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성매매, 장기매매, 그리고 마약과 같은 이슈에 대해
사람들에게 그게 옳은지 아니면 옳지 않은지 묻는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당신은 낙태를 하시겠어요?"
"당신은 성매매를 하시겠어요?"
"당신은 마약을 할 겁니까?"
"당신은 돈을 위해 장기를 팔 겁니까?"
이런 식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뻔합니다.

"그건 옳지 않은 일입니다"

딸이 강간을 당해서 혹은 하루밤 실수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임신을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생명은 고귀한 것이니까 낙태는 절대 안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부모는 분명히 있겠지만 아닌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고귀한 말을 하는 하는 부모님께 순순히
"맞는 말씀이고, 저는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울께요"
이렇게 말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 분들이 생명의 고귀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 그 고귀함을 압도하고도 남을만큼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꽤 오래전에
아들 부시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바바라 월터스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낙태를 반대합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의 딸이 강간을 당해 임신을 하면 어쩌겠습니까?"
부시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충분히 생명의 고귀함을 알려주고, 딸에게 선택을 맏기겠습니다"
보수주의자이지 반낙태주의자인 부시에게도
마냥 쉬운 문제는 아니었던 겁니다.

이런 문제를 비단 자신에게 닥친 문제가 아니라도 해도
자신에게 닥친 문제인양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정책을 펴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닥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갖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 혹은 정치적/종교적/철학적 신념에 바탕을 두고 말합니다.
"낙태를 합법화하게 되면 생명의 존엄성은 땅에 떨어지게 된다"
"낙태를 합법화하게 되면 사람들은 피임을 하는 대신 낙태를 밥먹듯이 하게 될 것이다"
"낙태를 합법화하게 되면 사람들에게 생명경시 사상이 만연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주장대로 낙태를 불법화한다고 해서
낙태가 없는 세상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 어디엔가 강간은 벌어지고 있고,
이 세상 어디엔가 콘돔 없는 성관계는 벌어지고 있고,
그 벌어지는 사건들에서 원치않는 임신, 감당할 수 없는 임신이 생기는 것은
졸리면 잠을 자야 하고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는 것처럼
나이가 들면 죽어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중에는 그런 원치않는 임신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수술대 위에 오릅니다.

낙태는 불법이지만, 사실상 단속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건 옳지 않은 일이니까 단속을 강화해서 낙태시술자를 처벌하고 낙태 산모를 체포하면,
수술을 받을 수 없게 된 산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뻔 합니다.
아이를 낳고 변화된 일상을 받아들이던가,
더 많은 돈을 내서라도 수술을 해줄 의사를 찾던가,
아니면 수술이 합법화된 다른 나라에 가서 수술을 받던가,
아니면 절박한 마음에 이상한 방법을 씁니다.
영화 '사이더 하우스 룰'에는 절박한 마음에 이상한 방법을 쓰다 죽을지도 모를 산모들을 위해
불법 낙태시술을 해주는 무면허 의사 마이클 케인이 나옵니다.
워런 버핏의 '스노우 볼'을 읽다 보면,
6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시도하다가 죽기도 하고 이상한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그걸 안타까워 하던 버핏은 여러가지 정치/경제적 지원을 하게 됩니다.
버핏의 딸이 낙태를 해야 해서도 아니고,
버핏이 낙태를 좋아해서도 아니고,
그런 현실을 개선하는 방법은 낙태의 도덕적 결함을 주장하고
낙태를 불법화해서 낙태 없는 세상을 시도하는 것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낙태와 다른 것 같지만,
성매매도 큰 그림에서 보면 비슷합니다.

성매매가 좋은 일이라고 말할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매매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는 일이란 걸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공감한다고 해도
성매매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건
원치 않는 임신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입니다.
원치 않는 임신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인체에 부작용이 없는 완벽한 피임약이 개발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경제학의 입장에서 보면,
성매매가 없는 세상이 등장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성매매를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이 놀라는 것은
성을 파는 여성의 교육수준, 인적자본, 기술 숙련도에 비해서
성을 팔아서 생기는 소득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왜 당신은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지 않나요?
열심히 일을 해서 벌 수 있는 돈은 너무 적고 필요한 돈은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국가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충분한 복지를 제공하지 않는 겁니까?
그러기엔 국가의 재정은 부족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수입 수준은 높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모의 여성은 연예인이 아니면 만질 수 없는 수준의 돈을 성매매로 법니다.
미모가 아닌 여성은 하드 코어 업소에서 역시 성매매가 아니면 만질 수 없는 수준의 돈을 법니다.
그들이 그런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성을 파는 일이 몹시 고통스럽고, 힘이 들며, 인간성을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일이
어쩌면 지금 우리 사정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단속하면,
결국 계급적 불평등만 강화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불법화된 낙태를 뿌리 뽑으려고 나서면,
가난한 여성은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려다가
이상한 약을 마시고, 이상한 민간요법에 의지하다가 목숨을 잃거나,
심지어 자살하게 되지만,
부자인 여성은 해외로 나가 자신이나 자신의 딸의 낙태를 도울 것입니다.
성매매 여부를 입증하기 어려운 고급 성매매는 단속의 대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단속을 해보았자 실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루밤에 몇 억 씩 하는 연예인 매춘을 특수수사대를 동원해 일망타진을 시도한들
성공하기도 어렵고
설령 성공했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과연 무슨 실익이 있습니까?
결국 업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낮은 가격에 성을 제공하는 성매매 여성들이 주 타겟이 될 것이고,
그들은 성을 팔 또 다른 방법을 찾을 겁니다.
높은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말이죠.

마약이나 성매매와 같은 일들에 대해서'
가열찬 단속보다는
합법화해서 세금을 부과하고 그들을 법의 테두리에서 관리하는 것이 옳다고
일군의 경제학자들은 주장합니다
그들이 진보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전면적 금지나 전면적 허용(방치)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부부간의 문제에 국가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아 간통은 형사사건이 아닙니다
중독성이 약한 소프트한 마약 역시 국가가 개입할 명분이 없서 합법입니다.
성매매 역시 국가가 통제하에 둡니다.
그것이 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매매 자체가 부도덕하고 더럽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마약 허용이 나라를 망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네덜란드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들어
그것이 잘못된 정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지적을 하는 나라들은 네덜란드 보다 훨씬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데 말입니다.

네덜란드의 그런 정책 때문에
수많은 유럽인들이 암스테르담으로 몰려듭니다.
성을 더 싼 값에 팔 용의가 있는 여성들이 유럽 각지에서 몰려들고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건너 옵니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돈을 벌고 싶어서 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고리로 돈을 쓰게 한 후 그녀들을 옭아 매는 범죄조직도 등장합니다.
그런 고리의 돈을 쓰지 않으면
그녀들이 암스테르담까지 올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오는 이유는
자신의 나라에서 성을 파는 것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입니다.
마약을 하고 싶은 수 많은 유럽의 젊은이들이 유럽 각지에서 몰려들고
허용된 소프트한 마약이 아니라
하드 코어 수준의 마약을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하다가
현지 주민들의 눈쌀을 찌뿌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제가 암스테르담의 한 은행에서 제법 긴 시간을 지내면서 가진 느낌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의 그런 정책을 자랑스러워하고
네덜란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유연한 사고와 높은 교육수준과 소득수준
그리고 강한 축구팀
그리고 강력한 노동윤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다른 요인이 많다고 해도 일반 범죄율과 성범죄율 모두
성매매가 불법화된 미국과는 비교할 바가 안 됩니다.

게리 베커라는 경제학자가 있습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유명한 경제학자입니다.
그는 사형제도에 찬성합니다.
사형제가 범죄율을 낮추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합니다.
사형을 선고받으면 가능한 빨리 집행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마약 거래의 합법화에 찬성합니다.
장기매매의 합법화에도 찬성합니다.
그리고, 동성 결혼에 호의적입니다.
그가 진보인지 보수인지는 그의 견해만 갖고 알기는 어렵습니다.
아니, 그가 진보인지 보수인지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윤리적 입장보다는
정책이 어떤 쪽으로 결정되는 것이, 계약을 어떤 쪽으로 인정하는 것이 더 나으냐를 고민하는
경제학자이기 때문입니다.

낙태가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낙태의 불법화에 반대하는지 여부는
미국 대선에서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많은 여성들이 일종의 가능성으로서 그리고 여권의 일부로
낙태할 수 있는 권리를 옵션으로 갖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간통죄의 폐지는 얼마전까지는
우리나라에 반대가 대세였지만
이제는 폐지를 지지하는 대중이 많아졌습니다.
간통은 옳지 않고,
간통죄 폐지가 간통을 조장할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성매매의 불법화에 반대하는지 여부는
미국이건 한국이건 시기상조처럼 보입니다.
때로 대중은 자신의 신념의 잣대로만 사회적 사안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 그 신념의 잣대는 복음주의 기독교이고,
한국의 경우는 도덕적 엄숙주의가 아닌가 합니다.
장기매매와 동성간의 결혼 이슈에 대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윤리적 옳고 그름을 넘어서
경제학적 혹은 정책적 함의를
따져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단순히 나쁘니까 금지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훨씬 성숙한 입장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신규 가입 인증 및 암호 변경 확인 이메일 발송 불능 [6] 엔시블 2022.08.15 36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1842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29552
26272 드라마보고 잡상 (바낭) [4] nomppi 2011.05.20 1321
26271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칸에서 퇴출당했답니다. [14] 교집합 2011.05.20 5090
26270 [책지름 와중] 오랜만에 밀덕책 한권 질렀습니다. 독소전쟁사 [6] 무비스타 2011.05.20 1917
26269 2MB와 나의 끔찍한 공통점 [6] 생귤탱귤 2011.05.20 2386
26268 내년은 정치적으로 아주 역동적인 한 해가 될 듯. [11] 꼼데가르송 2011.05.20 2645
26267 생방송은 대본이 없어야 [5] 가끔영화 2011.05.20 2225
26266 성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싫은 이유 [10] 레옴 2011.05.20 3315
26265 한국영상자료원 7월 '3인의 일본 거장전' [2] Wolverine 2011.05.20 1395
26264 블랙스완 블루레이 DVD [3] color#46 2011.05.20 1683
» 왜 우리는 도덕적 판단을 넘어서는 사고를 해야 하는가? [27] hubris 2011.05.20 5315
26262 수정화장을 하면 자꾸 화장이 떡져요. 뭐가 문제일까요? [11] zaru 2011.05.20 4730
26261 나는 가수다.. (임재범, 새로 투입될 가수) [8] 깡깡 2011.05.20 4117
26260 코스타리카의 차도에 불시착한 외계인...같은 애 [6] Feline 2011.05.20 2103
26259 [건프라] 지긋지긋한 PG 더블오라이저 완성 [6] Mk-2 2011.05.20 5879
26258 트레이드 네이션 하시는분 안계신가요? 클로버 2011.05.20 1257
26257 [듀나인]영화 제작시 펀딩 관련... [1] kinema1995 2011.05.20 1049
26256 오바마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 영토 양보하라" [15] 레벨9 2011.05.20 3957
26255 '어메이징 스토리'에서 재밌었던 에피소드: Miscalculation (마법의 약) [3] 한여름밤의 동화 2011.05.20 4124
26254 [간만의 듀나iN] 이와이 슌지가 감독한 오래된 뮤직비디오... [1] OPENSTUDIO 2011.05.20 1467
26253 밤 샘 후유증 [6] 새나리 2011.05.20 204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