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글의 형태로 작성되어서 말투가 이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

나에게 영화는 무엇보다도 ‘기억’인 것 같다. 올해 오스카 시상식이 있었던 날에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하루는 ‘영화’ 그 자체였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절친 중에 캐나다에서 평생 세탁소를 하신 아저씨가 계신다. 나는 대학교 시절 캐나다로 어학 연수를 갔을 때 그 아저씨의 집에서 머물기도 했었다. 작은 고모 식구도 미국 이민자이시다. 그렇다가 보니 올해 오스카 7관왕을 차지한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를 봤을 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영화가 오스카에서 작품상을 받아서 아시아 이민자들에게 희망의 이름이 되기를 바랬다. 마치 양자경의 배우 인생을 압축해놓은 것 같은 <에브리씽…>는 가족 멜로드라마를 바탕으로 깔고 그 위에 멀티버스라는 상상력을 결합시킨 뒤 B무비 감성으로 온갖 장르를 뒤섞은 매우 신선한 작품이었다. 이렇게 잡탕에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는데 중심을 놓치지 않고 종국에는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 영화에서 어린 시절 <예스 마담> 시리즈로 유명했던 양자경이 그녀의 인생에서 역대급 연기를 펼치는 것도 감동적이었지만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것은 양자경이 맡은 에블린의 남편 웨이먼드 역으로 출연한 키 호이 콴의 귀환이었다. 키 호이 콴! 내가 영화에 대해 뭣도 모르던 시절에 열광하면서 봤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2>(1984), 리차드 도너의 <구니스>(1985)에서의 그 꼬마가 아닌가. 그 꼬마가 무려 40년 만에 내 눈 앞에 나타나서 아역때 보여줬던 천부적인 재능으로 스크린을 마음껏 휘젓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거의 연기 인생을 포기하고 왕가위의 <2046>(2004) 조감독 등 스태프 일을 하면서 영화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근황이 궁금했을 뿐 나에게도 잊혀져있다시피 했던 그가 이렇게 멋지게 돌아올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나에게 있어서 키 호이 콴의 귀환은 '영화' 그 자체였으며 <에브리씽…>이 나에게 주는 감동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키 호이 콴이 아역 배우로 열연을 펼쳤던 <인디아나 존스 2>는 나에게 단순한 의미를 뛰어넘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최초로 느끼게 해줬던 영화가 <인디아나 존스 2>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았었다면 현재까지 영화에 미쳐 살아온 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사라진 서울극장에서 나는 <인디아나 존스 2>를 봤었는데 4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봤을 때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다. 지금은 스필버그의 부인이 된 케이트 캡쇼가 맡은 윌리가 등장하는 화려한 오프닝부터 시작해서 악당들에게 속은 걸 알게된 후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와 쇼트(키 호이 콴), 윌리가 비행기에서 구명보트를 활용해서 가까스로 탈출한 뒤 미끄럼틀을 타듯이 끊임없이 하강하던 장면, 수많은 벌레들에 휩싸여 윌리가 소리를 지르던 장면 등 수많은 순간들에서 느꼈던 스릴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최고의 절정은 인디아나 존스 일행이 짐수레를 타고 질주를 하면서 악당들과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부터 시작되었다. 인디아나 존스 일행이 천신만고 끝에 악당들을 물리쳐서 탈출에 성공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물 폭포가 그 일행을 덮쳐서 또 다시 물 폭포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싶으면 또 다시 다른 일이 터져서 인디아나 존스 일행이 다시 쫓기게 되고 그 상황이 종료되나 싶으면 또 다시 다른 일이 발생하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경험을 나는 스크린을 통해 처음으로 하면서 너무 재미있었던 나머지 내적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거의 황홀경에 가까운 순간을 맞이했었다.(사실 이러한 서스펜스 기법은 스필버그 이전에 알프레드 히치콕이 이미 완성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었는데 그렇게 본다면 히치콕이 이후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 특별한 영화 속의 모든 장면에 쇼트 역을 맡았던 키 호이 콴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이후로 영화에 미쳐 살아온 내가 있었던 것인데 내가 어찌 <에브리씽...>에서 다시 만나게 된 키 호이 콴을 보면서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단 말인가. <인디아나 존스 2>에 대한 기억이 나에게 소중한 것은 그 영화에 열광했던 '나'는 분명 총체적인 나의 일부라고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 빠져들게 된 계기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과연 앞으로 영화와 관련된 삶을 이어갈 수 있을지가 불투명한 현재의 나로서는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인디아나 존스 2>에 대한 각별한 기억 때문에 나는 키 호이 콴을 계속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뛰어난 연기는 나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는 각종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독식하다시피 했으며 드디어 오스카 남우조연상까지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키 호이 콴은 수상 소감으로 베트남 난민 출신으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하면서 꿈을 잃지 말라는 말을 했는데 마치 그가 나를 염두에 두고 그 말을 하는 것 같아서 무척 감동적이었다. 이미 내가 큰 감동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스카 시상식의 후반부에는 더 큰 감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스카 작품상 시상자로 ‘인디아나 존스’인 해리슨 포드가 무대 위에 나타났다. 오스카측에서 <에브리씽…>가 작품상을 받을 경우를 대비해서 해리슨 포드를 시상자로 결정했던 것일까. 아무튼 해리슨 포드가 무대 위에 나타나서 오스카 작품상 수상자로 <에브리씽…>를 호명하는 순간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인디아나 존스가 40여년 만에 쇼트를 만나서 그가 출연한 영화에 작품상을 수여하는 꼴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대 위에서 해리슨 포드와 키 호이 콴이 감격적인 포옹을 하는 모습을 객석에서 <인디아나 존스 2>의 연출자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그의 옆에는 윌리 역의 케이트 캡쇼도 있었다.) <에브리씽…>와 <파벨만스>(2022)가 같은 해에 오스카 후보 지명작이 되고 작품상 시상자로 해리슨 포드가 나와야지만 가능했던, 한 가지 요소라도 어긋났다면 불가능했을 한 편의 감동적인 영화가 내 눈 앞에서 완성되었다. 아무리 뛰어난 각본가라 할지라도 이렇게 드라마틱한 순간을 상상해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 순간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영화 그 자체였다. 

오스카 시상식이 끝나고 나는 <인디아나 존스 2>의 3인방이 연출한 감동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스필버그의 신작인 <파벨만스>를 보러 갔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 영화는 인생이 영화이고 영화가 인생인 경지를 보여주는 걸작이었기 때문이다. 스필버그판 <시네마 천국>이라고나 할까. 한 평생 영화와 함께 살아온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거장의 역작이었다. <파벨만스>가 놀라운 게 영화와 관련된 것 같은데 사실은 삶과 연결되어 있고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영화와 연결되는 장면들이 많다는 것이다. 수많은 감정들이 카메라를 매개로 현실과 영화를 넘나들면서 계속 흘러간다. 영화를 보면서 이것이 가능하다는 게 놀라울 정도이다. 이 영화에 영화사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인 존 포드가 나오는데 존 포드가 그의 조언을 바탕으로 이제는 거장이 된 스필버그가 만든 이 영화를 봤어도 기뻐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에는 바흐의 음악을 기가 막히게 쓴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 하나로도 이 영화의 위대함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그 장면에서 영화가 인생이고 인생이 영화이기 때문이다. 스필버그는 관객이 그걸 실제로 보고 느끼게 만든다. 특별히 힘을 주어서 연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스필버그가 클래식을 이렇게 잘 사용할 줄은 전에는 몰랐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이 장면에서 스필버그는 크리스티안 펫졸드의 <운디네>(2020)에 나왔던 바흐의 음악과 동일한 걸 사용했는데 이 한 장면에 국한해서 말을 하자면 이 장면의 감흥은 <운디네>의 그것도 넘어선다. <파벨만스>는 영화를 사랑하거나 영화에 대한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감동받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인 것 같다. <에브리씽…>을 응원하기는 했지만 <파벨만스>는 솔직히 <에브리씽…>가 넘볼 수 없는 수준의 영화였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영화의 감독들의 실력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고 오랜 세월에 의해 쌓인 연륜과 통찰을 무시할 수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따라서 올해 오스카 작품상, 감독상은 스필버그에게 돌아가는 것이 맞았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오스카 시상식에 대해 마저 얘기하자면 올해의 오스카는 감동으로 시작해서 감동으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인적으로 다른 연도에 비해 감동적인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성추행을 당해서 고통받았던 브렌든 프레이저가 <더 웨일>(2022)에서의 그의 뛰어난 연기를 통해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영화와 현실 모두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 같아서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시아 배우 최초로 양자경이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건 역사적인 사건이었다는 데 모두 동의할 것이다. 이번 시상식에서 아쉬웠던 건 영화인들을 추모하는 시간에 생전에 영화의 존재 자체를 증명하는 거인으로 평가받았던 장 뤽 고다르가 단 한 장의 사진으로만 나오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예전에 오스카 시상식에서 영화인들을 추모할 때 중요한 인물인 경우에 그 인물과 관련된 영상이 함께 나오곤 했었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오스카 시상식이 있었던 그날 하루는 나에게 있어서 ‘기승전’ 스필버그였고 한 편의 영화였다. 봉준호의 <기생충>이 오스카 4관왕을 한 2020년에 너무 감격한 나머지 나는 내 삶과 관련된 오스카 시상식 후기(http://www.djuna.kr/xe/index.php?mid=board&search_keyword=crumley&search_target=nick_name&page=2&document_srl=13725445)를 여기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올해 오스카 시상식은 내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맞물려 2020년과 맞먹는 감동을 준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감동적인 수상 소감을 했던 키 호이 콴, 양자경, 브렌든 프레이저, 다니엘 콴에게 오스카 수상 축하와 함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꿈을 잃지 말라는(키 호이 콴),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을 믿지 말라는(양자경),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그냥 하라는(다니엘 콴) 말을 가슴에 새기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위태위태한 삶이 이어지고 있지만 나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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