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3 07:30
저에게 독립이니 민족이니 체면이니 비극이니라는 개념이 얼마나 쓰잘데기 없는지 가르쳐준 분입니다.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 오셔서 뵈었어요.
어머니가 만든 밥 맛있게 먹고 돌아가시는 길, 자동차가 없으시기 때문에 택시 잡아 드리려고 따라 나갔거든요.
우리집이 산꼭대기라 대로까지 나가려면 20분 정도 걸어야 합니다. 나란히 걷기가 좀 그래서 몇 걸음 뒤를 따라 걸었습니다. 뭐 어른의 그림자를 밟지 못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묵묵하게 걸으셨고, 저도 따라서 묵묵했는데 당신의 쇠잔한 어깨에서 시선을 돌리느라 발목을 살짝 삐끗하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택시를 잡으려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 하는 목소리를 내며 나타난 자동차가 있었어요. 감독님보다 더 나이들어 보이는 초로의 남자분이었습니다. 대기하고 계셨나봐요.
그: "감기드신 것 같던데 어떠세요?"
감독님: 멀쩡해. 내가 어떤 놈인데 감기따위가.
초록 나무들 사이로 사라지는 자동차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노라니, 이상하죠? 두 마리의 거대한 곰과 헤어진 기분이었어요. 네 뭐...
2021.06.13 07:53
2021.06.13 08:16
2021.06.13 08:31
누군지 짐작되는 대로 고유명사 함 콕 찍어보세요. 맞으면 맞다고 인정할 겁니다. ㅎ
아 또 생각난 건데 중국요리 중 가장 비싼 건 곰발바닥이라고. 이른바 웅장.
2021.06.13 08:37
아, 또 생각난 것.
- 왜 그렇게 곰에게 관심을 갖게 되신 거에요?
감독님: "곰만이 아니고 난 모든 동물들에게 관심이 있어. 하여 내가 동물원에도 자주 가지. 넌 동물을 보고 있으면 슬퍼지지 않더냐? 내게 동물은 우주의 적막이 각각 동물의 형태로 발현된 것 같아."
2021.06.13 08:46
2021.06.13 09:12
이명세 감독이 아닐까요?
2021.06.13 09:38
두 분다 틀리셨어요. 땡땡땡! ㅋ
또 생각난 거 하나 기록해볼까요.
감독님: 넌 동물 중에서 가장 좋은 친구가 뭐야?
나: 호랑이요. 그 허술한 듯 강한 모습이 귀엽더라고요.
감독님: 호랑이 귀엽지. 힌드어로는 바그, 산스크리트어론 비아그라, 프랑스어로는 티쿠르. 유럽에서 다 이 비슷하게 라틴어와 희랍어에 뿌리를 두고 표현해.
오랜만에 호랑이 얘기를 나눌 상대를 만나니 반갑구나. 이런 꼬맹이와 대화가 되다니.
2021.06.13 09:41
2021.06.13 09:50
2021.06.13 10:26
또 땡~
2021.06.13 10:31
그럼 알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안궁금해요.
2021.06.13 11:57
삐지셨구나. 며칠 지나서 알려드릴게요.
제가 여쭤본 적이 있어요. "인간에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감독님. "내 평생이 배신의 연속이었단다. 영화든 글이든 그림이든 예술하는 사람치고 표절 안 당해본 사람은 없을 걸? 정도 문제는 있지만. 그런데 그런 사람과 싸울 필요는 없어. 스스로 보복받게 돼 있으니까. "
나: 세상이 그렇게 관대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은 아닌 것 같던데요.
감독님: 관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 세상엔 쓰레기통까지 뒤져서 남의 것을 다 가져가는 인간들이 있어. 너도 누군가의 문장을 베끼지 않고 글 한 줄 쓰기 어려운거야. 납득해야돼.
2021.06.13 12:19
삐지다니 아직 삐질때가 아닙니다 감독님 말대로 다 남 따라하며 커서 그렇기도 해요 한번 더 검색해볼까 나 모르는 감독이면 몰라요
2021.06.13 12:27
어디로님을 꼬맹이 취급하다면 나이가 많은 정진우 감독 밖에 없음
2021.06.13 17:02
음...
두번째 도전...
이미례감독....
2021.06.13 19:29
아직 정답 안나왔습니다. ㅎ
2021.06.13 20:04
2021.06.13 22:24
2021.06.14 07:37
ㅎㅎ 가영님 의식을 간질거리게 하는 것 같아서 며칠 끌려다가 밝힙니다. 성함을 적기는 좀 그래서 가장 최근작 제목을 알려드려요. [자산어보]입니다.
2021.06.14 08:12
2021.06.14 08:35
이준익 감독은 왕성한 활동 때문에 노감독이라는 생각이...
쩝쩝쩝
아, 문득 생각나는 감독님의 말씀이 있어서 기록합니다. 중딩 때 들었을 거에요.
"단군이 곰을 엄마로 태어났다는 썰에 대해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은데 어려워. 단군 자체가 공상적인 존재니까. 그러나 한갓 공상이라고 해도 그걸 신화로 받아들이면 세계적인 연대성이 있는 것이거든.
중국의 옛이야기에 어느 남자의 아내가 된 곰이 그의 구박을 받다가 물에 빠져 죽은 이야기가 있거든. 곰과 물은 인연이 있는 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