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30 03:56
1.몇 번 정도 썼던가요? 나는 바뀌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원형(original form)을 유지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이죠.
어떤 사람은 그럴 거예요. 다양한 장소를 다니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겪어서 변화와 성장을 해나가는 게 인생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사는 거엔 관심이 없어요. 나를 다른 무언가로 바꿔버리려는 세상을 상대로 나 자신을 지키는 게 가장 해볼만한 싸움이라고 믿거든요.
나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면, 지키지 못한 자신을 되찾는 싸움을 하거나요.
2.최근에 만난 분이 있어요. 닉네임은 뭐 '빈디체'라고 해 두죠. 빈디체와 이야기하다가 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나는 모든 여자의 안에는 공주가 있었거나 있다고 믿어요. 성질이나 스케일이 각자 다를 수도 있겠지만 여자의 안에 공주는 있는거예요. 그러자 빈디체는 그럼 모든 남자에게도 왕자가 있냐고 물었어요. 그야 그것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모든 남자의 안에는 왕자가 있다고 말이죠. 다만 남자와 여자는 좀 다르긴 하지만요.
여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99%의 잘나지 않은 남자들은 살면서 알게 되거든요. 잘나지 않은 남자들이 자신 안에 왕자가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내보이거나 들켜버리면 돌아오는 건 조롱뿐이라는 걸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들에게 기대하는 역할들, 부여하는 역할들 중 하나를 골라 그냥 그렇게 살아가게 돼요. 그게 너무 길어지면, 자신이 왕자라는 걸 잊어버리게 되는 거고요. 어쩌면 그것 또한 나름대로의 행복이기도 하죠.
하지만...감수성이 강한 녀석들은 그걸 절대 잊지 않거든요. 그들은 기차를 타고 어딘가 멀리 갈 때나 홀로 추운 밤거리를 걸을 때...혼자가 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종종 생각하곤 해요. '뭐가 어떻든, 나는 왕자가 맞아. 하지만 어째서 신은 나의 마음만을 왕자로 만들고 나의 다른 부분들은 왕자로 만들지 않은 걸까?'라고요.
3.이런저런 자리나 모임에 나가면 이런저런 남자와 여자들을 보게 되죠. 한데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남자들의 90%는 사실 모임에 여자들을 보러 가는 거잖아요? 그게 영화 모임이든 마작 모임이든 악마숭배 모임이든 채식주의자 모임이든 줌바댄스 모임이든 말이죠. 90%의 남자들은 여자를 보러 가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지 않은 나머지 10%의 남자도 마음에 드는 여자를 모임에서 발견하면 '여자를 보러 모임에 나가는 남자'가 되는 거고요.
그래서 내가 흥미깊게 관찰하는 건 여자들보다 남자들의 행동과 태도예요. 왜냐면 행동과 태도는 곧 전략이니까요. 어떤 녀석은 똑똑이인 척 하고 어떤 녀석은 낭만적인 척 하고 어떤 녀석은 광대 역을 자처하고 어떤 녀석은 정의로운 척 하고 어떤 녀석은 여성인권을 말하고 어떤 녀석은 까다로운 틱틱이가 되죠. 자신에게 잘 맞는 전략을 찾는 녀석도 있고 잘 맞지 않는 전략으로 자폭하는 녀석도 있죠.
4.휴.
5.하지만...내 생각은 그래요. 전략은 실체가 아닌 포장지일 뿐이라고요. 나는 그들을 보며 생각하곤 하거든요. '철학자'에게도 '읍소하는 녀석'에게도, 사람들을 웃겨 보려는 녀석에게도, 틱틱거리는 녀석에게도, 페미니스트에게도, 정의로운 녀석에게도, 말없이 남들의 컵과 수저를 셋팅하는 녀석에게도, 수줍은 녀석에게도, 다른 사람들의 술잔이 비었는지 아닌지 늘 신경쓰는 녀석에게도...그들 모두의 안에는 사실 왕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요.
그리고 그들이 왕자인 자신으로 자신을 되돌릴 만한 무언가의 힘을 손에 넣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분명한 길일 거라고 여기곤 해요.
공주/왕자 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거 비슷한거는 있지요, 누군가는 꽁꽁 싸매고 묶어서 감추는데 성공하지만 누군가는 너무나 쉽게 보이기도 하지요.
어떻게보면 왕자가 아니라 자신만의 왕국에 왕/여왕 이겠지요. 하지만 그 자신의 나라의 왕일뿐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왕과 왕의 동등한 만남이지요.
그리고 결혼 적령기가 되면 이 왕/여왕이 왕자/공주인척하는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