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흑백 고전 영화 맞습니다. ㅋㅋㅋ 루이 말, 잔느 모로, 마일즈 데이비스로 유명한 그거요. (남자 주인공 미안;) 스포일러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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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느 모로의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시작합니다. 현대적 취향으로 보면 뭔가 좀 몽롱하니 약이라도 한 것 같은 표정으로 사랑과 관련되어 보이는 이상한 말들을 주절주절하고 있네요. 한 남자의 클로즈업으로 넘어갑니다. 역시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어요. 이렇게 둘을 왕복하다가 카메라가 조금 멀어지면 둘이 서로 전화 통화중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여자의 남편이 남자의 직장 상사에요. 자세한 사연은 모르겠지만 둘의 사랑을 위해 남편을 죽이기로 결심한 모양입니다. 얼른 해치우고 근처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해요.


 잠시 후 남자는 여차여차해서 거사를 치르는 데 성공하지만, 아이쿠야. 회사 건물을 빠져 나와 자기 차에 시동을 건 후에야 중요한 물증을 현장에 남겨두고 왔다는 걸 깨닫습니다. 시동을 끌 틈도 없이 후닥닥 달려가는데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도중에 건물 관리원이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건물 전원을 내려 버리고, 남자는 갇힙니다. 그리고 남자가 차를 주차해두는 자리 앞의 꽃집 처녀랑 사귀는 철 없는 반항아 젊은이가 충동적으로 남자의 차를 몰고 떠나버리고. 여자는 오지 않는 남자를 기다리다 못해 그를 찾아 거리를 헤매다가 부르릉 달려가는 남자 차의 조수석에 앉은 꽃집 처녀를 목격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남자, 여자, 절도 커플 각각의 시간이 흘러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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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름 느와르입니다. 거친 거리를 헤매는 한 마리 승냥이 같은 형사/탐정은 등장하지 않지만 전반적인 내용이 그렇죠. 그런데 되게 낭만적입니다. 따지고 보면 주인공 커플은 그냥 잔혹한 범죄자들에 불과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런 뉘앙스는 거의 없어요. 그저 잘못된 사랑에 빠진 낭만적 연인일 뿐인 거죠. 그리고 그것은 뇌를 비우고 폭주하는 절도 커플도 마찬가지. 하는 짓들만 놓고 보면 뭐 저런 놈들이 다 있나 싶지만 그들의 모습 역시 괴상할 정도로 낭만적으로 비춰집니다.

 그냥 잔느 모로의 캐릭터를 영화가 다루는 모습만 봐도 답이 나와요. 영화 전체 내용의 1/3이 그저 발길 닿는대로 온 거리를 쏘다니며 자신의 남자 친구를 찾아다니는 잔느 모로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할애되는데요. 살인 사건의 공범이며 둘의 관계를 들키면 안 되는 처지인 주제에 지인짜 아무 생각 없이 들쑤시고 다니며 의심 받을 짓을 하러 다니지만 그 모습 또한 아름답게 촬영된 흑백 화면 속에서 낭만적으로만 묘사됩니다. 그러니까 느와르는 느와르이지만 범죄물이 아니라 로맨스물인 셈입니다.


 21세기 관객의 입장에서 다짜고짜 서두에 작렬하는 그 문어체의 랑만적 사랑의 속삭임은 좀 웃음이 새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만. 영화를 쭉 보면서 이 분위기에 적응을 하고 나면 마지막을 장식하는 서두보다 더 강력한 문어체 대사를 접할 땐 웃음이 안 나와요. 그냥 애잔하고 짠하고 그렇습니다.



 - 소싯적에 '씨네필' 코스프레를 하고 다니느라 억지로 꾸역꾸역 챙겨 봤던 누벨 바그 영화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보통 그 시절에 누벨 바그를 얘기할 때 루이 말이 간판에 등장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만. 어쨌든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그런 영화들이 생각이 나요. 이제 와서 다시 찾아 확인해보니 누벨 바그의 간판은 아니었어도 누벨 바그에 함께 엮여서 언급되는 중요한 감독이었던 건 맞구요. 흠. 그때 난 뭘 공부했던 거지(...)



 - 낭만적 사랑 이야기다!! 라고 했지만 어쨌든 범죄물이다 보니 범죄물로서의 기승전결도 뚜렷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속 남자, 거리를 헤매던 여자, 차를 몰고 일탈을 저지르던 젊은 커플의 이야기가 결국 마지막에 가선 하나로 모이면서 마무리가 되죠. 막 장르적 쾌감이 느껴지고 그런 수준까진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치에 맞게 아귀가 맞아 떨어지며 마무리가 되니 다행스럽단 기분이 들더군요. 명색이 범죄물이면 이렇게 최소한의 도리는 다 해줘야죠. 정서나 메시지를 앞세우면서 핵심 소재를 대충 처리하고 넘기는 영화들은 별로입니다. ㅋㅋㅋ



 - 어쨌든 중요한 건 랑만!!! 그것입니다. ㅋㅋㅋ 결국 다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건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잔느 모로의 독백조 대사. 그리고 밤길을 헤매는 잔느 모로의 쓸쓸한 모습과 그 모습을 완성해주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거든요. 촬영된 영화를 틀어 놓고 그 앞에서 즉흥 연주 식으로 네 시간만에 완성했다는 전설의 OST!!! 는 정말 그 장면 장면들에 근사하게 잘 어울려서 넋놓고 헤매기만 하는 잔느 모로의 모습을 보면서도 지루하다고 투덜거리지 못 하게 만들어요. 



 영화도 성공하고 OST도 대박을 쳐서 그런지 지금 검색해보면 영화 스틸샷 만큼이나 잔느 모로, 마일즈 데이비스가 함께한 사진들이 많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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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엽죠 이 사진. ㅋㅋㅋㅋ



 - 뭐 그래서 재밌게 봤습니다.

 막 숨가쁘게 달리는 스릴러 같은 건 아니지만 느긋한 페이스 속에서도 은근히 끊임 없이 사건이 벌어지고 상황이 달라지고 해서 지루하지 않아요.

 심지어 런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엘리베이터 속에만 갇혀 있는 남자 파트의 이야기도 재밌습니다. 그 안에서 이 남자가 참 여러가지 일을 하거든요. ㅋㅋㅋ

 거기에 그림은 참으로 예쁘고 동시에 귀도 즐겁구요. 고전 반열에 오른 영화라고 해서 꼭 뭔가 분석하고 뜯어보지 않아도 그냥 보기에 재밌는 영화였어요.

 특히나 20여년을 미뤄둔 숙제를 드디어 해결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론 아주 뿌듯한 시간이었습니다. ㅋㅋ '400번의 구타'를 볼 시간에 이걸 먼저 볼 걸 그랬죠.



 + 버튼으로 지붕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주인공의 차도 멋지지만 나중에 등장하는 벤츠는 정말 멋지게 생긴 클래식 자동차더군요. 조금 다듬으면 요즘 자동차라고 우겨도 멋져 보일 디자인 같았어요. 그리고 중간에 등장하는 소형 카메라는... 그 시절에 벌써 저런 아이템들이 있었다니! 는 생각이 들더군요. 


 ++ 사실 시작하고 대략 30여분 정도는 '이거 코미디인가?' 하면서 봤습니다. 냉철하고 프로페셔널한 살인자! 여야 할 남자는 엘리베이터에 갇혀서 찌질거리고 있고. 낭만적 팜므 파탈이어야할 여자는 계속 정신줄 놓은 얼굴로 거리를 헤매고만 있고. 쌩뚱맞게 튀어나온 젊은 것들은 계속해서 망할 수 밖에 없는 길로 무턱대고 질주하고... ㅋㅋㅋㅋ 아마 그 시절 프랑스인들에게 먹힐만한 감수성 같은 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특히 그 젊은 것들이 독일인과 만나서 나누는 대화 같은 걸 보면 말이죠.


 +++ 잔느 모로는 3년 전에 돌아가셨군요. 뒤늦게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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