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확히는 3시간 29분이고 마지막 스탭롤이 거의 10분이라 3시간 19분, 그러니까 199분 밖에(??) 안 되긴 합니다만. 드디어 다 봤네요.

 사실 어제부로 이제 게임 좀 하고 살아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 붙잡아 본 '울펜슈타인: 뉴 콜로서스'가 기대보다 재미가 없기도 했고, 또 올 겨울 방학에 셀프 과제로 생각했던 일들 중 첫번째가 이 영화를 보는 거여서 그냥 눈 질끈 감고 틀어 놓고서 열심히 봤어요.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대충 집 정리한 후에 영화 틀고, 보면서 밥 먹고, 너무나 편안한 자세로 보다가 그만 중간에 한 번 졸고(...) 그래서 다시 돌려서 보다가 결국 스탭롤을 마주하고 나니 어린이집 보낸 딸 데리러 갈 시간이 한 시간 남았네요. 이런 긴 영화는 정말 제 방학에 해롭습니다. ㅋㅋㅋㅋ


 아. 스포일러는 없어요. 어차피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이런 게 의미가 있겠습니까만.



 - 스토리 요약은 무의미하겠지만 그냥 간단하게 캐릭터 소개라도.


 로버트 드 니로는 원래 트럭 운전사입니다. 아내와 함께 딸 셋을 키우는 가장이죠. 소고기를 운송하다가 적당히 떼어먹기도 하고, 그러다 격하게 떼어 먹어서 재판도 받아 보고 그랬지만 다행히도 운송 노동 조합계의 히어로 지미 호파님께서 세워두신 안전망 + 잘 만난 변호사 덕에 무사히 살아 남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주유소에서 만났던 자동차 잘 고쳐주는 아재와 운명적인 인연(자기 도와줬던 변호사의 형이래요)으로 엮이면서 노조원 겸 마피아 히트맨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동차 아재의 추천으로 지미 호파를 바로 곁에서 돕게 되는데...


 그리고 조 페시는 바로 자동차 잘 고쳐주는 아재이구요. 그 정체는 그 동네의 돈 콜레오네. 단순한 동네 조폭이 아니라 나름 꽤 스케일 크게 사업하는 사람이죠. 당연히 악당이긴 하지만 본인 직업 윤리에는 철저한 사람으로 나름 긍정적으로(!?) 그려집니다.


 마지막으로 알 파치노는 바로 지미 호파 역이구요. 노동 운동계의 전설의 레전드이지만 그러면서 해먹을 건 다 해먹고 뭣보다 마피아와 결탁해서 그들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이용해먹습니다. 같은 노조여도 자기가 리드하는 노조가 아니고 그들이 자신의 이득과 충돌하면 그냥 인정사정 없어요. 하지만 자기편에겐 또 아주 둘도 없이 좋은 사람이고 뭣보다 자기 아빠도 꺼려하는 드 니로 딸의 마음을 간단히 사버릴 정도로 따뜻한 면도 있고 그래요.


 ...솔직히 '현실의 진짜 그 분들보다는 엄청 미화했겠구먼' 이라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봤습니다. ㅋㅋㅋㅋ



 - 소감부터 말하자면 참 늙은 영화(...)입니다.

 근데 아주 곱게, 간지나고 품위 있게 늙은 영화이기도 해요.


 배우들 얘기부터 하자면, 아무리 특수 효과로 세월의 흔적을 지워 봐도, 그리고 육체적 액션을 최대한 줄여 봐도 이미 70~80된 할배들의 몸짓이나 목소리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주인공들의 젊은 시절을 보여줄 때조차 '늘금'이 확연하게 드러나서 좀 웃길 때도 있고, 뭔가 희한한 구경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래요. 전에 게시판 어느 분께서 실버 타운 할배들의 연극 무대를 보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신 적 있는게 그게 되게 적절한 표현이었다는 걸 보면서 느꼈죠.

 하지만 어쨌거나 연기 내공이, 특히 마피아 연기 내공은 몇 갑자가 되는 할배들인지라 그 어색함에 킥킥거리면서도 결국 캐릭터들이 납득이 되더라구요. 그리고 나중에 그 할배들 실제 나이와 대충 걸맞는 시기로 넘어가면 되게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특히 막판에 한 명씩 한 명씩 사라져가고 마지막 남은 한 명이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의 이 할배들 모습과 겹쳐 보이면서 슬픈 감정이 와르르...


 그리고 스콜세지 영감님에 대해서 말하자면 뭐,

 이 양반의 갱스터 영화를 우리가 한 두 번 보는 게 아니잖아요. 뭐 대충 다 아는 연출이고 대충 다 아는 전개고 그렇죠. 특별히 튀는 구석은 없는 전형적인 스콜세지 영화라는 느낌.

 그런데 그게 전체적으로 되게 유려하고 장중하고 멋지고 그래요. 특별히 자극적인 장면이 별로 없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구요. 단점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뭐랄까. 예전 영화들에 비해 좀 주인공들에 대해 온정적으로 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갱스터 영화이다 보니 나중엔 결국 싸우고 갈라서도 비정한 선택을 내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세 캐릭터 모두를 그렇게 부정적으로는 그리지 않아요. 스콜세지 옹도 나이 먹고 많이 온화해지신 것 같기도 하고. 뭐 덕택에 결말 부분의 스산한 느낌이 더 잘 살아난 것 같아서 맘에 들었습니다.


 한국식 나이 기준으로 이제 마틴 스콜세지가 79세, 알 파치노가 81세, 로버트 드 니로와 조 페시가 78세입니다.

 앞으로 언제 부고 소식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4인조가 모여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니 앞으로 이 멤버들로 다시 이런 작품은 볼 수 없을 거라는 게 현실적인 예측이겠고,

 그런 의미를 갖는 이 작품이 네 명의 능력을 모두 맥시멈급으로 뿜어낸 수작이라는 게 참 다행이고 기쁘고 그렇습니다.

 이 양반들의 리즈 시절을 함께하며 나이 먹은 사람들이라면 비판을 할 수는 있어도 무시하거나 미워할 수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 위에서 적은 것과 같은 이유로, 비록 기생충이 올라가 경쟁하고 있긴 하지만 올해 아카데미는 이 영화에게 좀 많이 안겨줘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넷플릭스라고 해서 왕따 시키기는 좀 그렇잖아요. 일생 동안 그냥 극영화판에서 활약했던 레전드들이기도 하고. 또 애초에 넷플릭스로 갈 생각으로 만든 영화가 아니었더라구요. 제작 중에 문제가 생겨서 제작비가 너무 커져버렸고, 추가적인 투자를 투자사들에게 바람 맞으며 프로젝트가 흔들리던 와중에 손 내밀어준 게 넷플릭스 뿐이었다는데 그걸 배신자라고 따돌려 버리는 건 명분이 안 되죠.



 - 암튼 참 길고도 훈훈한(?) 시간이었습니다. 얼마 전 스콜세지의 마블 영화 관련 때문에 기분 상하신 분들 많은 건 알지만 이 정도 물건을 만들어서 떡하니 내놓으면 뭐 그냥 양해해드려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ㅋㅋㅋ 잘 봤습니다.



 +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In The Still Of The Night은 제 또래에겐 이 양반들 버전으로 더 익숙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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