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아워 (2015, 하마구치 류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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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차례대로 아카리(간호사), 후미(아트센터 기획자), 준(전직 주부), 사쿠라코(현직 주부)


1. 지루하지 않아요. 

다섯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볼만 했다는 후기들이 올라왔었는데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물론 저는 집에서 봤고 이어 볼 여건은 아니라 중간에 두 번은 끊어야 했습니다만 극장에서 봤어도 몸이 견디기 좀 힘들긴 했겠지만 재미가 없다고 느끼거나 지루하진 않았을 겁니다. 어떤 영화인지 미리 확인해서 본인과 영 안 맞는다는 느낌이 아니라면 결코 지루한 영화가 아니니 참고하세요.

영화 속의 행사로 워크숍과 낭독회가 거의 실제 경험하는 분량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저는 초반의 워크숍 부분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고 영화 후반의 낭독회 장면이 시작될 때 '설마 이것도 다 듣게 하는가' 몸이 꼬였는데 듣다 보니 영상을 통해 낭독회 참가하는 느낌도 들고 낭독이 끝나니 끝까지 다 듣는다(본다, 읽는다)는 것이 뭐가 되었든 일정한 결과를 가져오고 이 영화의 낭독회 경우 그 결과가 꽤 괜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어지는 대담이나 뒤풀이 대화와 연결되니 귀기울여 들을 필요도 있었고요. 

다만 저는 후반에 아카리가 클럽에 가는 장면이 지루하진 않은데 살짝 재미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이어져 오던 영화의 분위기와 맞지 않고 전형적인 느낌도 들었어요. 


2. 뼈 때리는 대화 장면이 많아요.

두 번의 행사 후에 뒤풀이 장면이 흥미로왔어요. 이런 공연 종류나 행사를 하고 나면 참여한 사람들이 뒤풀이에서 그간의 긴장을 해소한답시고 추하게 바닥을 보이거나 평소에 쌓인 감정들을 드러내는 언행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 역시 인물들이 매우 점잖은 태도이긴 해도 뒤풀이 장면을 그런 용도로 십분 활용하고 있습니다. 큰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둥글게 둘러 앉아 침착한 태도로 마치 끝을 뽀족하게 다듬은 긴 막대기로 상대방을 콕콕 찌르는 듯한 내용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어찌나 조리 있게 정돈 되었으며 아픈 말들인지, 구경하는 입장에선 참 재미 있으나 본인들은 녹음을 해 두고 복기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일본 사람들이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작심하면 가까운 사이라도 뼈 아프게 심한 말을 면전에서 참 잘 하는구나 싶죠. 심지어 사쿠라코는 잘못을 저지른 중학생 아들에게 '네 인생은 이제 행복해질 수 없을거야, 하고 나니 심한 말이긴 하네' 라고 예사스럽게 말합니다. 우리 정서에선 상황이 뭐든 진실이고 아니고를 떠나 어떤 엄마가 중학생 아들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호러나 스릴러도 아닌데 말입니다. 엄마들이 '내 아들' 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식을 독립된 인간으로 보고 균형감 있는 평가를 하곤 하더군요. 


3. 친구들.

온천 여관에서 네 친구가 저녁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무척 좋았습니다. 마작인가 놀이도 하고 그간 지니고 있던 서로에 대한 의아함을 내비치면 그것을 살짝 해소도 하는 장면입니다. 이 네 명의 배우는 아마추어로 워크샵을 통해 선발했다고 합니다. 기존 배우같은 외모가 아니고 일반인스러움이 있어요. 하지만 영화 속에서 행사장에 앉아 있는 일반인 역할의 사람들을 보자 흠 진짜 일반인은 사실 저렇지, 했어요. 이 네 사람은 카메라 안에서 움직여도 될만한 일반인이었음을...  어쨋든 여관 장면에서 금방 온천을 한 화장기 전혀 없는 맨얼굴로 똑같은 유카타를 입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제 젊지 않은 나이에 접어들어 각자 짊어지고 있는 누적된 생활의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피로감의 무거움 때문에 더욱 서로에게 스며드는 마음이 화면을 넘어 가득 느껴졌습니다. 보고 있는 관객도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장면이었습니다. 결혼이나 기타 세월의 주름으로 친구들과 서슴없는 왕래는 어려워진 지금 이들만큼의 관계도 오래 지속하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생각하게 하네요.


4. 영화가 네 사람 각각의 인생을 비추어 주려면 이 정도 시간은 되어 줘야지, 라는 부작용이 남네요. 최근의 150분 영화들을 대하는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이 감독이 '스파이의 아내' 각본가 중 한 명이라는데 영화가 다 좋아서 '드라이브 마이 카'도 정말 기대 됩니다.  

아 그리고 감독님이 출연합니다. 아이가 매개가 되어 아카리와 데이트하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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