에 대해 침묵을 지키죠.

계속 문재인 아들을 공격하고, 아내의 교수 임용 건은 자신 있다는 얘길 반복하면서도 이 건에 대해선 묻고 가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그러다가



- 14일 토요일


안철수가 종편에 출연해서 보좌관 건에 대해서 사과를 했습니다.

아내에게(...)

자기 돕느라 너무 힘들고 바빠서 보좌관들에게 자기 일 좀 시킨 것 같다며... 그래서 자기가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음... 이건 정말 너무 난감해서 뭐라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이해가 안 가서 기사를 한 번 읽고 또 다시 처음부터 한 번 더 정독을 했네요.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책임지는 정치인, 새정치의 상징께서.




그리고 그나마 오늘, 일요일은 별 일이 없는 가운데...


뭐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안철수든 국민의당이든 분명히 대선 시즌 시작 이래로 쭉 잘(이 표현에 거부감 느끼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냥 자기들 입장에서 최선을... 이라는 의미입니다.) 해 오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갑자기 이렇게 한 주 동안 장렬한 불꽃 쇼를 보이며 자폭을 하니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네요.

어쨌든 덕택에 안철수는 갑자기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동안 민주당의 네거티브 역공이 전혀 먹히지 않았던 건 우호적인 언론들 덕도 있지만 그동안 잘 가꿔 온 안철수 본인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워낙 강력했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놈의 무릎팍 도사

그런데 그 강력했던 이미지가 이번 주를 기점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제 저 쪽에서 던지는 네거티브들이 날아와서 팍팍 꽂히게 된 거죠.


문재인 아들 건으로 아무리 공격해봤자 그 건은 사실상 (진위 여부를 떠나서) 부정을 100% 입증하는 게 불가능한 건이라 문재인 입장에선 그냥 '아니거든?' 이라고 대꾸해 버리면 끝날 일입니다. 게다가 이미 한 달 넘게 우려 먹은 떡밥이라 약효도 심히 떨어졌구요. 반면에 안철수는 그동안 상당히 덜 까였던 관계로 신선한 떡밥들이 수두룩한 가운데 대선은 4주도 안 남았으니 네거티브 전쟁으로는 일발 역전은 커녕 더 이상 재미를 보기도 힘들어 보입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아마도... 지금 이 시점에서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진짜 역량(?)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서 다시 상승세를 찾아 올 것이냐.

아니면 이대로 주저 앉아 적당히 질만한 차이를 유지하며 투표일을 맞아 속절 없이 '60대 이상 화이팅!'만 외치고 있을 것이냐...


뭐 개인적으론 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만.

안철수의 이토록 화려한 자폭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듯이 문재인에게도 남은 3주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두고 봐야겠... 지만 아무튼 만약 이번 대선이 문재인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면 이 사월 세 번째 주는 안철수 인생의 흑역사로 기록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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