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맡은 학년 애들이 교육부의 순차 개학 플랜 중 마지막이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주에 개학.

 드디어 제 기나긴 다이어트 시즌이 끝이 났습니다. 음핫하.



 - 근데 살은 오히려 더 빠지고 있어요.

 교육부에서 매주 업데이트 및 버전 업을 통해 벌써 10여차례를 보낸 '학교 현장 방역 대책'을 바탕으로 이것저것 해야할 것이 많아서 하루 중에 자리에 앉아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되거든요. 출근하면 일단 학생들 체온 재서 들여 보내야 하고, 조례 끝나면 마스크 쓰고 수업 다니고, 쉬는 시간에도 학생들 뭉쳐서 다정한 시간 보내지 못 하도록 막기 위해 계속 교실 앞에서 서성대고 있어야 하구요. 게다가 이 어린이들은 신입생이라 점심 시간에도 교실에서 급식소까지 모셔다 드린 후에 교실 상태 체크하고 또 그 분들 밥 먹는 걸 다 보고난 후 다시 교실까지 모셔다 드려야... 또 그 와중에 수행 평가도 진행을 해야 합니다. 학교 나오는 날이 얼마 없으니 나오면 무조건 수행 평가부터 치러서 결과물 받아내야 해요. ㅋㅋㅋㅋ 제가 만보계라도 들고 다니고 있었으면 매일매일이 뿌듯했을 것 같습니다.



 - 첫날 학생들의 반응이 웃겼네요. 4월부터 계속 모니터 속에서만 보던 사람들을 실제로 보니 얘들이 무슨 유튜버 실물이라도 목격한 것처럼 반응을 해서요.

 교사 한 명 지나가고 교실에 들어올 때마다 '우와 xx쌤이다!' 이러면서 신기한 구경난 듯 바라보니 이게 참... ㅋㅋㅋ

 저는 '생각보다' 키가 크다는 얘길 세 번쯤 들었습니다. 이 놈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내 키를 보고 크다는 말을...;;



 - 교사들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쭉 화면으로만 보던 녀석들의 실물을 보는 것 말이죠.

 태도가 모범적인 애들은 신선함이 덜 해요. 화면으로 보던 때나 실물로 보는 지금이나 갸들은 그냥 태도가 그대로이고, 늘 얼굴이 잘 보이는 애들이었으니까요.

 반면에 매번 은근슬쩍 카메라 꺼 버리던 애들, 천장으로 돌려 놓고 딴짓 하던 애들, 모니터에 다른 창 띄워 놓고 수업 듣는 척만 하던 애들 등등을 실제로 교실에서 보니 재밌더라구요. 그 중 몇명에게는 "딴 거 하고 싶어 죽겠지? ㅋㅋㅋ" 라고 놀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습니...



 - 애들이야 뭐 이제 집에서 편히 출석 해치우던 데 익숙해져서 다들 얼른 집에 돌아가고만 싶죠.

 하지만 그럼에도 어쨌거나 집 밖에 나와서 교실에서 또래들과 생활을 하니 그건 또 나름 즐거운 모양이더군요. 대체로 되게 밝고 활달해서 보기 좋습니다.

 ...다만 뭐, 그냥 제 생각일 뿐이지만, 아마 '1주일만 버티면 된다!' 라는 게 바탕에 깔려 있는 즐거움이겠죠.

 오늘도 내일도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계속계속 학교에 나와야 한다... 라는 평범한 상황이었으면 친구 관계든 수업 듣기든 성적 관리든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을 텐데, 얘들의 요즘 상태는 마치 청소년 수련 시설에 놀러온 아이들 같은 느낌이랄까... 

 뭐 친구 관계를 힘들어하는 성향의 아이들이라면 어쩌면 이게 천국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학교 생활 3년이 고통과 스트레스의 연속일 텐데 '일단은' 한 학기라도 이렇게 편하게 날로 먹을 수 있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근데 그게 교사들도 그래요. 이렇게 학생들을 3주에 한 번 본다. 많아야 4주 남짓 보면 한 학기가 끝이다... 라는 생각을 하니 역시 무슨 수련원 교관이 된 느낌이랄까.

 수련원 교관 치고는 서류 업무가 너무 많고 하루 종일 학부모들이랑 전화하느라 콜센터 일하는 기분이 격하게 들긴 합니다만. 아무튼 평소의 '교사 기분'관 많이 다르네요.



 - 그 와중에 제가 1~2월에 수립해 놓고 이후 일정 변경이 생길 때마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서 결국 10차례 정도 수정해 놓았던 학생들 1년 수련 활동 계획은 최근에서야 최종(?) 버전이 완성되면서 결국 아작이 났습니다. 하지 말래요. ㅋㅋㅋㅋㅋ


 하지만 힘들거나 허망하다고 투덜거릴 일도 아닌 것 같아요. 학생들 수련 활동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생각 외로 되게 많거든요. 그 사람들 대부분이 올해 밥줄이 끊기게 생겼으니... 또 친한 선배 한 분은 서울시 교육청에서 학생들 스포츠 교육 활동 쪽 일을 맡으셨는데. 거의 1년간 준비해 놓은 일들이 시작 직전에 코로나에 밀려서 거의 몽땅 다 무기한 연기 상태라고 하더군요. 이런 분들 처지를 생각하면 뭐, 전 오히려 평소보다 일을 조금이라도 덜 하면서 월급도 꼬박꼬박 받아먹고 있으니 고마운 줄 알아야(...)



 - 아마 이제 대부분의 학교들이 1학기(올해 1학기는 8월 중순까지입니다) 등교 계획을 완성했을 겁니다.

 최근의 코로나 증가세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학교가 1학기 중엔 전학년 등교를 깨끗하게 포기하고 계획을 완성한 걸로 알아요.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2학기가 되어도 이게 수습될 거란 기약은 커녕 희망도 별로 안 보인다는 거겠죠.

 이러다 정말 대한민국 공교육 시스템에 지각 변동급 변화가 강요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고 그럽니다만. 어떤 변화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감이 안 오네요.

 제가 유일하게 확신하는 것 하나는 오직...



 뭐가 어쨌든 수능은 볼 거라는 거. ㅋㅋㅋ 그것 하나 뿐이네요.



 또 그 와중에 방역 대책은 세워야 할 테니 수험장 별 학생 밀도 줄인다고 시험장 수를 늘리고 감독관 수를 팍팍 늘려버리지 않을까 싶은데,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수능 감독이라니. 올해는 정말 무슨 진단서라도 하나 받아 놓고 울며 불며 사정해서 감독을 째봐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 위에서 '평소보다 일을 조금이라도 덜' 하고 있다고 했는데.

 사실 서류 업무 같은 건 오히려 늘었어요. 수업 부담이 줄어든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학생들이 학교에 안 나오니 얘들이 사고를 안 치고 친구 관계로 힘들어할 일이 없죠.

 그래서 그런 문제들을 다루지 않게 되니 기분상으론 훨씬 쾌적합니다. 또 윗분들이 '애들 치마가 왜 그리 짧냐' 같은 소릴 할 일이 없으니 그것 또한 편안하구요. ㅋㅋㅋ


 ++ 사실 지금 재학생들 중에도 로또 맞은 아이들이 있으니... 바로 학생회 애들입니다. 저희 학교는 학생회 애들이 각종 학생 행사 계획에 다 참여하고 행사가 진행될 때마다 진행 요원으로 투입돼서 정말 말 그대로 개고생(...)을 해야 하거든요. 근데 학교를 나오지를 않으니 한 학기를 송두리째 아무 일도 안 하고서 임원 내신 점수는 다 받아 먹게 되었네요. 뭐 그랬으니만큼 특목고 같은 데 지원할 때 이 활동 내역이 많이 하찮은 느낌이 되긴 하겠지만, 뭐 어차피 조건은 다른 학교 애들도 다 똑같으니 점수라도 받는 게 어딥니까. ㅋㅋ


 +++ 근데 정말 마스크 쓰고 수업하는 건 극기 체험, 벌칙 게임 같은 느낌입니다. 교실에 에어컨을 세게 틀어도 마스크 안쪽은 덥고 답답하고 축축해서 불쾌함이 하늘로 치솟습니다. 연달아 두 시간 하고 나면 진이 빠지구요. 가벼운 마스크를 쓰고 하고 싶단 맘이 굴뚝같지만 그건 또 방역 수칙에 어긋나는 일인지라 빡센 마스크와 함께 빡세게 수업하고 있습니다. 제발 얼른 1주일 다 지나가라.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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