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게에서도 치즈인더트랩은 인기가 좋은 만화죠?

제가 알기로는 치즈인더트랩이 인기가 좋은 이유는, 그 만화가 탄탄하고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만화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이나 사건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기 때문이에요.

내 주위에서 본 거 같은 사람들과 사건들이 등장하는 만화라 몰입도가 높은거겠죠.


그런데 사실 저는 그 만화를 매우 재미있게 보고 있지만 그 상황들을 공감하지는 못했거든요.

설이나 유정 선배같은 중심 인물들 뿐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여러 배경 인물들의 성격이나 행동들이

뭔가 그럴법한 개연성도 있고 설득력도 있는데 제 주위에, 그리고 제가 대학생활하는 동안에는 그렇게 많이 마주치던게 아니라서요.

예를 들어 팬들 사이에 원성이 자자한, 자기 생각만 하고 주위 눈치도 안보면서 높은 학번을 무기로 민폐만 끼치는 김상철 선배같은 경우에는

대학 생활에서는 내가 마음에 안들면 그런 사람이랑 안놀면 되니까, 제 주위에도 예전에 그런 인물들이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나랑 안맞으면 상대 안하면 되잖아. 직장 상사도 아니고 고작해야 대학 선배일 뿐인데 왜 그 사람 때문에 고생하지?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물론 설이 입장에서는 그게 안되니까, 내가 신경 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관계 맺으려고 하면 내가 그걸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그 고생을 하는거겠죠.

그러니까 제 입장에서는 그게 좀 신기한거에요. 내가 과 내에서 어떤 행동을 하면 어떤 식으로 평가 받을지 항상 신경쓰고 관리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정말 남들은 대학 생활을 저렇게 한다는거야? 물론 만화니까 과장이 심한 것도 있겠지만 하여튼 저한테는 신기했어요. SF소설을 볼 때 느껴지는 생경함과 비슷했을지도요.



제 생각에는 그래요. 제가 느끼는 생소함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거에요. 세대나 학과 분위기 등 특히나 환경적인 요인들이 그런 주된 이유라 생각해요.

저는 2000년대 초반 학번이거든요. 뭐 그때도 학점관리 신경쓰는 학생들도 많았고, 취업이나 등록금에 대한 걱정도 많았지만,

지금처럼, 혹은 치즈인더트랩에서처럼 살벌하진 않았던거 같아요.

특히 1, 2학년 때에는 학과 공부보다는 동아리나 학생회, 취미 생활등 자기 하고 싶을거 하는게 더 일반적이었던거 같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책도 읽어보고, 되도 않는 주제로 선배들이랑 논쟁하고, 대낮에 술쳐먹고 이 상태로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도 하고..

혹은 과에 따른 특성도 있겠죠. 저는 인문계열 전공이었으니까, 아무래도 경영같은 전공보다는 학점 받기 수월했던거 같기도 해요.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저도 경영같은 전공을 했다면 치즈인더트랩에 재우선배같은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여튼 꼰대같은 입장에서 치즈인더트랩의 등장인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나때는 안그랬어 임마'

라는 겁니다.


그럼 그렇게 물을 수도 있잖아요.

'너 때는 어땠는데'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면 보여주고 싶은 만화가 나왔어요. 억수씨의 오늘의 낭만부.



억수씨의 전작인 연옥님이 보고계셔나 하늘마을 티셋도 매우 좋아했던 만화라서 이번 만화에 대한 기대가 커요.

연옥님이 보고계셔를 보고 유추해본 바로는 억수씨는 99학번 혹은 98학번 정도 되는거 같더라고요.

저랑 연배도 비슷하고, 뭔가 겪었던 사건들, 향유했던 정서들이 비슷한거 같아서 그의 만화가 표현하는 세계관에 애착이 커요.


특히 제가 보면서 움찔 했던 디테일이 있는데...

연옥님이 보고계서에서 주인공인 정수가 방황하면서 강박적으로 야동을 찾아보는 묘사가 나와요.

근데 그 방황하던 장면에 등장하는게 바로 real play로고에요.

지금이야 2~3기가 되는 동영상 받는데도 5분이면 충분한 시대가 되었지만, 그때는 기가가 왠말인가요.

1메가 받는데도 모뎀과 서버가 버텨주기를 기도하며 수분을 가슴 졸여야 했죠. 다른 작업은 겁나서 하지도 못하고.

그때 저용량 동영상 파일 형식으로 각광받던게 real play였죠. 만화에서 그 로고를 보는 순간...

아, 이 아저씨 정수가 보여주던 그 상황을 겪은 것이 분명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로 야동 많이 봤겠구나라고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하여튼 그런 분이 그린 만화다 보니, 낭만부에서 나타내는 정서랄까 그런게 저한테 더 쉽게 공감이 되는거 같습니다.

물론 만화는 픽션이고 판타지죠. 그런데 판타지라고 해도 혁집이가 동아리 건물 2층에서 뛰어내리는게 설이가 프레젠테이션 펑크나서 절망하는 것 보단 저한테 가깝게 느껴져요.


캐릭터도 그래요. 제 선배중에 진짜 혁집이 같은 선배가 있었거든요. 아쉽게도 그 선배는 한학기인가를 남겨두고 졸업을 포기하고 말았죠.

대학 졸업장을 따지는 못했지만 그 선배는 자기 적성에 맞는 다른 분야에서 오히려 더 잘나가고 있어요. 잘나가는 그 선배보면 셈도 나고 그래요. 나도 더 정신줄 놓고 놀아버릴껄.

구김살 없이 착한 김가이도 그렇고, 무슨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밝고 귀여운 오수리도 그렇고... 내 친구들 이야기 같아요.

뭐 지금에 와서야 다들 졸업 걱정, 취직 걱정, 먹고 살 걱정등 예전 그 대책없이 밝은 시절같진 않아도 아직 습관이 남아있죠. 아직도 놈팽이죠. 하하.



 


치즈인더트랩에서 그리고 있는 대학생활에도 분명 순수하고 아름다운 낭만이 있을거에요. 하지만 그건 아마 제가 이해 못하는 낭만이겠죠.


제가 지닌 낭만이란, 결국 스물 몇 살짜리의 철없음이었어요. 아직도 철없고, 그 철없음이나 낭만이 아무 소용도 쓸모도 없겠지만, 그래도 그거 아니면 또 뭐가 남겠냐는 바보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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