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인을 오랫만에 보고

2017.12.16 18:48

살구 조회 수:1286

막 미성년을 벗어났을 때 본 영화고 92년에 개봉했다니 25년이나 되었군요.

한참 연배가 있는 남성분이 꼭 보라고 권해서 봤는데 어린소녀가 너무 예뻐서 야하다는 생각도 잘 안들었어요.

영화보고 난 후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원작을 서점에서 단숨에 읽어내려갔네요.


아믛든 중년이 되어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있자니 예전과 많이 다릅니다.

원작은 영화와 비슷하지만 미묘한 여러가지를 추측하게 만듭니다. 남주인공은 식민지 출신이지만 유학까지 갔다온 최상류층이고,

여주인공은 침탈국민이지만 몰락한 극빈층이죠. 남자는 파리유학시절 여럿 백인여성과 사귀었다고 하는데 열등감에서 시작된 연애가

그렇듯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주인공에게 다가간 것도 미모에 끌리기도 했지만 이런 이유도 있었을것이라고 씌여있습니다.

여주인공은 남자의 접근에 도발하면서도  철저하게 돈때문에 만나는 것으로 그를 대합니다.

깍듯한 매너를 보이는 남주인공을 가족과 함께 조롱하고  매번 돈을 노골적으로 받아내고 말이죠. 콧대높은 백인으로서 우위에 서서  

남자를 '나의 연인'이 아닌 '중국인'으로 지칭하고, 남자가 정략결혼으로 이별을 고할 때도 냉정한 모습을 보이죠. 

여주인공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면서 눈물 한방울 없이 선심쓰듯 남자가 자신을 처음 봤던 모습을 재연하듯 보여주죠.

그런데 비로소 혼자가 되자 미친듯이 눈물을 흘리며 남주인공을 진심으로 사랑한 것으로 인정합니다. 

감정없이 오랫동안 관계가 지속되기 힘들기도 했을거에요. 끝까지 돈때문에 만났다면... 글쎄요.  너무 끔찍하네요.

여주인공은 대학에 가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새로운 연인과 살며 유명한 소설가가 되는 등 나름 잘 살아갑니다.

그러다 아직까지 그녀를 잊지 못하는 중년의 남주인공의 전화를 받지요. 남주인공은 그녀를 아직까지 잊지 못했다는 거겠고요.

아직도 사랑한다는 그의 목소리에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여주인공이자 소설가는 성적인 묘사를 매우 과감하게 그리면서도(솔직하게 보이도록) 남자의 애정이 그 이상이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소녀가족들에게 말도 안되는 모욕을 견디고, 엄격한 아버지에게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하고,  정략결혼의 괴로움을 호소하고.. 정말 그랬을까요?

남자는 정사를 치루기 위해 만들어진 시장통의 허름한 곳에서 소녀를 매번 만납니다. 학교에 다니는 소녀의 평판을 고려한 적도 없고요. 뻔질나게 소녀를 데리고 나가죠. 

책에서는 소녀의 가족에게 받은 모욕에 화를 냈다고 하는데 외려 소녀의 그러한 배경에 안심하지 않았을까요? 

남자가 과연 아버지에게 허락을 애걸했을까요? 남자의 결혼상대에서 소녀만큼 부적격한 사람은 없습니다. 

남자가 진심을 가졌다고 해도 영화나 소설에서 소녀는 한결같이 냉담합니다. 소녀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거죠. 소녀도 결혼에 합의한거라면 이야기는

처음부터 이상해집니다. 남자의 '넌 프랑스 창녀야'하는 구절이 진실이겠지요. 30대 초중반의 닳고닳은 남자의 행보는 철저히 현실적입니다. 

배운 사람답게 끝까지 예의로 여주인공의 가족을 대하고, 정해진 결혼을 하고,  여자의 비밀리에 만나자는 제의를 거절합니다.  

전 어쩐지 중년이 된 여주인공에 건 전화가 진짜 소설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린시절 돈때문에 만나는 남자였지만 나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바치는 남자였고 난 여전히 우위에 있다.. 이런 심정이 불러낸 환상같은거요.

남주인공이 열등감때문에 여주인공에게 접근했다고 하는데 진짜 열등감은 여주인공이 느끼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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