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보고 왔어요. (스포 有)

2012.03.20 12:36

꼼데 조회 수:2763

 

 

 

 

개봉 전부터 엄청 기다리던 영화였는데.. (정식 개봉일도 아니라는 것도 모른채;) 그제 명동에서 보고 왔어요.

결론부터 적자면, 전 무척 좋았어요. 네 배우, 두 커플의 케미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아서일까;; 더 설레다 왔네요.

 

일단 이 영화를 선택한 건.. 디카cf(;;)에 나온 이제훈과 한가인이 나온다는게 제일 컸습니다.. 네..

이제훈은 정말 제가 무지 좋아하는 타입이거든요.. 어딘지 모르는 찌질함과 음험함이 너무 매력적이에요 ㅜㅜ

첫사랑-박해일-송새벽-현남친의 계보를 잇는 얼굴과 분위기랄까...어디 있다 이제 왔니 싶을정도로 ㅜㅜ 특히 디카cf에서는 완전 뻑갔..

한가인은... 순전히 <말죽거리 잔혹사>를 잊지 못해서요; 그때나 지금이나 첫사랑류영화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얼굴이 있을까 싶어요.

연기는 둘째치고,  정말 한가인이야말로 첫사랑의 느낌의 결정체라고 생각해요. 말죽거리를 15번 이상 본 영향도 있겠지만;

그녀가 결혼을 너무 일찍해버린 것도..........우흑흑.....

 

^^;; 그리고 "우린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카피도 정말 제 타입이었어요.

중학교 때 본 <클래식> 을 떠올리게 한달까요. 제게 <클래식>은 정말 최고였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이 영화에 기대한 건 딱 하나였어요.

좀 찌질돋아도 되니깐 밀당 같은 거 없이 여운이 좀 길게 남는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사랑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본부장님, 실장님, 출생의 비밀, 돈 봉투 내미는 엄마, 미혼모, 불치병 등등의 특수한 상황 없이도

얼마든지 두근두근한 사랑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걸 좀 보여줬으면 좋겠다...

 

^^ 다행히(?) 전 이 영화가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 난 지금까지도 무척 마음에 들어요.

 

십몇년만에 찾아온 첫사랑의 집을 지어주면서 추억을 곱씹는다는 그런 뒷세대(?) 내용도 좋았지만,

그것보다는 그 추억 속에서의 서연이(수지)와 승민(이제훈)의 아기자기한 감정선이 너무 좋았어요.

버스를 같이 타고 오면서 힐끗 바라보기..

같이 옥상에 서서 무심히 밖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나눠 듣기..

철길을 걸으며 손목 때리기,

이런 집에 살고 싶다며 낙서를 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기,

첫눈 오는 날 만나자면서 새끼 손가락 걸기...

 

하지만 제일 좋았던 건 늦은 밤, 골목에서 승민이가 서연이에 대한 부푼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서연아!" "서연아~" 하고 외치는 장면..

저도 그랬거든요. 누군가를 너무 좋아했을 때, 주체가 안됐어요. 외치고 싶었어요 누구든 들을 수 있게.. 혹은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그때 생각이 나서 그런가 그런 장면에서 눈물이 났어요 ^_ㅠ 허헛. 

이게 딱히 눈물 빼는 영화는 아니겠지~ 하는 마음에 마음의 준비를 안 해서 그런지;

그렇게 좀 생뚱 맞은 데서 눈물이 나더라구요.

 

물론 승민이가 서연이네서 골목으로 돌아와 울 땐 또 그것대로 슬펐지만요..

저도.. 그랬어요.. 그에게 내 마음이 전해질 수 없다, 혹은 전할 수 없다, 라는 걸 알았을 때

그게 얼마나 무섭고 슬펐는지..

그때 알았어요.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 라는 건 차라리 속 편한거라고.

개미년;이 될 까봐 그것조차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외로움이란...

그땐 정말 인생의 아주 큰 걸 포기한 기분이었어요.

 

이 영화가 좋았던 건... 어른이 된 후의 장면, 장면들이.. 첫사랑을 보내는 의식같아서 좋았어요.

어느 장면 하나 대충 씌여졌구나라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사람에 따라선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

보통의 사람들도 그런 수순을 밟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가령 마주앉아 술 마시기, 약혼녀를 소개하기.. 등등. 

물론 집을 지어주는 건 흔한 건 아니겠지요;; 그래서 그게 이 영화의 아이덴티티가 될 수 있는 듯해요. ^^;

 

그 중에서 절 가장 찡하게 했던 건...어릴 적 서로를 기억하게 만든 추억을 돌려주는 장면이었어요..

모두 한두번쯤은 첫사랑을 보내는(=봉인하는) 의식을 하잖아요. 자의든 타의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의식이 그 둘에겐 집 모형과 CDP를 교환하는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키스도 맞겠지만;;)

 

난 어땠는지, 가 문득 생각났어요. 전 그 애를 만났던 것 같아요, 다시 한번..

그리고 듀게에 글을 썼지요. 첫사랑을 만나고 왔어요 블라블라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처음으로 듀게에 알리는 일을, 첫사랑을 봉인하는 의식으로 삼아버리다니.

그래서 다른 커뮤니티는 다 탈퇴해도 듀게는 못 탈퇴하는지도요;; (엥;?)

 

영화가 끝나고 남자친구와 손을 잡고 나오는데

첫사랑 생각도 났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아 지금 남자친구가 참 좋다...라는 당연한 생각도 들더라구요. (뭐지?!)

연인이랑 보기 좋은 영화♡라고 강추를 날리진 못해도, 보러 간다고 해도 그닥 나쁘진 않을 영화라고 생각해요.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으니깐요.. 누구든 한번쯤은 찌질한 승민이고, 새침한 서연이었을테니깐요.

그냥 뭐 지금 옆 사람이 소중하다면 된 거 아니겠어요 하하하하하하

 

하지만 저처럼 분위기에 취해서, 오빤 첫사랑 보내는 의식으로 뭘 했어? 라고 굳이 묻진 마세요;;

듣고 나니 으응 그랬구나~ 하고 웃었지만 자고 나니 짜증이.........^^ 왜 쿨한 척 했을까 흑흑....

기차 안에서 사진을 버렸대요, 얼굴 기억 안 나게... 쓰고 나니 더 짜증이....^^...

내 사진도 버리라고 할 수도 없고...쭝얼쭝얼....

그래도 걘 20대의 첫사랑이고, 내 인생의 첫사랑은 너야! 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모습은 좀 귀여웠어요 *_*

 

암튼 클래식, 이프온리, 센스앤센서빌리티류의 영화 좋아하신다면

건축학개론도 무난히, 혹은 아주 맘에 드실거에요.

전 아직도 여운이 남아있는걸요..

 

생각난 김에 클래식이 보고 싶네요-

지금 봐도 좋을거에요,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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