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느날 인시디어스4를 보고 돌아오며 누군가와 저출산에 관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와 나는 이런저런 이유들... 출산의 어려움이나 육아의 어려움...경제적인 이유들을 들어가며 떨어지는 출산율에 대해 이야기했죠. 


 뭐 이건 맞는 말들이예요. 아이 한 명에 들어가는 비용은 정말 높죠. 아이를 낳기 이전, 결혼이라는 과정부터가 돈이 꽤나 들고 산모에게 들어가는 비용, 아이를 낳은 후에 보호하고 교육시키는 데 필요한 비용...정말 엄청나요. 그리고 내가 관찰한 바로, 육아비라는 건 한계가 없어요. 왜냐면 어지간한 것들...식사나 옷 같은 지출은 일정 수준에서 멈추곤 하잖아요? 한데 아이에 있어서만큼은 다들 한계까지 지출을 한단 말이죠. 여윳돈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지금 시키는 영어공부보다 좀 더 좋은 영어공부를 시키고 좀더 좋은 곳에 보내려 한단 말이죠. 너무나 고도화된 세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한 투자가 끝을 모르고 인플레이션 되고 있죠. 가면 갈수록 아이를 낳기도 힘들고, 힘들게 낳은 아이를 키우기도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뻔한 말을 쓰려던 거라면 애초에 이 글을 안 썼겠죠? 나는 그에게 말했어요. '내 생각에 저출산은 인터넷의 영향이 상당히 커.'라고요.



 2.그가 무슨 말이냐고 물어서 재차 말했어요.


 '왜냐면 인터넷은 압도적인 간접경험이니까. 그곳에는 온갖 간접경험들과 사례가 난무하고 있어. 그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지.'


 뭐 그렇잖아요? 옛날에는 주위에서 찾을 수 있는 놈들 중에 그나마 똑똑한 놈들에게 뭘 물어보러 가야 했어요. 하지만 솔직이, 주위에서 찾을 수 있는 놈들 중 그나마 똑똑한 놈이라면 그건 별로 똑똑한 편은 못되거든요. 아니, 똑똑하고 말고를 떠나서 어떤 사람이 온갖 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는 거예요. 그리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상대에게 필요한 최적의 지식을 선별해서 제공하는 능력은 또 별개인거죠.


 그렇기 때문에 아날로그 시절에는 정보의 편중이 매우 심했어요. 정보 자체의 편중도 심했고 내게 최적화된 정보의 편중도 심했죠. 그렇기 때문에 사실 인생이란 건 삽질의 연속이었던 거예요. 자신이 태어난 지역에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선택권은 적었고, 자신이 선택한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실제로 겪어본 뒤에야 알 수 있던 거죠. 


 그러니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자위용 헛소리도 탄생한 거고요. 젠장, 한 사람이 투자할 수 있는 리소스는 한정되어 있다고요. 돈, 시간, 열정, 집중력...이런 걸 쏟아붓는 짓거리를 몇 번이나 반복할 수는 없는 거라고요. 알맞은 시기에 알맞은 규모의 실패 딱 한번이라면 몰라도, 기본적으로 실패는 실패의 어머니지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죠.


 어쨌든 그래서 결혼이나 출산, 육아도 그랬던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이나 출산, 육아가 어떤 것인지 막연한 상태에서 감행했죠. 그냥 그럴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주위의 압력 때문에...같은 이유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작용했을 거고요.



 3.하지만 인터넷이 생겨버리고 말았어요. 물론 인터넷에는 거짓 정보도 많고 과장된 정보도 많죠. 하지만 어쨌든 인터넷에 누적되는 사례들을 보면 간접경험이 가능하거든요. 용산에서 파는 전자제품 가격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다들 알게 됐고 원래라면 평생 몰랐을 다른 층위의 것들도 사람들은 보고 들을 수 있게 됐어요.


 뭐 이건 좋은 거예요. 어쨌든 많은 정보가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건 반대의 경우보다 건전한 일이니까요. 그리고 주위 사람만들이 아닌, 훨씬 먼 곳에 있는 다양한 다른 사람들의 조언이나 경험담을 들음으로서 자신의 선택에 참고로 삼을 수도 있고요.


 여기까지 말하자 그는 '그럼 뭐가 문제지?'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다시 말을 이어갔어요.



 4.휴.



 5.'왜냐면 젠장! 사람들은 어떤 것의 좋은 것과 나쁜 걸 미리 다 들어버리면, 나쁜 면만을 더 걱정하게 된단 말야. 맞아...결혼은 끔찍하지. 육아도 끔찍하고. 징징거리는 애새끼를 위해 돈을 존나 붓는 건데 그게 좋을 리가 없잖아. 겪지 않고 그냥 듣는 것만으론 그건 존나 끔찍한 거라고.'


 그래요. 스마트폰 가격을 비교할 때는 인터넷이 참 좋은 교과서예요. 그런 작은 결정을 내릴 때는 말이죠. 하지만 인생의 큰 결정은? 인생의 큰 결정을 다른 사람이 겪은 사례만을 듣고 결정할 순 없는 거예요. 결혼이나 육아같은 걸 해보지도 않고 미리 다 알아버렸다는 듯이 굴 순 없단 말이죠.


 하지만 솔직이 그렇잖아요? 다른 사람의 짜증나는 결혼생활 이야기나 힘든 육아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겁이 나요. 존나 겁이 난단 말이예요. 이건 당연한 거예요. 그걸 직접 해낸 사람들은 눈앞에 놓인 하루치의 결혼과 육아를 겪어온 거잖아요? 매일, 하루하루 말이죠.


 하지만 듣는 사람들 입장에선 몇십년어치의 그 힘든 것들이 한꺼번에 닥쳐온단 말이예요. '이런 쉬발, 저 힘든 족쇄에 몇십년간동안 묶여서 살아야 한다고? 난 그럴 수 없어!'라고 비명지르게 된단 말이죠. 그냥 모르고 뛰어들었다면 긴 마라톤을 뛰듯이 뛰면서 바람도 느끼고, 멈춰서 물도 마시고 바뀌어가는 경치도 봐가며 해냈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긴 트랙을 부감하듯이 위에서 봐버리면 뛰어들 엄두가 안 날 수밖에요.


 이것도 인터넷의 폐해인 건지, 요즘은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이 뭘 아는 척을 더 잘해요. 옛말에 '서울에 안 가본 놈과 서울에 가본 놈이 서울 가지고 말싸움을 하면, 서울에 안 가본 놈이 이긴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런 놈들은 상대하기 까다롭죠. 확신과 아집에 차 있으니까요. 이건 어쩔 수 없어요. 경험이란 건 우리를 더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거든요. 실재하는 것을 실제로 상대할 때 마주해야 할 고됨과 위압감을 겪고 나야 인간은 겸손해지는 거니까요.  



 6.언젠가 박진영이 말했었죠. 인터넷이 없던 아날로그의 세상과 인터넷이 있는 세상, 두 세상의 감성 모두를 접할 수 있는 시기에 태어난 게 행운이라고 말이죠.


 나도 아날로그의 세상과 인터넷의 세상 둘 모두를 접할 수 있던 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이유는 좀 다르지만요.


 일단 인터넷은 있어야 해요. 인터넷이 없으면 삶이 심심하기 때문에? 물론 그런 이유도 있지만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외향적인 사람이 아웃풋을 내는 데 지나치게 유리하거든요. 그야 나도 외향적일 때가 있지만 그건 놀 때뿐이예요. 돈을 벌어야 하는 경제 활동을 할 때는 도저히 남과 섞일 수 없죠. 아날로그 시절엔 남들이랑 밥도 먹고 골프도 쳐야 정보를 모았겠지만 이제는 컴퓨터 앞에서 앉아서도 어지간한 정보들은 다 모을 수 있죠. 정말 말도 안 되는 고급 내부정보 같은 걸 빼면요.


 

 7.하지만 너무 이른 시기에 인터넷을 접하지 못한 것 또한 내겐 행운이었어요. 왜냐면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이 내게 주어졌다면 나는 절대로 스스로 부딪히지 않았을 거니까요. 인터넷에서 남들의 사례를 보고 들은 것들만을 가지고 선택을 결정하는 인간이 되었을 거예요.


 이건 문제거든요. 다리를 건너기 전에 조심하는 건 좋아요. 인터넷을 보고 다리를 건너다가 굴러떨어진 인간들의 사례를 보고 나면 아무리 돌다리라도 건너기 전에 두들겨봐야만 한다...라는 건 배울 수 있죠.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돌다리를 얼마나 두들겨야 하는지는 모르는 거예요. 


 돌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계속 두들기기만 하는 인간은 결국 다리를 건널 수 없거든요. 그것만큼은 직접경험으로 감을 잡아야 해요. 돌다리를 얼마나 두들길 건지, 얼마나 확신이 들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다리를 건널 건지 말이죠. 주식을 예로 들면, 위험하지 않은 주식이란 건 없어요. 모든 주식이 위험하죠. 대충 '이때쯤이다'라는 분석에 확신이 들면 그땐 가진 돈을 들고 돌다리를 건너는 거...최소한의 경험은 있어야 결정을 내릴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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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누군가는 이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너도 결혼을 직접 겪어본 건 아니니까 언젠가 결혼을 할 수도 있겠네?'라고요. 하지만 그건 아니예요. 내가 직접경험으로 알아낸 바에 의하면, 내가 돈을 퍼주는 여자를 나와 맞먹게 해주면 늘 안좋은 일이 일어나더라고요. 뭐 이건 여자만이 아닌 인간 본연의 습성이긴 하지만요. 그러니까 결혼은 할 필요가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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