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 다니는 생각들

2020.10.15 23:31

여름 조회 수:833

어쩌다 보니 댕댕이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5년이 넘었지만 뭔가...아직도 서로를 알아 가는 중인 진행형의 관계라고 저는 생각해요. 댕댕이의 생각은 어떨지 몹시 궁금하지만 알길은 없죠. 하지만 그게 저만의 생각은 아닐거라고 여기는 이유는 가끔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보이는 이 댕댕이의 온도가 저에게 보이는 것과 다를 때가 있기 때문이에요. 츤데레인건지 가장 친밀한 애착을 형성해야 할 대상인 저보다 가끔 오는 손님에게 더 살가운 모습을 보일 때가 있거든요. 제가 그렇게 애타게 부르고 불러도 잘 안 오는 댕댕이가 처음 본 손님에게는 먼저 다가가 무릎 위에 올라가기도 한다는 겁니다. 제 무릎에는 한 번도 안 올라 오면서 말이죠. (치. 되짚다보니까 괜히 얄밉네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인간인 제가 먼저 다가가면 되니까요.) 하지만 저와 꽤 잘 맞아요. 이 댕댕이도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좋아해서 한 집에 있으면서도 각자의 시간을 보내거든요. 가끔 동할 때 서로의 선을 넘어 함께 시간을 보내다  이내 또 자신의 공간을 찾아 가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분리불안도 없어요. 물론 퇴근 후 집에 들어 오면 굉장히 반갑게 맞아 주지만 그게 단지 제가 주는 간식 때문만은 아니라 믿고 싶습니다.....


댕댕이의 건강이 상당히 좋지 않아요. 저와 지내기 전의 시간 속에서 생긴 후천적인 질병이라 제가 할 수 있는 건 꾸준히 병원 다니며 하루 2번 정해진 시간에 맞춰 약을 주는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이 댕댕이의 성격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거죠. 과한 운동이나 흥분은 해롭거든요. 어떤 장난감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제에게 특정 행동을 보이며 놀이를 요구하지도 않아요. 같이 지내기 시작한 초기에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으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더라구요. 이 댕댕이는 어째서 놀 줄 모르는가, 너 나랑 지내기 전에 어떻게 살았던거니? 궁금해지곤 해요. 하지만 그 성격이 이 아이의 질병에는 도움이 되고 있으니 저도 무언가를 더 하려는 생각은 없어요. 과한 흥분과 놀람으로 기절을 한 적들도 있어요. 무서워요 그거. 심장이 덜컹 내려 앉는다는 게 어떤건지 그 때 알았어요.


이 댕댕이를 통해 밀당이란 걸 배우며 (물론 일방적으로 지고 있습니다. 크-) 함께 지내고 있지만, 이 댕댕이는 저를 확실히 좋아해요. 의심하지 않아요.

이쁠 땐 꽃댕댕이, 미울 땐 똥댕댕이지만요. (물론 이 댕댕이의 이름은 따로 있습니다.)







요즘은 어떤 괴리감을 느끼고 있어요. 사적인 대화를 가장 많이 나누는 친구는 전업페미예요. '나는 페미니스트일까, 될 수 있기나 한 걸까?' 친구는 이야기 하지만,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페미니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 보며 현실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살아 온 친구거든요. 그래서 친구가 저런 고민을 혼잣말 처럼 툭 내뱉을 때면, 야! 넌 전업이야! 그 고민을 싹둑 잘라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거워요. 둘의 관심사도 많이 겹치고 그 관심사를 바라 보는 방향과 결도 대동소이하거든요.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면 서로를 설득하거나 이해 시켜야 하는 과정이 대부분 생략 돼요. 그 과정이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둘이 나누는 이야기는 현실의 문제에 대한 설명과 설득의 과정이 아니라 "그 다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뤄요. 예를 들자면, 얼마 전 카페에 앉아 '남성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1.페미니즘 도서를 읽다 보면 대척점에 남성성을 상정해 두는 것 같다, 제가 운을 떼고 2. 남성성에 대한 페미니즘의 두 가지 접근 방식에 대해 친구가 이야기를 하고 3. 그 두 가지 방식 중 저희 둘이 동의하는 혹은 지향하는 것은 무언인지 확인을 하고(역시나 둘의 생각은 같구요) 4. 남성성이란 규범을 해체하는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그리고 이건 분명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가부장적인 남성 지배 사회가 규범으로 정해 놓은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가 둘 사이에서는 생략이 되는 거예요. 그 부당한 형태가 드러나는 현실의 문법은 둘 사이에서 설득을 하거나 설명해야 하는 영역이 아니니까요. 디폴트인거죠.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그 문법에 대한 폭로와 분출과 울분이 뒤섞여 있어요. 여전히 설득의 과정인거예요. 현상을 설명하는 언어와 문법이 강력해 지는 건 분명 필요해요. 하지만 "그 다음"에 대한 이야기가 끼어들 틈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계속 맴돌아요. 때때로 현상의 문법을 밝히기 위해 이러한 이유로 어떤 집단을 배제하고, 또 그러한 이유로 다른 집단을 배제하다 보면 "우리"와 "그들"의 경계선만이 더욱 선명해질 뿐이니까요. 선명해질 뿐 아니라 "우리"안에 "더 작은 우리"를 형성하기도 하며 배리어를 더욱 축소시키고 결국 우리들만의 리그가 되어 가는 거예요. 전 그게 싫어요. 한계에 닿았을 때 그 한계를 넘기 위한 방법은 "그 다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우리"의 경계가 확장되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현실은....다음은 커녕 지금에 대한 동의도 이뤄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지난 총선 때부터 이어져 온 제 습관적인 말 중 하나가 "탈당할까?"였어요. 제가 어느 당에 적을 두고 있는지 아는 사람들은 그 당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저에게 묻곤 하거든요.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 오는 깊은 한숨과 함께 "나 탈당할까? 들어 봐봐!"로 시작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며 "역시 탈당할까?"로 마무리를 하곤 했거든요. 그 와중에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번복에 번복을 거듭하며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망설이다  얼마 전 최종적으로 탈당서를 제출 했습니다. 탕탕탕. 당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여전히 저와 일치해요. 다른 그 어떤 당도 제가 추구하는 가치들을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대변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그럼에도, 지난 총선 때 수면으로 올라 온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정당으로서의 기대감이 이제는 사라졌다는 거죠(슬퍼요).


전 배복주씨를 좋아해요. 제가 정기 후원하고 있는 단체의 전 대표이기도 했구요. 물론, 순서상으로는 단체를 먼저 알고 그로 인해 (당시)대표인 배복주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죠. 그 단체에 대한 믿음 때문에 좋아한다가 더 정확할 거예요. ('장애여성 공감'이라는 단체로, 여성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페미니즘에 기반을 둔 곳입니다. 짧은 홍보홍보) 정의당에 입당하며 '장애여성 공감'의 10년 대표직(+단체 활동 10년=총 20년)을 떠났어요. 내세운 공약들은 장혜영씨와 많은 부분이 겹쳤지만 비례 후보 7번이었어요. 물론 국회의원이 되지는 못했죠. 그 부분에서 많이 아쉬워 했구요. 장애 당사자라는 건 차치하더라도 살아 온 여정으로나 경력으로나 관련 분야의 역량으로 친다면 배복주씨가 당연 우세할텐데, 역시 정치라는 것은 인기의 영역이기도 한가...생각했죠. 물론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정치라는 건 대중의 생각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때론 앞 선 의제들을 먼저 대중에게 전하는 스피커의 역할도 한다는 점에서 장혜영씨를 응원하고 있거든요. 지난 총선 이후 당안에서 배복주씨의 행보가 어떠한가 궁금했는데 얼마 전 배복주-장혜영-류호정 셋이 함께 찍힌 사진을 보았어요. 정의당 여성본부장이 되었더라구요. 적을 두고 있는 당도 (이제는) 없고, 배복주씨를 따라 정의당에 갈까 슬쩍 생각 중이에요. 제 성격상 치열하게 고민하진 않고 아마 긴 시간동안 물음표가 붙은 문장이 제 안에서 이리 굴러 가고 저리 굴러 가게 놔두며 스스로 형태를 만들 때까지 기다리겠죠. 제가 할 건 그 형태를 건져 올리는 것 뿐.



쓰면서 이 글 제목을 뭐로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마지막 문단에서 제목이 똑 떨어지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699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11724
114440 난방기구 추천 받습니다. ㅜ.ㅜ [5] 스위트블랙 2020.10.17 584
114439 가짜사나이 단상...(도박장, 미스터트롯) [1] 안유미 2020.10.17 506
114438 코로나 경제, 윤수일 밴드, 향수 [6] 양자고양이 2020.10.17 436
114437 호날두 이탈리아행, 자가격리 위반? [1] daviddain 2020.10.17 310
114436 [아마존프라임비디오] SF인지 동화인지 모를 시리즈 '루프 이야기(Tales from the loop)'를 다 봤습니다 [6] 로이배티 2020.10.17 347
114435 김재련, 장하성, 진중권, 중증재생불량성빈혈 [5] 사팍 2020.10.17 761
114434 가짜 사나이 일련의 사태를 보고 느낀 점 [1] 가을+방학 2020.10.17 499
114433 구인글 (구체관절인형 의상) 은밀한 생 2020.10.17 238
114432 [KBS1 독립영화관] 야구소녀 [EBS1] 오손 웰스의 눈으로 [33] underground 2020.10.16 400
114431 표창장 위조 30초도 안걸린다. 왜냐하면 2020.10.16 474
114430 가짜사나인지 진짜사나인지 논란이 커진걸 보고 드는 생각은요 [7] 모르나가 2020.10.16 1104
114429 쉬는 날과 사람들 [1] 안유미 2020.10.16 391
» 굴러 다니는 생각들 [14] 여름 2020.10.15 833
114427 가성비 좋은 맥북 에어 중고를 구하고 있습니다. [12] 하워드휴즈 2020.10.15 556
114426 미국의 음모론적인 반정부주의자들? [6] 발목에인어 2020.10.15 447
114425 질문이요. 블라이 저택의 유령에서 이해가 잘 안되는 것... (스포) [3] timeinabottle 2020.10.15 349
114424 Kent L. Wakeford R.I.P. 1928-2020 조성용 2020.10.15 116
114423 오늘자 심상정 [4] 수영 2020.10.15 830
114422 호날두 3 daviddain 2020.10.15 219
114421 블라이 저택의 유령 - 힐하우스보다 더 좋은데요. (스포무) [14] Diotima 2020.10.15 59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