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 프리모 레비

2021.06.12 20:02

thoma 조회 수: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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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1919-1987)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재독했습니다.

얼마전에 넷플릭스에서 2차대전 다큐멘터리를 보았다고 글을 올린 바 있는데 남은 두 에피소드 중 '부헨발트 수용소'편을 보고 나니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었습니다.

프리모 레비는 44년 2월말부터 45년 1월말까지 아우슈비츠의 부나수용소라는 곳에 수용되었는데 그 중 소수의 생존자 중 한 명입니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화학자로서 수용소의 후반부 반 정도 기간을 공장 실험실(야외 노동의 가혹함을 벗어남)에서 노역할 수 있었고, 친구 알베르토와 함께 지낼 수 있었고, 또 수용소 외부 민간인인 로렌초의 도움, 성홍열에 걸려 병자 막사에 있던 바람에 독일이 퇴각할 때 부헨발트 등의 수용소로 끌고 간 대열에서 빠질 수 있었던 것(한겨울의 이 행군 이후에 75퍼센트가 살아남지 못 합니다), 그리고 소련이 접수하기 전 열흘 동안 빈 수용소에서 굶어죽거나 얼어죽지 않은 것도 화학자의 지식과 그 병실의 동료 환자 몇 명과의 협력이 있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위에 열거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들은 이 책을 읽으며 제가 찾아내 본 것이고 레비 자신이 책 속에서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라고 적시하는 건 '로렌초' 라는 이탈리아 출신 민간인 덕분이라고 합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수용자들은 외부에서 일하러 온 민간인과 이래저래 접촉할 일이 생기는데 대부분의 그들은 수용자들을 이런 취급을 받아 마땅한 일을 했을 것이라고 단정하며 더러운 수인들로 대상화시키고 호기심이나 충동에서 또는 시선의 성가심을 피하기 위해 먹을 것을 던져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로렌초는 빵이나 남은 배급이나 낡은 스웨터를 주면서 매우 자연스럽고 평범한 태도를 보였으며 이것이 여섯 달 정도 지속되었다는 것입니다. 배급되는 멀건 죽만 먹고는 피할 수 없는 병이나 죽음을 이 도움으로 버틸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물질적인 도움보다 그가 상기시킨 어떤 가능성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레비는 로렌초의 존재로 수용소 밖에 아직 야만이나 증오, 두려움과 무관한 세상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믿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수용소라는 조직을 이루는 SS대원, 작업반장, 정치범, 범죄자, 작은 특권층(화장실 청소 담당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리고 가장 밑바닥에 유대인. 레비는 독일인들이 만든 이 위계질서의 모든 단계들은 '내적 황폐감'에 의해 연결되어 있었다고 적습니다. 하지만 로렌초는 이 '무화無化' 의 세상 밖에 있었고 로렌초 덕분에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책이 나온 후 이런저런 인터뷰가 있었고 프리모 레비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 물자 부족, 노역, 허기, 추위, 갈증들은 우리의 몸을 괴롭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정신의 커다란 불행으로부터 신경을 돌릴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완벽하게 불행할 수 없었다. 수용소에서 자살이 드물었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자살은 철학적 행위이며 사유를 통해 결정된다. 일상의 절박함이 우리의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았다. 우리는 죽음을 갈망하면서도 자살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수용소에 들어가기 전이나 그후에는 자살에, 자살할 생각에 가까이 간 적이 있다. 하지만 수용소 안에서는 아니었다. '

프리모 레비는 1987년 자택 계단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는데 자살인지 사고인지 확실치 않은 것 같습니다.

1. 절친인 알베르토는 건강했고 수용소 생활에도 훼손당하지 않는 인간성을 가진 이였는데 퇴각 행군이후 사라집니다. 2만 명 중 1만 5천이 죽었다고.

2. 병자 막사에서 열흘을 보낼 때 그나마 덜 아파서 힘을 모을 수 있었던 두 명의 프랑스인 중 교사인 샤를은 성스러운 정신의 소유자입니다. 꼭 읽어 보세요.

3. '이것이 인간인가'는 첫 발간 때는 전쟁 직후라 외면받다가 58년 재발간되어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귀향하는 과정의 일을 쓴 '휴전'(45년 10월 중순에야 고향인 토리노에 도착합니다.)은 그 덕에 아주 널리 읽히게 되었답니다. '휴전'도 정말 재미있습니다.('이것이 인간인가'는 잘 읽히고 귀한 글이나 '재미'로 표현은 못 하겠어요. '휴전'은 이런 표현이 가능하겠죠.)

4. 프리모 레비의 대표적 책은 '이것이 인간인가, 휴전, 주기율표, 멍키스패너,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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