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기...(자식과 육아)

2020.04.08 15:51

안유미 조회 수:711


 #.누군가가 이런 말이 했죠. '예술가들이 자식을 낳고 키우는 데 관심이 없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자신의 작품이 곧 자식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작품이라는 후손이 있기 때문에 자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고요.


 하지만 나는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하기도 해요. 보통 사람들이 자식을 낳고 키우려는 이유는 그들이 예술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들에게는 작품을 만들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식이라도 낳아야만, 일종의 '창작에 대한 열망'이 해소되는 거 아닐까 했었다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요즘 접해본 여러 부모들이, 자식에게 자신의 의지나 이상을 투사하는 경우가 많아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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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자식이란 건 뭘까요? 그야 자식의 관점에서 보면 부모라는 건 일종의 뽑기예요. 나를 대하는 태도가 어떨지, 나에게 줄 수 있는 자본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나에게 자신의 자원을 얼마나 이양해줄 생각이 있는지, 내가 어디까지 개판을 쳐도 나를 응원해줄지, 나를 위해서 어디까지 희생해줄 수 있을지...등등의 요소는 순전히 운빨이니까요.


 

 2.부모의 관점에서 보면 자식이란 건 뭘까요? 자식을 자신의 짐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고 자식의 자신의 작품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겠죠. 내가 본 부모들은 대부분 후자예요. 또는 결국에는 후자가 되거나요.


 자식을 사랑한다...는 말을 누구나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한데 세상에는 자기 자신이 브랜드(작품)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래요. 자신에게 가능성은 사라지고 일말의 자본만이 남은 상태에서, 자신의 자식에게 자본을 투입해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려는 거죠. 어렸을 때부터 영어와 중국어를 가르치고 영어유치원을 보내고 사립 학교를 보내고 좋은 과외강사와 학원을 알아내기 위한 정보전을 펼치는 어머니들...그 수준을 맞춰주기 위해 뼈빠지게 일하는 아버지들...그들은 조각가처럼 일종의 작품 활동을 하는 거예요. 받아든 원석을 깨부수고 다듬으면서 그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형태로 만들어내는 거죠.


 물론 깨부숴지고 다듬어지는 원석의 입장에선 매일 엿같겠지만요.



 3.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위에 말한 것처럼 자식 또한 뽑기의 요소가 있겠죠. 아무리 열정 있는 조각가라도 안 좋은 원석이 주어지면 동기부여가 약해지니까요. 피지컬이나 외모, 두뇌, 성장성, 감각, 사교적인 눈치 등등을 갖고 태어나는 아이가 있고 아닌 아이가 있으니까요. 


 물론 반대로 말하면 그저 자식의 행복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모들도 상위 1%급 원석을 받아들면? 갑자기 예술가적인 면모에 눈을 뜨게 되기도 하겠죠.



 4.휴.



 5.물론 위에 든 예는 너무나 한가지 공식으로만 생각해본 거고...대부분은 복합적인 감정이겠죠. 아웃라이어가 아니고선, 결국은 스펙을 잘 쌓아야 할 나이에 스펙을 잘 쌓는 게 평균적이고 확률 높은 성공을 보장해 주는 거니까요. 그러기를 바라는 부모의 사랑의 마음도 있고, 자식이 자신의 얼굴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도 조금씩은 있겠죠.


 물론 부모의 자산이 수백억대라면 취할 수 있는 전략도 달라지고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의 갯수도 다양해지긴 해요. 위에 쓴 모든 노력들을 퍼부어서 굉장히 잘 된다고 해도 전문직 루트를 타서 1년에 몇억 정도 버는 게 '굉장히 잘 된'모델이니까요.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산이 수백억대도 아니고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의 갯수도 적어요. 


 그러니까 자식을 어린 나이에 마구 굴리는 건, 경제학적으로 보면 맞는 전략이긴 해요. 어른을 마구 굴려봐야 1년마다 연봉을 천만원, 2천만원씩 올리는 거 불가능하잖아요? 하지만 가능성을 품은 어린 아이라면 마구 굴리고 비교적 적은 자본을 투입해서 좀더 높은 수준의 경제활동을 기대해볼 수 있는 거죠. 일종의 구단주와 감독, 그리고 선수의 관계인거죠. 구단주는 돈을 대고 감독은 선수를 트레이닝시키고 본게임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도록 만들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선수' 노릇을 해야 하는 입장의 아이들은 글쎄요. 왜 이렇게 굴러야 하는지 왜 이렇게 빡빡하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거든요. 그래서 부모자식의 관계는 삐걱거리곤 하는 거겠죠.



 6.글쎄요...내 생각을 말해보라면 이거예요. 첫번째 문제는, 아이들은 좆같은 게 뭔지 모른다는 거죠. 두번째 문제는, 아이들은 좆같은 게 뭔지 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물론 그들 나름의 좆같음도 좆같음이지만, 이세상에는 1층 밑의 지하실이 있고 지하실 밑의 지옥이 있거든요. 


 좆같은 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좆같은 게 뭔지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진짜로 좆같은 게 뭔지 아는 사람과의 관계는 삐걱거릴 수밖에요. 부모들이야 이미 사회를 충분히 겪어봤으니 알죠. 사회가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얼마나 냉혹한지를요. 그리고 자신의 자식이 냉혹한 대우를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조급한 법이예요. 왜냐면 지옥 같은 사회를 대비할 시간이 채 10년도 안 되니까요. 그 10년 안에 아이에게 좋은 무기를 쥐어주고 단단한 갑옷을 입혀주고 싶겠지만...대부분의 아이들의 입장에선 반발할 수밖에 없겠죠.


 

 7.물론 자산이 엄청 많다면 위의 과정을 걸러내도 되긴 하겠죠. 자식에게 교육을 주는 대신 자산을 주면 되니까요. 


 이렇게 쓰면 누군가는 '그럼 인생의 목적은 뭐냐?'라고 하겠지만...그건 원래 부모가 주는 게 아니예요. 위에 썼듯이 부모가 줄 수 있는 건 목적이 아니라, 사회에서 버틸 수 있는 갑옷뿐이거든요. 목적은 알아서 찾아내야죠.



 8.흠...글이 좀 이상하네요. 원래 시작은 자식은 부모에게 있어 작품이다...라고 쓰려다가 갑자기 닦달하는 부모와 자식의 갈등에 대해 써버렸네요. 의식의 흐름에 일기를 맡기면 이래서 안 좋아요.


 뭐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정말 그래요. 이제 슬슬 주위 사람들이 자식을 낳기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그들의 프로필사진이 그들의 자식 사진으로 고정되는 걸 목격하고 있죠.


 사실 프로필사진엔 대개 자신의 최고 스웩을 올리는 법이예요. 뭔가 멋진 곳에 여행간 사진이나 아니면 예쁘장한 외모를 타고난 자기자신, 또는 헬스장에서 몇년간 땀흘린 흔적인 근육을 자랑하는 사진, 아니면 스포츠카를 자랑하는 사진, 아니면 돈다발을 자랑하는 사진...등등. 한데 역시 최고의 스웩은 자식스웩인 건지...모두가 자식을 낳으면 프로필 사진이 자식으로 바뀌고 마는 거예요. 그래요...어쩌면 일반적인 인간으로서는 자식이야말로 본인의 최대 업적이자 작품일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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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이나 육아 글은 다음에 또 써보죠. 너무 길어졌네요.


 오래전의 나라면 '고작 아이가 자신 인생의 최대 업적이라니! 그거 너무 스케일 작지 않아?'라고 말하고 다니겠지만...글쎄요.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우는 일은 대단히 목에 힘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뭐 나중에 또 써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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