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에 대한 반발심

2022.05.22 16:49

Sonny 조회 수:974

한동훈 현 법무부장관의 딸의 사촌들이 고교생 시절 쓴 논문이 표절된 것으로 확인되었고 원저자도 화를 냈다는 기사가 나왔네요.


https://news.v.daum.net/v/20220518054201620?x_trkm=t


https://news.v.daum.net/v/20220520133313386


20일 오전 이상원 뉴멕시코주립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그 친구(한 장관 처조카)들의 논문을 열어봤다. 나는 '몇 문장 베끼고 짜깁기 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통째로 다 베낀 수준이었다"면서 "방법론 파트는 더 가관이었다. 측정변인들도 거의 같고 심지어 몇몇 변인들은 통계치가 소수점 두 자리까지 같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평균, 표준편차 등) 데이터가 완전히 다른데 통계치가 똑같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면서 "아무 맥락도 없이 마구잡이로 내가 쓴 변인들을 복사, 붙여넣기 하고 막상 가설들은 테스트하지도 않았다"고 짚었다.


이제 이런 뉴스는 '정치적으로는' 큰 의미는 없습니다. 어차피 한동훈은 법무부장관이 되었고 지지자들은 이런 사실은 철저히 모르는 척 하면서 그의 옷 스타일을 찬양하거나 민주당 인사들을 비판하면 되니까요. 다만 한동훈의 딸이 쓴 수법과 똑같은 수법을 썼던 그의 친인척들이 이제 미국 학위가 어떻게 취소를 받고 불이익을 받는지는 외면하지 말아야겠죠. 그건 아무 문제없는 일이 아니라, 문제삼지 않기로 작정한 일입니다. 논문을 표절한 건 아주 심각한 일이고, 논문을 대필시키는 것도 심각한 일이고, 논문이 아닌데 논문의 권위를 훔치려고 착취적 저널에 글을 올리는 것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걸 아무 문제도 아닌 것처럼, 논문에 대한 문지를 근거로 주장하는 일들은 없었으면 합니다.

조국만 뭘 잘못하고 한동훈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게 아닙니다. 조국을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하던 한동훈씨가, 정작 조국씨와 똑같은 죄질의 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이는 몇배나 더 심각한 사안이죠... 

---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910042017005

조국 사태가 한참일 때, 제가 인상깊게 읽었던 칼럼입니다. 조국의 계층적 특권을 비판하는 명문대 대학생들이, 정작 자신의 시위에 분교캠퍼스 학생이 숨어들었다면서 이를 색출하려는 그 풍경을 보고 스산해하던 칼럼입니다. 그 때의 현상을 바라보던 이 칼럼은 약 2년 반 후에 정확한 예언이 되었습니다. 조국 이후의 한동훈에게는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던가요? 혹은 보수언론을 다 포함해 모두가 끔찍해하며 경악을 하던가요? 인터넷이 대표적인 여론은 아니라지만 한동훈의 사태를 사건으로도 바라보지 않으려는 지금의 기류는 그 때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행위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특정 인물, 혹은 특정진영에 대한 분노로 보입니다. 조금 더 범위를 키워보면 가시적으로 도덕적이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한 더 큰 분노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시대정신처럼도 보입니다. '그냥 악'보다 위선을 더 미워하는 마음. 집단적 판단의 기준이 '무엇이 얼마나 나쁘냐'가 아니라 '그 전에 얼마나 좋은 척을 했느냐'로 흘러가는 것... 윤미향이 위안부 피해자 단체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이용수 할머니의 입장을 인용해가며 역겨워하지만 이용숳 할머니가 적극 반대하는 여가부 폐지에 대해서는 이준석과 윤석열에게 어떤 분노도 하지 않는 것... 착한 척은 거짓말이고 나쁜 건 그냥 자연상태인 것... 이런 정신이 지금의 시대를 반영하여 거의 모든 행위와 인물에 적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큰 죄는 누굴 죽이거나 속이거나 부당한 이익을 착복하는 게 아니라,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어떤 척을 하는 거죠.

더민주는 자연스레 상대적으로 더 준법적이고 반계급적이며 더 '민주적'이라는 위치를 주장해온 탓에 모든 비판을 독점하는 지금의 상황에 처했습니다. 물론 자신의 업보입니다만 (특히나 성폭력에 있어서는...) 더민주의 입장이 아니라 그걸 판단하는 유권자나 시민의 입장에서 과연 반대진영의 최소한 동급의 도덕적, 사회적 실패들을 이렇게 눈감아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민주의 위선을 싫어하면서 국힘당의 그냥 실패들(일일이 열거하자면 한숨 나올 정도의 장관 후보 인사들이나 대통령 "신입"이 매일 처 지각이나 해대는 그런 현상들)을 과연 적극적으로 비판하고는 있는가 이런 걸 점검해볼 순 있겠죠. 그렇지만 진영론에 휩쓸리면서 그렇게 사회적 시선이 불균형해지고, 위선을 비판하면서 그냥 악에 대해서는 굉장히 조용해지는 이런 현상들을 기본이라고 볼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

이런 현상은 비단 양당 체제에서의 정치적 지지 불균형으로만 끝나진 않는 것 같습니다. '캣맘'들을 민폐라고 하면서 고양이 살해남성들에게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남초여론, 페미니스트들이 어떤 실패를 했는지는 이야기하면서 매일매일 등장하는 성범죄 기사에는 침묵하는 여론, 인권단체들은 다 세금이나 횡령하는 양아치집단으로 보면서 정작 그 단체들과 척을 지는 자본, 정부에는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는 사회적 시선들, 전장연이 모든 장애인을 대표하진 않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어떤 일을 겪는지는 조용하기만 한 사회... 완벽하지 못하고 무언가 심기를 거스르게 하는 어떤 실천자들은 굉장히 큰 잘못을 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부각되는 소수의 위선자가 아닌 평범의 도덕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별 관심을 주지 않죠. 

이런 시선에서 저는 두가지 계급을 느낍니다. 하나는 사회적으로 이미 타락한 상류층인 건 매한가지인데 왜 굳이 중산층과 하류층을 포섭하려고하냐면서 퍼붓는 중산층 이하의 분노입니다. 두번째는 도덕적으로 더 나아지려고 하는 계층에 대해 극히 보수적인, 즉 지금의 자기자신에서 그 어떤 성장이나 반성도 하지 않으려하는 도덕적 하류층의 분노입니다. 저는 전자는 어떤 실망에 그쳐도 끊임없이 진정한 대표자를 찾아서, 혹은 자신들과의 일체감을 주는 다른 대표를 찾으려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두번째인 도덕적 열등감에 대해서는 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쓰레기인데 뭐하러 괜찮은 척을 하고 남을 비판해~~? 이런 시선은 끊임없는 도덕적 하향평준화만을 꾀하지 그 어떤 개선이나 성장도 이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착한 척 하는 거짓말쟁이들을 척결하면서 남는 것은 착한 척 조차도 하지 않는 그냥 나쁘고 뻔한 사람들뿐입니다. 그냥 영원히 제자리에 머무른 채로 자신처럼 남들도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사회적 게으름이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어떤 계층의 어떤 대표들은 보여주는 것처럼 선하지 않을 때도 있죠. 그러나 그 실망과 분노가 무엇을 위한 동력인지는 조금 더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다 나쁘고 도덕적인 사람은 없고 그냥 조용히 한 채로 자기 취향이나 떠들고 소소한 삶이나 일기처럼 쓰면서 살자는 건... 뭐 개인적인 삶의 방식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최선의 대답이냐고 하면 저는 아니라고 하겠네요. 그리고 삶의 태도는 어느 순간 자신도 누군가를 비판하고 옳고 그름을 가려내려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모순에 부딪힌다는 점에서, 인간은 결국 더 정확하고 높은 도덕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선자만을 가려내며 입바른말 하는 인간을 싫어하는 건 반드시 실패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개인의 도덕의 정도 차이라고 보는 게 더 나을지도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4814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37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1721
119946 프레임드 #73 [23] Lunagazer 2022.05.23 330
119945 조지 밀러옹 신작, 봉보로봉봉 차기작 소식 [15] McGuffin 2022.05.23 709
119944 [아마존프라임] '공포의 여대생 기숙사'... 가 아니라 '하우스 마스터'를 봤습니다 [8] 로이배티 2022.05.23 434
119943 신사의 나라는 개뿔/고향만두 [17] daviddain 2022.05.23 804
119942 노잼 꿀잼 놀이에 진심인 도시 - 대전 빵축제 [4] skelington 2022.05.23 519
119941 색(色), 계(戒) (1979) (장아이링) [2] catgotmy 2022.05.23 530
119940 손흥민 진짜 대단하네요 [3] 정해 2022.05.23 828
119939 켄드릭 라마 새 음반 ‘Mr. Morale & The Big Steppers’를 듣고 나서 부치빅 2022.05.22 391
119938 이런 것(?)을 찾습니다 [32] 2022.05.22 785
119937 르세라핌 5인조 무대 [4] 메피스토 2022.05.22 787
119936 "설국" 마음에 드는 오디오북을 찾기 힘들군요. 산호초2010 2022.05.22 267
119935 사스/메르스/코로나는 우연일까요 만들어진걸까요 낙산공원 2022.05.22 271
119934 [아마존프라임바낭] 또 하나의 화나는 드라마, '아우터 레인지'를 봤습니다 [4] 로이배티 2022.05.22 2844
» 위선에 대한 반발심 [19] Sonny 2022.05.22 974
119932 셜록 홈즈의 모험 시즌1 (1984/영드) [8] 2022.05.22 372
119931 더 파티/음바페 [6] daviddain 2022.05.22 282
119930 새벽에 이런 생각 [6] sent&rara 2022.05.22 506
119929 프레임드 #72 [12] Lunagazer 2022.05.22 308
119928 [EBS1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 [70] underground 2022.05.21 547
119927 [넷플릭스바낭] 이 분들 '러브 데스 + 로봇' 시즌 3 나온 건 보시고 듀게 하십니까 [13] 로이배티 2022.05.21 112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