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 호스]

스티븐 스필버그의 [워 호스]40-50년대 헐리우드에서 나왔을 법한 복고풍 영화입니다. 촬영감독 야누스 카민스키가 카메라에 근사하게 담아낸 영국 시골 풍경이나 그 속을 돌아다니는 비교적 단순한 캐릭터들만 봐도 그 시절 존 포드와 같은 감독들이 만들고 했던 영화들이 자동적으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영화 속 마을을 보면서 [나의 계곡을 푸르렀다]가 연상되더군요). 마이클 모퍼그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의 이야기는 [블랙 뷰티]에 전쟁 영화를 접목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원래는 영국 시골 동네에서 농사일 하는 데 평생을 보냈을 말 한 마리가 1차 세계 대전의 전쟁터로 보내지고, 전쟁 속에서 이리 저리 휩쓸리는 동안 조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말은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게 됩니다. 처음부터 눈물 짜게 만들려는 의도가 확연히 보이지만, 스필버그는 그런 걸 잘 해온 거장이고, 영화는 잘 만든 멜로드라마입니다. 전쟁터 장면들은 절제되었지만 상당히 효과적이고 가끔은 겁나기도 합니다(영화 속 나온 말들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정말 오금저립니다). 감상적이고 해피엔딩은 이미 예정되어있지만,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위험에 던져져서 발버둥치는 동물에게 어찌 무정할 수 있겠습니까? (***1/2)

 

 



[우먼 인 블랙]

귀신들린 집이 나오는 영화들은 대부분의 경우 음산한 기운이 스멀스멀 돋는 집을 잘 보여주기만 하면 절반 이상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고 [우먼 인 블랙]도 예외는 아닙니다. 밀물이 들어오면 잠기는 해변가 오솔길이 유일한 진입 경로인 일 마시 저택은 낮에도 어두침침한 편인 가운데, 집 안에는 여러 이상한 소리들이 들리곤 하고 영화 제목대로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주인공 눈에 띠곤 합니다. 이런 장소에서는 하룻밤도 머물기도 힘들겠지만 우리의 주인공인 변호사 아서 킵스는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그러니 마을 사람들이 다들 빨리 떠나라고 함에도 그는 불구 저택 매매를 위한 서류 처리 작업하느라 그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고, 따라서 우리는 으스스한 광경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야기가 약간 불만족스럽지만, 영화는 스산한 분위기를 잘 유지하는 편이고 해리 포터 시리즈를 뒤로 한 가운데 전진하고 있는 중인 대니얼 래드클리프는 괜찮은 주연입니다. (***)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전기 영화인 [철의 여인]에서 메릴 스트립은 좋은 오스카 시즌용 연기를 선사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가 그녀만큼이나 공을 들이지 못한데 있습니다. 산만하게 스크랩북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건 봐 줄 수 있다고 해도 1시간 40여 분 동안 대처의 인생에서 일어난 이런 일 저런 일 일일이 다 보여주느라 바쁘다 보니(그녀의 첫 정치 입문, IRA 테러, 강직한 정책 밀어붙이기, 냉전, 포클랜드 전쟁, 냉전 시대 종료, 수상직 사임...) 얄팍한 느낌과 함께 초점이 흐려져 갑니다. 이러니 공평한 입장을 취한다고 해도 별 효과가 없고, 스트립의 연기는 실존 인물 연기 쇼 그 이상을 넘지 못하는 가운데 짐 브로드벤트를 비롯한 다른 배우들은 기능상 조연들로 낭비되는 편입니다. 메릴 스트립 연기 그 자체만 원하신다면 보셔도 되겠지만, 전반적으로 실망스럽습니다. (**)





[더 그레이]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그 덩치 큰 늑대들은 최근 [브레이킹 던 1]에 와서 상당한 수준으로 의도치 않게 웃겼지만, [더 그레이]의 늑대들은 전혀 웃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연 생태계의 가차 없는 한 단면이고 그들은 육식동물들답게 그들 본능대로 영화 속 주인공들을 먹잇감으로 노립니다. 영화 속 사람들은 알래스카 오지에 있는 유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그 중 한 명인 오트웨이의 일은 다른 사람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는 야생동물들에게 공격당하는 걸 막는 전문 사냥꾼입니다. 그는 아내를 잃은 후 상당히 울적해진 가운데 자살도 고려하기도 하지만, 그와 다른 사람들이 탄 앵커리지 행 비행기가 눈에 쌓인 오지에 추락해 산산조각이 나고 그와 소수의 생존자들이 늑대들에게 위협받는 가운데, 생존 본능이 자극받은 듯한 그는 그들을 이끄는 사람이 되지요. 제가 보기엔 그리 현명치 않은 선택인 듯하지만, 그는 사람들을 남쪽에 있는 숲으로 이끌고 그들은 여전히 늑대들의 타깃이 됩니다. 2년 전 [A-특공대]로 사람 기분 얼얼하게 만들었던 조 카나한 감독은 늑대들과 다른 도구들을 통해 서서히 두려움과 서스펜스을 쌓아가고, 이야기 완급을 잘 조절하는 동안 캐릭터들을 단순히 늑대 밥 정도로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샷은 꼭 필요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는 저로 하여금 극장 나오면서 날씨가 더 쌀쌀하게 느껴지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따뜻한 옷과 탈 것, 그리고 난방 되는 침실을 가능케 해 주는 현대 문명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1/2)


 



[다슬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Lovable’이지만, 영화의 주인공 다슬이는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은 꼬마 소녀입니다. 서번트 증후군인 다슬이는 아무데나 그림 그리거나 아니면 눈사람 나오는 만화영화 보는 거 외엔 신경 쓰는 게 없습니다. 같이 사는 삼촌과 할머니 속을 긁어대는 건 기본이고 동네 벽에다 낙서해대니 이웃들도 그녀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습니다. 아무리 애라고 하지만 가끔씩은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걸 보면 두려울 지경이에요. 그러던 어느 날 눈이 내리니 다슬이는 눈사람을 만들어 갖고 다니고 그런 동안 이런 일 저런 일이 생기지요. 결말에 가서도 여전히 다슬이는 자신만의 세상에 틀어 박혀 있고 그러니 자신의 변한 처지에 대해 별 상관도 안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다슬이와 공감 못할지언정(전 다슬이보다 눈사람이 더 걱정되었습니다) 그녀의 시각을 어느 정도 선에 이해하게 만들고 그러니 덤덤함 속에서 감정이 튀어나오곤 합니다. 주연인 아역 배우 윤해정의 좋은 연기도 잊을 수 없지요. (***)



 



[REC]

소준문 감독의 영화 [REC]의 전반부는 멈블코어 영화에 가깝습니다(보는 동안 야동 찍으려고 하는 두 스트레이트 남자 친구들의 이야기인 [험프데이]가 문득 떠오르더군요). 5년 간 사귄 게이 커플이 기념으로 한 호텔에서 방을 잡고 야동을 찍어 보려고 합니다. 디지털 카메라 앞에서 속옷 하나만 빼고 벌거벗은 그들은 부자연스러워 하고, 이런 말 저런 말 하다가 결국에 카메라에 이들 섹스 장면이 담기게 되지만(괜히 19금 판정 받은 게 아닙니다), 후반부에 가서 이들 사정이 밝혀지면서 상황은 어색함의 코미디에서 눈물의 멜로드라마로 전환되지요. 상영 시간이 1시간 정도 밖에 안 됨에도 불구 늘어진 감이 있기는 하지만(상영시간 1/3 길이 정도의 단편 영화가 더 안성맞춤이었을 겁니다), 좁은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두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좋은 가운데 1시간을 그리 심심하지 않게 만듭니다. 현재 다운로드 시장에 나와 있으니 한 번쯤 보셔도 무방하실 겁니다.(**1/2)

 

 



[휴고]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 [휴고]은 그의 다른 대표작들에 비하면 상당히 다릅니다. 193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한 가족 영화란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브라이언 셀즈닉의 원작 그림책의 내용을 고려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주인공인 휴고는 파리의 한 기차역에서 몰래 살아 온 어린 소년인데, 그는 자신을 그곳에 데려온 삼촌 대신 역내 시계들을 관리해왔고 그런 동안 그는 자신의 죽은 아버지가 복원하다 만 오토메톤이란 기계 장치를 수리하려고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역내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는 노인 조르주 밑에서 일하게 되는데, 나중에 그가 바로 조르주 멜리에스란 걸 발견하고, 여기서부터 영화에 대한 스콜세지의 지식과 열정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휴고]는 더 흥미로워집니다. 참고로 전 3D로 본 영화를 2D 버전으로 봤는데, 부족한 감이 들지 않는 가운데 3D를 왜 사용했는지 이해가 가더군요. (***1/2)

 



[창피해]

[창피해]는 여러 결점들 때문에 간간히 집중도가 떨어지곤 하지만, 다행히 영화 중심에는 좋은 두 여주인공들이 있고 그들의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일하는 백화점에서 갖고 온 마네킹을 갖고 밤중에 추락자살 시험을 하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일으킨 계기로 윤지우는 소매치기 소녀 강지우와 접하게 됩니다. 둘은 강지우를 쫓아 온 경찰에 의해 같이 수갑 채워진 신세가 되고 여러 재미있는 순간들이 이어지는 동안 둘의 사이는 가까워지고 어느 새 이야기는 말 그대로 산골로 가버리기도 하지요. 이런 이야기를 영화는 윤지우가 나중에 미대 교수 정지우의 비디오 아트 모델로써 그녀와 같이 해변 가 마을에서 머무는 동안 정지우에게 차근차근 들려주는 형식으로 풀어나가는데, 이런 전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습니다. 정지우 쪽으로 이야기가 돌아갈 때마다 재미가 떨어지고, 정지우는 개인적으로 중학교 시절 일명 백발마녀라고 불렸던 한 미술교사를 연상시켜서인지(첫날부터 제 뺨을 때렸습니다) 그리 정이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 지우들을 맡은 여배우들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적절히 캐스팅된 가운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래서 상당한 산만함에도 불구하고 전 재미있게 봤습니다. (***)

 



[빅 미라클]

[빅 미라클]은 얼마 전에 봤던 [돌핀 테일]과 비교해 볼만 합니다. 둘 다 실화에다 허구를 적당히 섞은 뻔한 가족 영화이고 영화 속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곤경에 처한 수중 포유류를 도와주려고 하는 게 주 내용이니까요. 따뜻한 플로리다가 배경인 [돌핀 테일]과 반대로 [빅 미라클]의 배경은 밤에 영하 50도 아래로 내려가기까지 하는 써늘한 알래스카의 최북단 도시 배로우이고 주인공들은 얼음에 갇힌 회색 고래들을 구하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제가 뻔하다고 불평해도, 소재를 둘러싼 여러 의견과 관점들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알찬 편이고, 사람들이 다들 함께 모여서 고래들을 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엔 작은 감동이 있습니다. (***)

 





[마릴린과 함께 한 일주일]

[마릴린과 함께 한 일주일]은 다큐멘터리 제작자였던 콜린 클락의 두 책들을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그 책들에 따르면 1957년 클락이 로렌스 올리비에가 감독/주연을 한 [왕자와 무희] 제작 과정에서 올리비에의 보조로써 일하는 동안 여주인공을 맡은 마릴린 몬로와 짧은 시간 동안 로맨스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마릴린과 함께 한 일주일]은 꽤 재미있고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매혹적인 스타와 풋사랑에 빠지는 클락의 이야기야 별 특별한 게 없지만, 그를 거의 가려버리는 유명 인사들이 그의 주위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이 영화의 진짜 재미이고, 특히 마릴린 몬로를 맡은 미셸 윌리엄스의 연기는 아름답습니다. 20세기 문화의 중요 아이콘들 중 하나가 된 캐릭터를 연기하게 되었으니, 보는 순간부터 그녀 연기를 의식하게 되어도 가면 갈수록 흥미로워집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릴린 먼로의 그 익숙한 면모들이 나열되는 동안에(늘상 자신감이 부족한 것도 워낙 민감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늘 피곤하게 했다는 건 여기서도 잘 보여 지지요), 본인의 스타 배우 위치에 부담 받으면서도 스타가 되지 않고는 못 살 것 같은 연약한 여인으로써 몬로는 우리에게 다가오고 그러기 때문에 가끔은 찡하기도 합니다. 그의 셰익스피어 영화들이 올리비에의 셰익스피어 영화들과 자주 비교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리비에를 맡은 케네스 브래너의 연기도 재미있는 가운데, 주연을 맡은 에디 레드메인의 성실한 중립적 연기를 둘러싼 다른 조연들 연기도 볼만 합니다. 마릴린 몬로에 관한 별 새로운 걸 얘기하지 않지만, 이런 좋은 볼거리에 굳이 불평할 필요가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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