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이후 줄여서 까라마조프 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이 소설이야 워낙 잘 알려진 고전이니까 어느정도 스포일러에  민감한(?) 듀게에 내용을 써도 무방하겠죠

(제목도 스포일러라면 스포일러네요)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는 것은 까라마조프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열렬한 크리스찬인 작가는 점점 강해지는 무신론 사상를 비판하기 위해서 펜을 들고,
이 두꺼운 장편을 써내려갔습니다.

작가가 생각한 신이 없는 세계는

도덕과 정의의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세계였습니다.

정말로 신이 없다면, 지켜야될 계명 같은 것이 없다면

인간은 무엇을 하던 한 없이 자유롭다는 겁니다.


물론 이는 크리스찬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타당한 이야기겠지만

신이 없어도 모든 것이 허용되진 않죠.


진화심리학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합의나 계약은 많은 경우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의 리스트로 이뤄져있기도 하고요.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에 칸트의 철학서들을 읽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작가에겐 같은 크리스찬이었던 칸트의 정언명령은 신의 명령와도 같았던 것 같습니다.


소설 속에서 둘째아들 이반이 말하는 대심문관은

신의 여부와 대해서 같지만 재밌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건 인간에겐 자유란 필요가 없고, 불필요한 거추장 스러운 요소라는 겁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칸트가 말하는 정언명령(혹은 작가가 동일시 하는 신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게 하는

자유가 아니라, 피와 뼈가 되는 빵이라는 겁니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양심, 즉 저 하늘의 빛나는 별과 같은 내 마음의 도덕법칙이고

그것이야말로 자유가 존재하는 증거이기에


자유를 스스로 박탈하고, 물릴적으로 타락한 무법속(혹은 신의 법과 분리된 인간의 법)에서 살아가는 
무신론자에겐 진정한 자유는 없다고도 돌려서 말하는 듯 합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무신론을 상징하는 이반은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미치고 맙니다.


그것은 그가 정언명령에 따르지 않아서,

신의 가르침을 위반해서 필연적으로 겪어야할 고난의 짐으로

이반은 단죄합니다.


작가의 다른 장편 죄와벌에서도 비슷한 주제가 반복되는데,
사회 규율에 얽매이지 않은 나폴레옹 같은 거대한 초인이라면

악독한 노파 하나 죽인다고 양심의 가책앞에 벌벌 떨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역시 죄와 벌의 주인공은 
자신의 죄의 무게를 스스로 이기지 못하고 무너집니다.


다소 노골적인 기독교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넘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꾸준히 읽히는 것은


신앞에 엎드리라를 

양심에 엎드리라로 

치환해서 읽힐수도 있기 아닐까 싶습니다.


커트 보니것은 그의 소설에서 괴짜 SF작가를 통해서

까라마조프 소설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라고 평하는데


이 소설에 어울리는 가장 근사한 평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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