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임동혁 연주엔 '큰' 관심은 없는데(쇼팽콩쿨 때도 라팔에 환호를.. 그래도 임동혁 쇼팽콩쿨연주 최근에 다시 들으니 당시엔 못 느끼던 게 들리더라고요!) 인물 자체엔 흥미가 가요.

뭔가 살짝 디스하면서도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임동혁 소식이 근래에 잘 안들려서 안그래도 요즘 뭐하지? 싶었는데

반갑게도 <객석> 2월호에서 임동혁 인터뷰를 읽었는데, 재밌길래(아닐 수도 있습니다;) 공유하고자 일부 발췌해서 올립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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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동혁 - 모순과 혼돈의 10년>

  

(프롤로그 중..)

오후 4시,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임동혁이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씹으며 인터뷰에 임했다.

마치 탁구공처럼 질문과 답변이 짧은 호흡으로 오갔다. 틈을 노려 강 스매시 날려봐도 그는 톡 하고 받아쳤다.

조금의 힘도 꾸밈도 묻어나지 않는 답변이었다.

임동혁에 대한 평가가 각양각색, 모순의 극단을 오가는 이유는 타인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너무 '날것'이기 때문임을 알았다.

선입견 때문에 그를 불편해하거나 어려워하거나 혹은 낯설어하는 사람들에게 까칠하게 느껴지는,

그러나 산전수전 겪어보고 이런저런 인간군상 만나온 이들에겐 헛웃음 나는 순진함으로 보일 '날것' 말이다.

 

 

* 박용완 : 2002년 9월에 있었던 독주회에서 쇼팽 발라드 1번과 소나타 3번, 슈베르트 즉흥곡 Op.90 전곡, 그리고 라벨 '라 발스'를 연주했습니다. 롱 티보 콩쿠르에서도 '라 발스'로, 프랑스 음악을 가장 잘 연주한 피아니스트에게 주어지는 마담 뤼세트 데스카브상을 수상했지요. 이 곡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얘기도 했고요.

임동혁 : 만일 잘 칠 수 있는 곡 하나를 꼽으라면 '라 발스'예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고요. 늘 색채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인데, 아무리 표현력이 뛰어나다 해도 색채가 없으면 음악이 죽어요. 왜 연기할 때 보면 슬픈 표정과 기쁜 표정이 다 똑같은 배우가 있잖아요. 보톡스를 너무 많이 맞은 걸 수도 있지만. '라 발스'는 다채로운 컬러 덕분에 내 장점을 잘 살릴 수 있어요.

 

 

* 박 : 긍정적인 성격인가요?

임 : 성격은 변해요. 아주 긍정적이었는데 변했어요. 부정적으로…. 2006년, 2007년 이때부터 변한 거 같아요.

 

박 : 그 얘기는 그때 하고요. 2003년으로 넘어가죠.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수상 거부가 국제적인 커리어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요?

임 : 아무래도 은근히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 분들도 많으니까…. 분명 플러스마이너스가 있었겠죠.

 

박 : 2003년으로 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나요?

임 : 엘리자베스에서 안 하고 다른 콩쿠르에서 했을 것 같아요. 뭐가 됐든 간에, 어디서든 한 번은 터졌을 거예요. 2003년에는 이 콩쿠르가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에요. 언제나 그랬어요. 이 콩쿠르가 최악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이 최악이고, 그 다음은 더 최악…. 마치 대통령 뽑는 거랑 같아요. 이 대통령 최악이다 하면 다음 대통령 더 최악이고.

 

 

* 박 : 요즘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보면 12명 결선주자 중 한국 피아니스트가 평균 세 명은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동혁씨가 롱 티보 나갔을 때 20명 본선 진출자 중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예선 통과 48명 중 한국인이 4명 밖에 없었죠. 한국인들이 강해졌다, 콩쿠르 환경이 변했다는 것은 언제부터 느꼈습니까?

임 : 2006년부터요. 쇼팽 콩쿠르와 차이콥스키 콩쿠르 사이 정도. 무엇보다 (김)선욱이가 등장하면서 확실하게 바뀌었죠. 한예종 파워가 느껴졌어요. 저는 한국 사람들이 언제나 피아노를 잘 쳐왔다고 생각해요. 워낙 요즘 애들이 잘 치기도 하지만, 한국에 잘 치는 피아니스트는 언제나 많았어요. 인식이 더 좋아지고, 그게 콩쿠르 결과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겠죠. 박종화 형, 손민수 형, 이용규 형… 엄청 잘 치는 피아니스트들이죠.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 했을 뿐이에요.

 

박 :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이후인 2003년 가을, 하노버로 옮겨서 아리 바르디와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오랫동안 레프 나우모프에게 배웠고요. 스물한 살, 하노버 생활은 어땠나요?

임 : 하노버요, 정말 따분했죠. 그때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단독주택에 살았어요. 사슴이 노니는 집이었는데, 사슴이랑 저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힘들게 연습했던 기억 뿐이에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는 대학 과정을 공부해서 수업 가면 애들이랑 수다도 떨고 했는데, 하노버에서는 전문연주자 과정을 밝아서 수업은 전혀 없고 레슨만 했어요. 레슨도 엄마가 차로 데려다 주고 데리러 오고 했고요. 사람이 미친 듯 그리워지는 산속 오두막집에서 사람 구경 못 하고, 가족 얼굴만 보고, 연습만 하는… 그런 시절이었어요.

 

박 : 하노버에 2006년까지 있었는데, 배운 건 뭔가요?

임 : 하노버 시절에 쇼팽 콩쿠르를 준비해서 나갔죠. 연습도 많이 하고 여기저기 마스터클래스도 다니고요. 지금 되돌아보면 쓸데없는 데 귀를 기울였구나, 에너지를 낭비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박 : 왜 쓸데없을 거라는…?

임 : 음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부자연스럽고, 덜 재능 있게 보이도록 만들었을 뿐이에요.

 

박 : 그럼 음악에 도움이 되는 시간은 언제였나요?

임 : 모스크바에서 나우모프에게 배웠을 때요. 제 음악가로서의 발전은 당연히 거기 있었어요.

 

 

* 박 : 얼른 2005년으로 가보죠! 쇼팽 콩쿠르에 출전해서 형 임동민씨와 함께 2위 없는 공동 3위를 수상했습니다. 동혁씨가 연주하는 쇼팽은 현대적인 세련됨이 좋더군요.

임 : 현대적이란 생각 안 해봤는데요.

 

박 : 현대적이라 함은, 그러니까 동혁씨 레퍼토리는 낭만과 후기낭만에 몰려 있는데, 이들 작품은 연주자의 즉흥적인 유연성이 없으면 해석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동혁씨는 즉흥성에 대한 탁월한 감성과 천부적인 직관력을 가져서, 뭘 해도 살아있는 것 같고, 즉흥적인 면에서 현대적으로 느껴진다는 얘기죠.

임 : 그걸 특히 좋아해요. 물론 무대 위에서 긴장이 풀려야 가능한 일이지만, 곡을 마음대로 내가 요리하고 있을 때, 그때 기분이 가장 좋긴 하죠.

 

박 : 그게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느껴져요.

임 :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데….

 

박 : 쇼팽 콩쿠르 라이브 음반을 듣고 무척 세련됐다고 생각했는데요.

임 : 그건 '너무' 세련됐어요! 제가 앞에서 말씀드렸죠. 여러 사람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고. 예전 녹음 들어보면 웬만해서는 '좀더 세련되고 정제된 연주를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드는데 쇼팽 콩쿠르 실황을 듣고 있으면 너무 많은 사람들의 눈치를 본 것 같아요. 이 사람에게도 플리즈~ 저 사람에게도 플리즈~ 하는 느낌이요. 결국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려다 죽도 밥도 안 됐구나, 라는 결론을 얻었죠. 사실 제가 추구하는 음악세계는 그런 연주와는 거리가 멀어요. 좀더 강렬하고 독특하고 개성 있게 치고 싶어요. 하지만 '개성 있게 쳐야지' 작심하고 작곡가가 의도하지 않은 것을 시도하는 연주는 정말 싫어요. 작곡가의 명확한 의도마저 지키지 않는 걸 개성이라고 얘기할 수 있나요. 그건 헛짓이지.

 

박 : 그래도 저는 그 실황 음반의 연주가 좋습니다. 세련되고 깔끔했다는 평가에도 변화가 없고요.

임 :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 거예요. 너무 많이 했죠. 죽어라 했죠. 그러니까 사람이 미치죠.

 

박 : 그때부터 피폐해진 건가요?

임 : 피폐요?! 아유 참…. 그냥 점점 내 안에 분노가 쌓여가는 걸 느껴요. 콩쿠르 끝나고 여러 일 겪을 때마다 억울함이 커져요. 웬만하면 화를 안 내는데 아주 작게라도 억울한 일이 생기면 화가 나요.

 

 

* 임 : (..중략..) 심리치료사 말이 안에 뭔가 억울한 걸로 가득 차 있고, 조금이라도 자극되면 그 안에서 연쇄폭발이 일어난대요.

박 : 요즘도 그런 상태인가요?

임 : 우울하죠. 혼잣말이 늘었어요.

 

박 : 앞서, 성격이 원래 긍정적이었는데 2006년 즈음에 변했다고 했잖아요. 그게 쇼팽 콩쿠르 때문인가요?

임 : 그 시기가 그러했지만 쇼팽 콩쿠르 자체도 그랬어요. 라파우 블레하츠는 워낙 잘 쳤고 1등 했어야 해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블레하츠 실력에 이의가 있다는 게 아니에요! 콩쿠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콩쿠르 나가기 전부터 그가 우승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가 무대에 나오면 피아노 치기 전에 기립박수가 터졌어요. 시상식에서 폴란드 대통령은 "드디어 우리의 30년 염원이 현실로 이뤄졌습니다"라고 말했죠(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이후 30년 만에 콩쿠르 주최국인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가 우승). 대통령이라면, 국내도 아닌 국제 콩쿠르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문제고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벌써 6년이 흘렀는데 굳이 말하자면, 그때 바르디 선생님이 심사위원이었어요. 물론 저를 채점할 수 없었지만요. 파이널에 진출했는데 선생님께 전화가 왔어요. 사람들에게 멍청한 얘기 한 적 있느냐고요. 그래서 멍청한 얘기는 했을 거지만 정확히 어떤 멍청한 얘기냐고 물었더니, 1등 못 하면 또 수상 거부할 거다라는 얘기 한 적 있느냐는 거예요. 그날 아침 식사하는 자리에서 어떤 심사위원이 그런 말을 했대요. 임동혁이 그러고 다닌다고. 아무튼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제가 그런 얘기를 하고 다닌 줄 안다더군요. 선생님이 혼비백산해서 저에게 전화할 정도면 큰 문제겠죠. 그런데 맹세코 그런 얘기 한 적 없어요. 아직까지는 제가 꼬이지 않았다고 자부해요. 꼬인 사람 싫어해요. 다만 점점 차가워지는 것 같아요. 쇼팽 콩쿠르 결선 때 조율 기구가 피아노 안에 들어있었는데, 전 누가 뭐래도 그게 우연이라고 생각해요. 우연이었어요. 사실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알았죠. 건반이 무거웠거든요(임동혁은 1악장을 끝낸 후 조율사를 불렀고, 수습 후 2악장을 이어갔다).

 

박 : 1악장 연주 도중 중지하지 그랬어요.

임 : 그럼 또 "쟤 논란 일으키려고 한다" 그럴까 봐요. 우연이라고 생각해요. 우연이 아니라면 정말 자살해야죠. 그 정도로 세상이 스포일드(엉망) 됐으면.

 

 

* 박 : 새해(2006년) 타종 행사에도 형과 함께 나왔죠.

임 : 그때 김연아도 같이 있었어요. 말 시켰다가 씹혔어요. 누구나 다 어두운 시절이 있는데, 그때 김연아 얼굴이 그랬어요. 우울한 얼굴. 나중에 알았는데 그때 은퇴를 고민했다네요.

 

박 : 뭐라고 말 시켰는데 씹혔나요?

임 : "고등학교 다니니~?"

 

박 : 반말하니까 씹죠!

임 : (씹힌 게) 아니다, 고개만 끄덕끄덕했어요. 근데 우울해 보였어요.

 

 

* 박 : (형 임동민과) 듀오로서 호흡을 맞출 생각은?

임 : 별로요. 아… 글쎄 뭐랄까… 그게 아…. 태진아랑 이루랑 듀오 공연하면 왠지 좀 그렇잖아요. 이벤트성으로 하는 거야 모를까. 너무 가까워도 함께 연주하기 싫은 법이에요. 같이 연주할 때는 파트너에 대한 떨림, 설렘도 중요한데, 만날 같이 밥 먹는 사람이랑은 동기유발이 안 돼요.

 

 

* 박 : 그리고 200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나가서 1위 없는 공동 4위를 했습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출전했나요?

임 : 원래 쇼팽 콩쿠르를 그렇게 생각했는데, 2006년에 너무 놀다 보니 동기부여가 필요했어요. 근데 제가 아는 확실한 방법이 콩쿠르 밖에 없어서, 그래서 나갔어요.

 

박 : 미시적으로 보면 콩쿠르가 강제적인 동기유발 장치가 될 수 있겠지만, 막연히 생각하는 '이상적인 음악가'라면 콩쿠르가 "가장 확실한 동기유발"이라고 말하지 않을 거예요.

임 : 길게 보면 그렇죠. 그렇지만 그때 당장은 그랬어요. 기자라고 늘 기사를 쓰고 있진 않잖아요. 마감 때 쓰죠. 피아니스트는 직업 아닌가요.

 

박 : 콩쿠르를 대체할 동기유발 장치는 마련했나요?

임 : (오랜 침묵)

그게… 늘 고민이에요. 콩쿠르가 음악가에게 언제까지나 궁극적인 목적은 될 수 없죠. 근본적으로 저 자신은 음악을 더 사랑해야 한다고 봐요.

(또 긴 침묵)

그러니까 뭐가 문제인가 하면, 롱 티보 콩쿠르 나가기 전만 해도 사람이 순진했거든요. 연습 열심히 하면 언젠가 유명해지고 말 그대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 막연한 믿음이면 충분했어요. 그런데 피아니스트는 흙 먹고 사는 거 아니잖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세속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가 열심히 하는 이유가 성공하지 않으려고? 그건 모순이잖아요. 열심히 해서 성공하고 유명해지고 싶은 거잖아요. 명예도 돈도 좀 맛을 보고 나니까 옛날처럼 막연한 동기부여가 잘 안 돼요. 그때는 실력이 전부일 거라 생각했는데, 실력이 늘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공평한 것도 아니고….

 

박 : 성공에는 운과 시기도 중요히 작용하죠. 타고난 운은 어느 정도라 생각하세요?

임 : 가진 것에 비하면 안 좋아요. 시기도 그렇고요. 근데 아무리 뛰어난 피아니스트라도 콩쿠르 출전해서 나만큼 안 떨어져본 사람은 없어요. 그건 자부심 가질 만해요. 심지어 쇼팽 콩쿠르 1위 없는 2위 했던 알렉세이 술타노프는 퀸 엘리자베스 1차에서 떨어지고, 차이콥스키는 2차에서 떨어졌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제게 큰 시련, 서프라이즈는 오지 않았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어요. 4위 할 바엔 아예 떨어지는 게 나을지도.

이젠 누가 "동혁아, 연습 좀 하지 그러냐"라고 하면 연습할 만한 연주회를 만들어달라는 생각부터 들어요. 순수한 동기부여는 힘들어요. 어느 정도 성공을 맛본 사람에겐 그런 시기가 오나 봐요. 그래서 결국 사라진 사람도 많아요. 술타노프는 죽었어요. 그도 억울함이 많이 쌓였던 건 아닐까요. 삼십 중만에 뇌졸증으로 죽었으니까.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독특하다는 이유로 알아주기 싫어 하고… 마치 콩쿠르에 나간 굴드처럼요. 부닌도 요즘 어디서 뭐 하는지… 그런 일이 저에게 오지 않도록 경계는 해야겠죠.

 

박 : 듣고 있으니 우울하네요.

임 : 우울한 질문만 하니까요.

 

 

* 박 : '골드베르크' 음반에 대한 만족도는?

임 : 정말 높아요. (지금까지 낸 앨범) 세 개 중 만족도가 제일 높아요. 특히 샤콘(바흐-부조니)이 좋아요. '골드베르크'는 호불호가 갈리는 연주라고 생각해요. 아까 얘기한 세련됨이 여기엔 정말 있어요. 군더더기 없는 연주를 했고… 딱딱하게 배운 대로 친 게 아니라 언제나 노래하듯 연주했어요. 낭만적으로, 사람 목소리에 가깝게 표현하려 노력했죠.

 

박 : 그리고 2009년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임 : 그때 말레이시아에서 연주하고 있었어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실감이 나요. 살면서 제일 잊히지 않을 큰 일이죠.

 

박 : 음악가들은 그런 모든 것, 즉 인생의 희로애락을 음악으로 승화시킨다라는 말 혹은 기대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임 :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음악이 더 깊어졌다…. 하… 그렇게 생각하고 들음 그렇게 들릴 거예요.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듣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으니까.

 

박 : 그럼 어떤 것이 음악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까요?

임 : 연습! 그리고 마음상태. 어머니 돌아가셨다고 갑자기 내가 성인군자가 돼서 음악이 깊어지고, 그러지는 않아요. 마음상태라는 건 천천히 미묘하게 변하는 거죠.

 

 

* 박 : (..중략..) 쇼팽ㆍ슈베르트ㆍ라벨ㆍ라흐마니노프ㆍ차이콥스키ㆍ프로코피예프… 낭만에서 후기낭만까지의 레퍼토리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나요?

임 : 작곡가를 늘려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모차르트ㆍ베토벤을 치지 않는 것도 아니에요. 다만 실제 결과물이야 어떻든 제가 잘 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잘 칠 수 있는 작품, 저만의 뭔가를 만들 수 있을 작품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곡이 있어요. 후자엔 아예 손을 안 대요. 브람스 협주곡 2번 치라면… 엄청나게 잘 칠 것 같지 않아요. 그 곡은 선욱이 치라고 하면 돼요. 무지하게 잘 칠 거니까.

 

박 : 본인의 어떤 면이 낭만ㆍ후기낭만 레퍼토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나요?

임 : 스테미나가 부족해서 테크닉이 아닌 '힘'을 필요로 하는 곡은 잘 안 쳐요. 대표적으로 리스트. 힘들어요. 또 과시하는 곡들도 좋아하지 않아요. '페트루슈카' '돈주앙의 회상' '왕벌의 비행'… 또 고도프스키ㆍ볼로도스 등의 트랜스크립션이나 패러프레이즈…. 자신도 없고 관심도 없어요. 어쩌다 앙코르로 칠 수 있겠지만 본 레퍼토리에는 넣지 않아요.

 

 

* 박 : 공연 전에 아주 많이 떠는 걸로 아는데, 왜죠?

임 : 별 이유가 있나요. 실수할까 봐 떨리죠.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떨려요.

 

박 : 청중에 대한 공포인가요?

임 : 그렇죠. 특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하는 건 힘들어요.

 

박 : 임동혁의 팬덤은?

임 : 옛날에 지나갔죠. 선욱이 나타나면서 다 지나갔어요.

 

 

* 박 : 지금까지의 답변은 꾸밈 없이 생각나는 대로 말씀한 것 같아요. 근데 꾸밈이나 거짓은 아니더라도 음악가로서 음악적인 부분을 좀 정리해서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나요? 예를 들어, 내가 이렇게 말하면 진지한 음악가로 보이겠다, 아니겠다…라는 고민이라든가. 그냥 생각나는대로 말하는 건, 보여지는 것을 넘어선 음악에 대한 자신감인가요? 

임 : 자신감하고는 거리가 멀어요. 그럼 연주 전에 왜 그렇게 떨겠어요. 저는 양면이 있어요. 예민하고 섬세하고, 주변의 많은 것에 좌지우지되어서 그날의 연주를 다 망칠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에요. 반면 마추예프나 랑랑 같은 연주자들은 새벽 3시에 깨워서 연주하라고 하면 피아노로 막 달려가서 칠 것 같잖아요. 전 그러지 못해요.

얘기를 이렇게 하는 이유는, 꾸밈이 있는 게 싫어요. 사실은 좀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솔직히 연주의 질을 떠나 듣는 사람의 귀에 따라, 듣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들리기도 하죠. "나 사실은 슬럼프 다 극복했고, 이제 예전처럼 하루 10시간씩 연습하고, 요즘 음악에 막 미쳐 살고, 음악이 이런 거구나… 음악의 세계를 이제야 알게 됐다"라고 말하면 좋겠죠? 인터뷰하기 딱 좋잖아요. 근데 사실이 아닌 걸 어떡해요. 그런 기사가 나가면 사람들은 공연 보고 나서 "아 정말 연습하는 것 같긴 하다. 연주가 확실히 좋아졌어"라고 말할지도 몰라요. 그런 경우 여러 번 봤어요. 요즘 슬럼프라더니 연습 안 한 것 같다고…. 안 하긴요! 그때만큼 연습 많이 한 적이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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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너무 많이 타이핑했네요 -_-

생선에서 이부분도 맛있어, 저부분도 맛있어 하다가 살을 다 발라먹은 수준.

아주 적은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글등록 버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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