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봉한지 넉달 된 한국 영화이고 런닝타임은 107분입니다. iptv vod로 제가 쓰는 영화 퍼주는 요금제에 무료로 들어왔길래 봤어요. 스포일러 없이 적을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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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피부터 매우 교훈적!!!)



 - 시작부터 참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교훈적인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일단 과외 선생 정수정씨가 제자 남학생에게 '조선은 유교 때문에 망했어!' 드립을 쳐 주고요. 그 다음엔 둘이 한 번 하려고 폼을 잡다가 콘돔이 없으니 걍 안고 잠만 자자는 남자를 분위기에 취한 정수정씨가 덮쳐버려요. 그리고 그 다음 장면은 만삭의 정수정과 남자 친구가 정수정 부모님께 임신 사실을 고백하는 걸로. 콘돔을 씁시다!!!

 남자 친구가 아직 고딩임에도 얼른 애도 낳고 결혼도 하고 싶어서 일부러 낙태가 불가능한 개월이 될 때까지 부모님께 숨기다 고백하는 정수정씨의 만행에 부모는 당연히 길길이 뛰구요. 정수정씨는 그런 부모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자기가 어릴 때 엄마가 이혼해서 지금 아빠가 새아빠이고 그걸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해서 관계가 어색하거든요. 엄마의 이혼 때문에 자기가 힘들었다는 마음의 상처 같은 부분도 있구요.

 그래서 답답하고 짜증나는 맘에 충동적으로 얼굴도 기억 안 나고 이름도 성밖에 모르는 친부를 찾아 본인이 어릴 때 살던 대구로 떠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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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임지겠습니다! 제게 주십시오!! 같은 대사들은 당연히 안 나옵니다. ㅋㅋ)



 - 보는 내내 '이런 거 참말로 오랜만이다' 라는 기분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이런 영화가 대략 20~30년 전엔 꽤 흔했던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소재를 갖고 나름 웃기게 튀는 아이디어 하나와 적당히 과장됐지만 현실 대비 순둥순둥한 캐릭터들을 활용해서 만든 착하고 교훈적인 코미디 영화요. 결혼/이혼/임신과 출산이라는 소재도 역시 이 장르에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소재 아니겠습니까.


 다만 좀 결이 다른 느낌은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옛날 코미디 영화들 같은 경우엔 대체로 메시지가 보수적이잖아요. 가족은 소중하고 아가들은 우리의 미래이며 부부끼리는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가며 백년해로 하는 게 짱이고... 이런 결론들을 내는 영화들이 많았는데. 이 '애비규환'은 21세기에 여성 감독이 만든 독립영화답게 위에서 언급한 소재들을 모두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다룹니다. 가족이란 게 꼭 멀쩡하게(?) 시작 그대로의 형태로 유지될 필요는 없고, 이혼 그까이 거 살다가 불행하다 느끼면 하면 되는 거고 거기 뭐 죄책감 느끼고 남들 눈치볼 필요도 없고, 뭣보다 여성들이 자기 스스로를 중심으로 잡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야 하고. 그러니까 나름 진보적인 교훈을 설파하는 사회성 짙은 코미디 영화인 겁니다. 



 - 그리고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과 관계들이 다 이런 '교훈'을 설파하기 위해 설정이 되어 있어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식이 어릴 때 과감하게 이혼과 재혼을 선택한 엄마와 거기에 불만을 갖고 자란 딸. 무책임하게 튀어 버린 친부와 딸에게 잘 해주려 노력하지만 또 본인 개성을 굽히지 못해서 고생하는 현재 아빠. 악의 없이 순진무구하지만 사고가 좀 많이 모자라서 결과적으로 주인공에게 모든 결정의 부담을 떠넘기는 남자 친구. 그리고 곁가지로 맏딸이라는 팔자로 부모에게 당연한 듯 희생을 강요당하는 남동생 하나 둔 친구 등등 정말 의도가 투명하게 보이는 인물들이 넘쳐나고 거의 대부분이 철저하게 예상대로 행동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느꼈던 부분인데, 그게 도식적인 느낌이 많이 안 들고 상당히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설정은 도식적이고 또 코미디영화답게 상당히 과장이 들어간 인물들인데도 나름 세세한 디테일들이 설득력있게 배치되어 있고 '저런 사람이면 저럴만 하게' 행동들을 하기 때문에 억지로 교훈을 주입당하는 느낌이 별로 없어요. 아예 없지도 않지만... ㅋㅋㅋ 거슬릴 정도는 아니구요. 

 그건 또 배우들의 덕이기도 합니다. 엄마 역을 맡은 천만 관객 배우(!!) 장혜진씨를 비롯해서 나오는 배우들 연기가 모두 좋아요. 특별히 뭐 몇 갑자의 내공을 뽐내는 연기가 필요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그런 튀는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연기도 훌륭한 것이긴 마찬가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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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엄마, 나 그리고 아빠)



 - 또 한 가지 이 영화의 포인트라면...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성격에 비해 영화 내용이 정말 낙천적이고 순둥순둥하다는 겁니다.

 날카롭게 쏘거나 뭘 냉소적으로 비꼬거나 하는 게 없어요. 등장 인물 모두가 악의 없이 선량한 사람들이고 영화 내내 그걸 대놓고 뽐을 내죠.

 심지어 모든 악의 원흉인 정수정씨의 친부 조차도 그리 나쁘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캐릭터를 통해 '세상엔 애초에 부모가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라는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죠. 물론 그런 주제에 결혼하고 애를 만들어 버린 건 잘못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며 살아가는 거니까!!! 그것도 이 영화의 주제니까!!! <-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정수정씨 캐릭터를 다듬어 놓은 솜씨도 칭찬받을만 합니다. 당차고 자기 주장 확실한 20대 신여성! 캐릭터이고, 이 양반의 거침 없는 대사로 메시지를 전달할 때도 종종 있긴 합니다만. 이게 또 그냥 단순한 '사이다' 캐릭터로 가지 않아요. 세상 일 다 아는 척을 해도 결국 평생 함께한 엄마 마음속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이고, 막 던지는 성격 탓에 스스로를 곤경으로 몰기도 하구요. 진짜 어려운 선택의 문제에 놓이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드아아아!!!' 라면서 좌절도 하고 그러는데 그게 또 대략 다 납득이 가고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캐릭터 자체가 품고 있는 그 강렬한 교훈에도 불구하고 이 양반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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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f(x)의 크리스탈입니다!!)



 - 정수정씨라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고 넘어가기가 어려운 영화이기도 합니다.

 SM 엔터테인먼트라는 대기업의 매우 잘 나가는 아이돌 연기자가 제작비 10억도 안 되는 인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다는 것도 그렇고. 블링블링 럭셔리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의 캐릭터가 철 없이 일 저지르고 영화 내내 만삭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배역을 선택한 부분도 그렇고. 또 명실공히 원탑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영화에서 깔끔하게 역할을 소화해낸 부분도 그렇고 여러모로 칭찬받을 요소가 많습니다. 


 소올직히 개인적으로는 '연기력'에 대해선 그렇게까지 칭찬해줄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게... 여기서 정수정이 보여주는 연기는 이미 10년 전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보여줬던 연기 그대로입니다. 그냥 그 캐릭터가 나이 열 살 더 먹어서 좀 덜 까칠해진 느낌이랄까. ㅋㅋ 제가 그 사이에 이 분이 출연한 작품들을 본 게 없어서 그동안 어떤 역할들을 소화하면서 어떤 평가를 받아왔는진 모르겠지만 암튼 하이킥에서 보던 기억으로 이 영화를 보면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연기력 칭찬보단 적절하기 짝이 없는 캐스팅에 감탄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그 시절보단 확실히 안정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극중에서 이런저런 배우들과 주고 받는 장면들이 다 조화롭게 괜찮아 보였던 걸 보면 늘기는 한 것 같고, 또 이 영화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백프로 잘 해냈다는 부분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칭찬 받을만 해요.



 - 글을 적다 보니 어쩌다 극찬 일색으로 적어 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당연히 단점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단점으로 느낀 건... 딱히 '한 방'이 없었다는 겁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소소하게 귀엽고 소소하게 웃음짓게 하긴 하는데 빵! 하고 터지는 장면이 없었어요. 뭐 이건 개인 취향이겠습니다만 어쨌든 저는 그랬고, 애초에 장르가 코미디인 영화이니만큼 아쉬운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구요.


 다른 하나는... 위에서 장점 비슷하게 언급한 부분들이 생각하기에 따라선 단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나름 자연스럽게 처리했다고는 해도 어쨌든 창작자의 메시지와 의도가 아주 눈에 띄게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영화이니 그런 게 싫은 분들은 영 별로일 수 있겠구요.

 또 악역 없이 착한 사람들만 우루루 몰려나오는 이야기라는 것도 그렇죠.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인데 비현실적이란 느낌이 들게 되니까요.



 - 대충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보기 드물게 둥글둥글 낙천적인 시각으로 페미니즘적 교훈을 설파하는 착한 코미디 영화입니다.

 전체적인 완성도는 분명히 '웰메이드'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구요. '모름지기 코미디라면 배꼽 잡도록 웃겨야지!'라는 큰 기대를 품지만 않으면 적당히 즐겁고 흐뭇하게 시간 보낼 수 있는 괜찮은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특히나 함수 크리스탈의 팬이거나 팬이었던 적이 있으시다면 꼭 보시는 게 좋겠죠. 아예 원탑 주인공인데 역할 수행도 잘 해냈으니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 글을 적다가 이런저런 인터뷰들을 찾아보니 감독이 애초에 '하이킥'에 나왔던 크리스탈 캐릭터를 많이 좋아했었다고 하는군요. 그럼 그렇지... ㅋㅋㅋ

 암튼 이 영화를 계기로 정수정씨가 좀 허술하고 편안해 보이는 역할들 많이 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게 잘 어울려요.

 그리고 아주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이 좀 덜 화려하고 덜 주목받는 소규모 영화 같은 데서 현실적인 느낌들의 배역들을 맡으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예상치 못하게 이 분이 그걸 성공적으로 해내 버리셨네요. 



 ++ 자꾸 페미니즘 페미니즘... 이런 표현을 스스로 적어 놓고 좀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중인데요. ㅋㅋ 그쪽(?)에 거부감 있는 분들이라도 괜찮게 볼 수 있을 거에요. 그냥 여성의 위치에서 이야기하며 여성의 입장을 강조할 뿐이지 남성들을 비난하는 이야기는 아니라서요. 진짜로 '악역'이 하나도 없어요. 심지어 집안 따지고 족보 드립 치는 시골 할매 할배들조차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는 착하기 짝이 없는 영화거든요.



 +++ 학생들 교육용으로 보여주기 아주 적합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 진지하게 인생에 도움 될만한 메시지들로 가득하거든요. 부모 이혼은 나쁜 게 아니란다, 부모도 인간이니 모자란 부분이 있는 거고 너 역시 모자란 중생 한 마리일 뿐이니 너무 속단하지 말아라, 형태가 어찌되었든 가족끼리 행복하면 그만이란다, 그리고 사랑도 좋고 결혼도 좋지만 콘돔은 꼭 사용하여라(...)


 또한 대한민국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흥행시켜야할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꼰대 느낌 없이 결혼/임신/출산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다루는 영화가 지금 시국에 나왔다는 게 참 신기하거든요. 이건 진짜 국어 교과서에 지문으로 실어줘야할 작품인 겁니다. ㅋㅋㅋㅋㅋ



 ++++ 아. 남자 친구가 고딩이라서 좀 위험한 소재 아닌가... 하는 측면이 있긴 한데. 학교를 1년 유급해서 나이는 스무살이라는 핑계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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