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9 16:31
사실 몇몇 가지를 적어볼렸다가, 아직 공부가 부족한 것 같아 잠시 미뤄뒀습니다. 그런데 나름의 뉴스 덕분에 묻어두었던 생각이 새록새록 돋아나네요.
이번에 목사직을 박탈당한 이근안 씨가 고 김근태 씨를 고문한 것은 1985년의 일입니다. 네, 바로 그 자랑스러운 88올림픽을 개최하기 고작 3년전의 일이어요. 하지만 그 전에도, 후에도 고문은 공공연하게 벌어졌습니다. 정치범들에게도 그랬지만 일반 심문에서도 그랬어요. 죄가 없는대도 억울하게 심문을 당하고 맞은 끝에 정신병까지 앓은 사람이 수다하거든요. 이제 와 그런 일이 있었어? 라고 생소하게 들을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다행한 것인지.
따지고보면 이근안 씨는 일제시대 이후 대대로 이어지던 고문 경찰의 계보를 잇는 5공 때의 기술자입니다. 이승만 때는 노덕술이었죠, 고문으로 임화란 청년이 죽자 얼어붙은 한강 아래 시체를 유기하고 "저놈 잡아라!"라며 도망간 것으로 꾸몄는데, 이걸로 처벌받기는 커녕 반공투사라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표창까지 받았지요.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던 박종철 사건도 유명하지요.
그 외에 최운하도 있고 김창룡도 있어요. 고문이고 뭐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사람들 조져서 성과(같지도 않은)를 내고, 그 덕분에 권력자들에게 이쁨받고 온갖 특혜를 받아서... 그렇게 잘 먹고 잘 산 사람들 말이죠.
그러니까, 이근안 씨 본인은 자신이 억울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고문을 한 사람이 자신만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요. 솔직히 그는 나쁜 사람 맞지요, 평생 미안해해도 부족할 텐데 자기 변명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니니 정말 나쁜 사람이어요. 그 분 부인도 가족이니 옹호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참 답이 없더군요. 하지만 그 만큼, 혹은 그 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근안 씨가 이렇게나 조명을 받게 된 것은 고 김근태 씨가 이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당연히 이근안 씨는 실행조이지 그 위로 박배근 전 치안본부장이라던지, 당연히 그 모든 사안을 명령하고 빨리 자백을 받아내라고 채근했을 윗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사실 모든 상황의 근원인 - 두족류의 어떤 생명체와 참 닮은 어떤 사람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뿐입니까? 6공 때 한참 고문 조사로 이름 날렸던 정형근 씨도 묵사마로 지금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불편한 게... 결국 털어도 후환이 두렵지 않은 만만한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있습니다. 몇년 전 어느 인터넷 뉴스에서 성함은 기억 안 나는데, 이근안 씨의 상관이자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보복이 두려워 중국으로 망명했던 사람이 귀국해서 당시 용공 대학생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인터뷰를 했는데, 그들이 했던 극악무도했던 짓이란... 바로 남녀혼숙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 어이가 없었지만 그 이상으로 갑갑했습니다. 이근안씨도 그랬죠? 자기가 잡아낸 간첩들이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되어 좌절감을 느낀다고요.
지금 우리가 보기엔 어이없지만, 그 분들은 자신들이 정말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나쁜 공산당을 잡아내서, 대통령에게 충성하고 나라에 보탬을 한다고. 마찬가지로 고문을 당했던 방배추씨도 이근안씨가 고문을 하기 전에 대통령이 있는 쪽으로 절을 하더라는 경험담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잠깐 머리를 식혀보도록 하지요.
이근안 씨나 수다한 고문경찰들이 나쁜 사람인 건 맞아요. 그들을 욕할 순 있어요.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봐도 되지 않을까요. 어째서, 그들은 죄책감도 없이 '인간답지 않은'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지를요.
대의명분이란, 참으로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요. 때로는 감정조차도요. 아파서 괴로워하고 우는 데도 여기에 측은함을 못 느끼고 꼴좋다고 웃는 것 만큼 잔인한 게 또 있을까요.
결국은 그런 거죠, 어떤 이유로든 사람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거.
박종철 사건이 벌어졌을 때, 원인 중 하나는 당시 경찰들끼리 성과를 내기 위해 경쟁이 붙은 탓으로도 봤답니다.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하니까 사람을 족치고 본다 이거죠. 결국에 억울한 사람이 죽고 문제가 되자, 오히려 일선 경찰들은 - 고문을 못하면 어떻게 용공 분자들을 색출해내겠느냐고 걱정을 했다 합니다.
또, 어떤 교수님이 하신 경험담인데, 오래전 서대문 형무소에서 안내를 맡으셨다가 나이 지긋한 분들이 "저런 고문을 하다니 일제 나쁜 놈들" 하다가도, "빨갱이들은 저런 고문 당해도 싸다." 라는 말을 하시더랩니다.
즉 그 분들에게, 공산당은 사람도 아니니까 고문이고 뭐고 해도 된다는 생각이 뿌리박혀 있었다는 거죠. 전쟁을 겪은 세대이니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합니다. 그 분들이 편협하다고 말하는 것이야 쉽겠지만,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어요. "그래도 싸, 당해도 괜찮아"라고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것 말입니다.
그게 그 당시에는 공산당이나 빨갱이였겠지만, 이제 와 다른 말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을 겁니다. 미혼이니까, 돈이 없으니까,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으니까, 혼혈이라던가, 부모님이 없다던가, 비정규직이니까, 고향이 어디라던가, 외국인이니까. 기타등등. 하지만 언제 어떤 순간에도 내가 인간인 것과, 상대방이 인간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되어요.
왜냐하면요, 언제 어느 순간 내가 바로 그 피해자의 위치에 놓일 수 있거든요. 가끔 개인은 시대의 흐름에 꼼짝 없이 밀려 구석에 몰릴 수도 있어요. 에이 그런 일이 있겠어, 하다가도 어느 순간 어떻게 몰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동정도 못 받는 그런 상황이 되어버리니 말여요.
그래서 아무리 네발 달린 동물보다 나쁜 사람일지라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이근안 씨에게 법이 허락한 것 이상의 보복은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인간이니까요. 물론 제대로 된 벌을 안 받은 저기 29만원 씨는 다시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만 말이어요.
p.s : 몸살감기 크리가 떠서 와병중입니다... 죽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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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1 19:49
서독과 동독이 나뉘어져있던 시절, 서독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을 동독 경비병들이 저격한 일에 대해서 법원이 살인죄를 인정한 일이 있었던걸로 기억해요.
명령이였다지만 적극적으로 거부할려고 했다면 다리를 맞췄어야 하지 않았냐는 취지의 판결문이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질 기억력의 소유자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