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쓸까 했었는데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오늘 쓰게 됐습니다.  임신 9개월이 시작되니 조금만 무리해도 회복이 바로 오질 않아요.

 

지난 토요일 아빠께서(평소 아버지라 부른 적이 없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양로원에서 돌아가셨는데 저랑 남편이 도착했을 땐 이미 숨을 거둔 뒤 였어요.

다행히도 임종 때 엄마가 자리를 지키고 계셨어요. 

 

이미 몇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긴 분이라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지난 토요일이 그 날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서서히 진행될거라 예상했는데, 갑자기 하루 사이에 일이 일어난 거라서요.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큰 충격이 왔습니다.

 

임종 전날, 저녁에 일 끝나고 휴대폰에 남아있는 양로원 간호사의 메세지를 들을 때만 해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좀 아프시구나, 이번에도 넘어가겠지.

혹시나 하고 엄마랑 전화했었는데 엄마 목소리가 평소보다 좀 무거웠어요.

아무래도 이번엔 잘 넘기지 못하시겠다는 말씀과 함께요.

수요일에 아빠를 방문했을 때 의사표현을 거의 안하시던 분이(중풍이 여러 차례 왔었어요.) 그렇게 우셨대요.

엄마도 맘에 걸려서 계속 옆에서 기도하고 마음 편히 하라고 아빠께 계속 얘기하셨구요.

 

연락도 있었고 해서(열이 있고 옆구리 쪽이 부어있다는..) 엄마는 지난 토요일 아침에 양로원에 가셨고 전 무슨 일 있으면 연락달라고 했어요.

숨을 잘 못쉬고 힘들어 하셨다고 하는데 전에도 폐렴 때문에 그런 적이 있어서 산소호흡기만 연결하고 해열제만 준 상태였나봐요.

그 상태가 됐을 때 빨리 호스피스 관계자를 불렀어야 했는데, 왜 양로원 간호사들이 그렇게 안했는지 좀 의문이긴 합니다.

호스피스 사람들이 당시 아빠 상태를 봤다면 몰핀이나 기타 약물을 줘서 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텐데...

 

아무튼 이건 제 생각인데 금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돌아가신 이유는 엄마가 마지막 가는 길 아빠 옆에 있어주길 원했기 때문인 듯 싶어요.

위에도 썼지만 도착했을 땐 돌아가신 지 이미 40분이 넘어서 사후경직이 진행된 상태였어요.

손발은 차고 왼쪽 가슴은 약간 따뜻한 상태, 눈은 잘 감겨져 있지 않았구요.

그 장면을 본 다른 분들은 그냥 주무시는 것 같다고 얘기했지만 전 이미 시체를 본 경험이 있어서 돌아가셨다는 걸 보자마자 바로 알았어요.

 

양로원 가는 동안 자동차 창 밖을 보면서 날이 진짜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례식 내내 덥지도 춥지도 않고 비도 안왔구요.

갑작스레 돌아가신거라 장지만 사뒸지 아무것도 준비가 안되서 걱정했는데, 가까이 사시는 이모가 장의사 연락하고 남편이랑 동생이 일처리를 잘 해줘서 수월하게 진행했어요.

 

전 한국의 장례식 문화를 접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데 장례식 내내 상주와 가족들은 밤을 거의 세우다시피 한다고 그러더군요.  맞나요?

아무튼 이곳은 미국이라 미국식 장례식으로 했어요.

아마 미드에서 장례식을 본 분들이라면 대충 아실 듯 해요.

 

돌아가신 다음 날, memorial service가 있어서 시작하기 한시간 전 장례식장에 도착했어요.

엄마는 힘들어하셔서 나중에 보시겠다고 했고 제가 제일 먼저 viewing을 하러 들어갔어요.

얼굴 쪽의 관뚜껑이 열려있었고 아빠의 얼굴이 보였어요.

막 죽었을 당시의 얼굴과는 판이하게 다른, 상당히 젊은 얼굴이었어요.

마치 10여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얼굴이었죠.

정말 살아있는 듯한, 단지 깊은 잠을 자는 듯한 착각을 주더군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memorial service 때 와 주셨어요.

이곳에선 아빠의 친구분들이 없기에 기껏 와봤자 저의 친척들과 교회 교인분들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는데, 제 친구들과 동생 친구들까지 와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장례식에 사람이 없는게 얼마나 쓸쓸한건지 그 때 정말로 깨달았어요.

 

월요일 아침엔 장지로 떠나기 전 발인 예배를 드린 뒤 경찰 에스코트를 따라 장지까지 갔습니다.

항상 에스코트 하는 걸 보기만 했지 막상 그 무리에 있어보니 참 느낌이 묘하더군요.

그 얘기를 하니 남편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고..

 

하관 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삶이란 무엇인가란 생각이 떠올랐어요.

결국 저 좁고 어두운 곳에 가기 위해 그렇게 아둥바둥 사는 건가?

허무하기도 하고 인간의 유한성에 나약함을 느끼기도 했어요.

 

장례식을 치르면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건 잘 하지 못한 거에 대한 후회였습니다.

평소 아빠랑 사이가 좋지 못했고 오죽하면 아빠랑 안닮은 사람이랑 결혼하리라고 마음 먹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아빠가 아프게 된 뒤로는 무슨 일만 터지면 제가 해결해야 해서 왜 이리 오래 사시는지 원망도 꽤 했었구요.

올해는 정말 제가 홀몸이 아니다 보니 더 힘들었어요.

 

하지만 돌아가시니 저에게 못해준 것 보다 제가 잘 하지 못한 것들이 마구마구 떠올랐어요.

자주 뵙지 않고 신경쓰지 못했던 지난 날들이 생각나 계속 후회하게 됐어요.

예, 이젠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모른다고 그랬나봐요.

 

그런데 그런 느낌은 있었습니다.

아빠가 올해는 못넘기시겠구나.  손녀딸은 못보시겠구나.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뵐 때 마다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몸이 힘드니까 잘 안가게 되고 그랬죠.

 

아직도 잘 실감나지 않습니다.

정말로 돌아가신건가?  아직 양로원에 계신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가도 돌아가실 당시의 얼굴과 장례식에서 뵌 그 어색한 얼굴이 자꾸 겹쳐 떠오릅니다.

그러면 아 돌아가셨구나, 새삼 느끼게 돼요.

 

시간이 지나면 이 기억도 점점 흐릿해 지겠죠.

이젠 앞으로 태어날 아기 생각을 더 많이 해야겠어요.

쉽진 않겠지만요.

 

올 2011년은 저에게 많은 일들을 가져다 준 해예요.

죽음과 탄생을 같은 해에 겪게 됐으니까요.

 

 

아빠, 편히 잠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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