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에 나온 영화니까 이제 23년 묵었네요.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별 의미는 없겠지만 결말 스포일러는 안 적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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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낙 유명한 이야기... 지만 그냥 도입부만 간단히 적죠. 험버트 험버트라는 바보 같은 이름의 교육계 종사자 아저씨가 과부가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집에 월세로 들어가면서 시작합니다. 왠지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연상하게 되는 설정이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이 아저씨가 꽂히는 건 과부가 아니라 그 14세 딸이죠. 어려서 겪었던 첫사랑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어린 여자애들에게 꽂히게 되었다는 나름 낭만적인 핑계를 대고 있지만... 뭐 암튼 그 딸래미랑 함께 있고 싶은 맘에 과부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여 결혼까지 하게 되었건만 며칠 되지도 않아서 아내가 험버트의 비밀을 알아채게 되고. 이후부터 이야기는 막장으로 치닫게 되죠. 막장에 음모에 미스테리에 비극에 파국에 아주 화려합니다. ㅋㅋㅋ



 - 원작은 안 읽었어요. 스탠리 큐브릭 버전은 오래전에 보았고 이 에이드리언 라인 버전은 이번에 처음 봤네요. 

 굳이 비교를 하자면 큐브릭 버전보단 이 버전이 좀 낫긴 합니다. 좀 더 이야기가 자연스럽고 캐릭터들에게도 생명력이 있죠. 제임스 메이슨에겐 매우 죄송한 얘기지만 험버트 캐릭터도 제레미 아이언스 버전이 더 실감나고 좋더라구요. 낭만적이지만 위험한 성격이면서 동시에 찌질한 허당(...)스러운 면모가 종합적으로 더 잘 살아나는 느낌. 롤리타 캐릭터 역시 이 버전이 대체로 우세한 평가를 받고 있구요. 큐브릭 버전의 롤리타는 섹시한 느낌이 약한 건 둘째 치고 어린애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드는 외모였던 걸로 기억하네요. 그래서 주인공이 하면 안 될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이 좀 덜 와닿았던.



 - 근데 보다보면 뭔가 좀 이상합니다. 영화가 처음부터 우리 험버트찡이 좀 이상한 놈이고 심지어 위험한 구석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는 해요. 근데 롤리타가 제대로 섹시(...)하게 표현이 되니 뭔가 납득이 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또 우리 잘 생기고 목소리 좋은 제레미 아이언스가 저지르는 음험한 짓들을 엔니오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선율이 낭만적으로 감싸줍니다? ㅋㅋㅋ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건 큐브릭 버전도 비슷하긴 한데) 험버트의 만행 중 상당 부분을 순화시켜서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둘의 첫 정사 장면을 도입부의 롤리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부분까지만 보여주고 건너 뛰어버린다거나 하는 거죠. 듣기로는 원작의 내용상 이 부분이 (최소한 현대적 기준으로는) 성폭행에 가까운 행위가 되어야 하는데 영화로 봐선 그냥 둘 다 좋아서 해버린 걸로. 험버트의 죄는 그저 '아무리 그래도 어른인 니가 참았어야지!' 정도로 한정이 됩니다. 

 마지막 장면(=도입부. 수미상관 내지는 액자식 구성 비슷하게 가죠)도 그렇습니다. 에이드리언 라인 특유의 예쁜 화면 연출에 엔니오 모리꼬네의 선율, 거기에 제레미 아이언스가 뿜어내는 절망적인 분위기가 결합되면 이건 그저 잘못된 상대를 사랑한 남자의 슬픈 이야기... 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거든요. 정작 원작자는 이 험버트놈이 그냥 매우 나쁜 놈이고 자기는 그 캐릭터 절대 안 좋아한다고 여러 번 못을 박기까지 했다는데... ㅋㅋㅋ



 - 런닝타임이 좀 긴 것 같기도 했습니다. 대체로 낭만적이면서 에로틱하다가 또 변태적이고 위험한 분위기... 는 런닝타임의 절반이 되기 전에 다 끝나 버리고 그 후부터는 계속해서 하강하는 식의 이야기 구조인데 그 후반부에 벌어지는 일들이 별로 재미가 없어요. 특히나 험버트가 마지막에 '그 인물'을 만나러 가서 벌어지는 일들은 필요 이상으로 길었던 것 같기도 하고. 대략 1시간 50분 정도로 압축했음 더 나았을 것 같... 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게 큐브릭 버전보단 20분이나 짧네요. 



 - 어쨌거나 종합적인 느낌은 '에이드리언 라인이 생각보다도 훨 능력 괜찮은 감독이었구나'라는 거였습니다. 미장센도 좋고 캐스팅도 좋고 각색도 (각자 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큐브릭 버전보다 특별히 나쁜 것 같진 않았어요. 영화 속 이미지는 내내 낭만적으로 예뻐서 보기 좋구요. 아예 확 개작을 해서 험버트를 진짜 '그냥 큰 선택 하나를 망쳐버린 불쌍한 놈'으로 바꿔버리든가, 아님 원작의 의도에 충실하게 상종 못할 개xx로 만들어버리든가... 둘 중 하나로 확실하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뭐 이 정도로도 '웰메이드 시대극 로맨스' 정도로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였습니다. 이런 장르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보실만 해요. 험버트 캐릭터에 대한 애매한 대우만 거슬리지 않으신다면요.



 + 에이드리언 라인의 필모그래피를 다시 한 번 살펴보니 제 기억보다 훨씬 훌륭한 분이셨네요. 플래시댄스 이후로 내놓은 영화들이 나인 하프 위크, 위험한 정사, 야곱의 사다리, 은밀한 유혹, 로리타, 언페이스풀까지. 거의 다 수작이었거나 최소한 화제, 흥행작이었거나. 그리고 지금 무려 19년만의 신작이 후반 작업중이랍니다. 벤 애플렉이 나와서 이혼 안 당하려고 와이프 외도를 눈감아주다가 그 외도 상대가 실종되어 용의자 취급을 받게 되는 이야기라고. 19년만의 신작임에도 컨셉 하나는 확실하시군요. ㅋㅋㅋ


 ++ 후반에 돌로레스(=로리타)가 험버트에게 성질 내는 장면에서 '이런 상황 아니었음 내가 아저씨처럼 생긴 남자랑 놀았겠음?' 이라고 조롱하는 대사가 나옵니다. 음... 뭐라고?;;; 근데 뭐, 따져보니 이 영화 촬영 당시 제레미 아이언스 나이가 이미 50이었더라구요. 지금 저보다도 나이가 더 많았으니 그 조롱 그냥 인정해주는 걸로.


 +++ 롤리타의 야함(...)을 드러내는 장면들에 사탕, 껌, 바나나 등등 음식을 먹는 장면들이 굉장히 자주 나옵니다. 이 감독님이 이미 나인 하프 위크 때부터 하던 스타일이긴 한데 원작을 읽지 않아서 이게 감독 스타일인지 원작에도 나오는 부분들인지 궁금하더군요. 원작도 그랬다면 오히려 나인 하프 위크에 나오던 그런 장면들이 롤리타 원작의 영향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 도미니트 스웨인의 이후 커리어를 보면 역시 어려서 팜므 파탈 같은 역할로 뜬 배우들의 이후 커리어는 쉽지 않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디 포스터, 스칼렛 요한슨 정도가 예외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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