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쯤 전부터 이 게시판을 눈팅해왔고, 가끔씩 댓글도 달곤 했지만 이 곳의 성격을 제가 너무 몰랐었지 싶네요.

 

'잠시만익명할게요'(이하 잠시익명)님이 저를 겨냥하고 쓰신 글을 좀 전에 봤어요.

간단하게 댓글로 몇 마디 남길까 하다가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새 글로 씁니다.

 

제가 쓴 댓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꽤 흥분했더군요. 저와 다른 생각이라고 해서 흥분할 필요는 없었는데, 팀킬로 느껴지는

최근의 게시판 분위기가 많이 싫었었나 봅니다.

어쨌든 제가 시종 얘기하고 싶었던 요지는

'세상 그렇게 쉽게, 빨리 안 변한더라. 최선이라고 믿는 그 지향점만 잃지 않는다면

조금씩, 천천히 가도 된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차악이든, 차선이든 최악은 일단 피하고 보는게 좋지 않겠나.'

였습니다.

만약 제가 인문학적 소양이 높은 교양인이었다면 제 주장에 대한 논거로 변화와 개혁의 역사적 사실들을 나열했겠죠.

멀리는 프랑스혁명, 볼세비키 혁명, 가까이는 87년 6월 항쟁 등을 말입니다.

워낙 인문학적 소양이 높은 분들이 많은 곳이라 깊이가 없이 그런 사례들을 들기 싫었습니다. 아니 자신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꺼낸 사례가 전교조입니다.

 

1989년 5월인가 아무튼 1학기 중반에 전교조는 서울 어디에서 최초의 집회를 갖고 세상에 첫 발을 내딛었죠.(순전히 기억에 의존한 거라

디테일은 조금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는 소위 지방의 명문고(그래봐야 비평준화 지역에서 커트라인 가장 높은 학교라는 의미 말고는 없습니다.)였고, 유난히

보수적인 분위기였습니다. 학교에서 활동을 허용한 동아리가 딱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공교롭게도 그 학교에서 전교조 가입 교사는 세 분이셨는데, 저희 담임, 제가 속한 동아리(그 유일하다는 문학 동아리)의 지도 교사이자

시인이셨던 분, 그리고 저희 국사 선생이셨습니다.

이미 85학번, 88학번의 PD계열에서 나름 '꽃병' 좀 던지던 두 형 밑에서 기초 수준의 '의식화(아오, 이 단어 지금 들으니까 진짜 웃기네요.ㅋㅋㅋ)'는

되어 있던 상태의 저는 당연하다는듯 이런 저런 활동을 했었죠.

금방 세상이 바뀔 것 같았습니다.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함께 토론하는 수업을 하고, 머리를 길러도 되고, 약간 불손한 태도로

말대꾸를 했다고 선생한테 고막이 터지도록 싸다구를 안 맞아도 되는 날이 곧 올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관심이 없었어요. 심지어 동문 대학생 선배들이 학교로 들어와서 시위를 할 때 그 무리에 합세한 재학생이 불과

열댓명 정도였으니까요. 그 연대 시위를 조직하는데 나름의 임무를 했던 저는 기대가 컸었거든요.

본관 앞 잔디밭에 스크럼 끼고 주저앉아서 구호 몇 번 외치던 열댓명의 재학생들은 곧 학생주임(저희 학교는 지도과장이라고 불었었습니다.)한테

싸다구 몇 대 왕복으로 순식간에 진압되었죠.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린 집회 덕분에 꽤 좌절한 저는 그 동아리 지도 선생님께 좀 투덜댔습니다. 왜 세상이 이 따위인지 모르겠다고 말이죠.

그 때 그 선생님께서는 제가 댓글로도 남겼던 말씀을 하시더군요.

" 이 싸움은 10년 뒤를 보고 시작했다."

당장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했던 저는 과연 10년 후가 올까, 라는 회의가 생길 정도로 실망이 컸습니다.

 

87년 6월, 우리는 세상이 확 바뀔 거라고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해 겨울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죠. 그렇다고 87년의 투쟁이 의미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88년 총선에서 노무현이 국회의원이 되고, 청문회를 통해서 스타가 되었고, 2002년에는 대통령에 당선이 되죠.

최소한 다른 의견을 말한다고 해서 고소를 당하거나 감시를 당하지는 않는 세상을 우리는 살았었습니다.

 

민주통합당, 특히 구 민주당 쪽 인사들이 진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김대중 역시 본인의 사상적 좌표를 중도우파라 얘기했었죠.

어찌된 게 이 나라는 진보와 보수(혹은 수구)를 가르는 기준이 상식의 유무입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상식,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상식, 부패와 비리와 거짓말은

단죄되어야 한다는 상식, 북쪽의 정권이 또라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전쟁은 피해야 한다는 상식.......

그런 의미에서 나꼼수와 민주당이 진보연할 수 있는 거고, 진보로 통용되는 거겠죠.

노무현 정권 시절에 열린우리당이 당력을 가장 집중시켰던 건 아시다시피 국가보안법과 사학법, 노동관계법이었습니다.

FTA와 강정마을을 거론하며 그 놈이 그 놈이다, 라는 논리에 제가 드리고 싶은 대답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나마 상식적인 후보 중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에게 투표를 해 왔습니다. 물론 정당은 제 지향점과 가장 가까운 데에

찍은 거고요.

 

김용민이 당선되어야 한다, 는 논리는 단순합니다. 그가 과거에 무슨 말을 어떻게 했건 지금 그가 속한 정당이 그나마 새대가리보다는 나은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설마 국회의원 김용민이 새대가리의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겠습니까?

물론 김용민의 부정적 이미지가 전체 판도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는 다른 분들의 논리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다만 그 논리는 추론이며, 김용민의 사퇴는 확실한 마이너스라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그런 분들과 제가 충돌하는 거죠.

 

어제 저는 댓글을 통해 단 한 번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고 있기 때문에 내가 더 성숙하다, 는 논지로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보다 나은 세상을 지향하는 이유가 제 개인의 이익보다는 제 딸(과 그 아이의 세대들, 즉 우리 후손들)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죠.

이제는 나보다는 내 후손들을 생각할 만큼 제가 나이가 먹었다는 거죠. 사실 이건 슬픈 겁니다. 내가 지향하는 세상으로 바꾼다고 해도

그걸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슬픈 자각입니다. 또한 이건 아이가 없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지 싶습니다.

이게 왜 비혼자들을 깔아뭉개려는 의도로 읽힌 건지 사실 어리둥절할 지경입니다.

 

제가 나이를 들먹인 건 분명 하지 말아야 할 짓이란 걸 인정합니다. 댓글에서도 인정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굳이 자폭을 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점진적인 변화, 최선이 안 되면 차선, 그마저도 안 되면 차악의 선택, 최악과 차선(잠시익명님과 생각을 같이 하시는 분들에게는 노무현 정권이

차악이겠지만)의 그 어마어마한 차이에 대한 완전한 무시가 안타까웠습니다.

개혁이나 변혁이 아니라 혁명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던 제 예전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시종 저는 잠시익명님과 제 지향점이 같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려 했습니다만, 방법론의 차이일 뿐이라는 점을 말씀드리려 했습니다만, 제가

초반에 좀 흥분하는 바람에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 같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물론 지금 이 말 조차도 꼰대스럽게 들릴 거란 걸 압니다. 만약 그렇다면 제가 꼰대가 맞겠죠. 뭐.^^;;;;

나이로 깔아뭉갰다기보다는 나이 먹은 사람의 관점에서는 이렇게도 볼 수 있다, 정도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제가 한 말이 어버이연합분들의 패악질과 등치시킬 수 있을 만큼 무리수였나, 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몇몇 분들, 좀 너무

나가셨습니다.

어찌되었든 사회 변혁을 위해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아주 작은 행동을 하며 살아온 제 경험치와 그 분들의 경험치는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오직 나이를 들먹였다는 꼬투리만 가지고 비난을 하시는 건 비겁하지 싶습니다.

 

 

경험치와 성숙도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정 부분 영향은 분명이 있습니다.  그게 악영향이든 긍정적 영향이든 말입니다.

그걸 맹신하는 건 진짜 권위주의고 멍청한 짓이지만,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그리 현명한 처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도로 생각할 줄 아는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족으로 경험담 하나 더 덧붙입니다.

제 아버지는 1950년도에, 13살의 나이로 전쟁 고아가 되셨습니다. 여운형 선생의 제자셨던 제 할아버지는 이미 1949년에 좌익 활동 혐의로

사형을 당하셨고, 할머니는 인민군 후퇴할 때 함께 월북을 하셨습니다. 그 때 저희 할머니와 큰할아버지 포함 다섯 분이 월북을 하셨고,

남쪽에 남은 큰할머니와 아버지 형제, 아버지의 사촌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사셨습니다.

제가 이런 저희 가족사를 알게 된 것도 90년대 들어와서였습니다.

월북자 가족은 83년 이산가족찾기 방송에 나가지도 못 했었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13살 소년이 환갑이 넘고, 청승과부가 아흔이 넘어서야 드디어 금강산에서 해후를 하게 됩니다. 당시 상봉단 중에서도 저희

큰할머니가 최연장자셨고, 가장 서글프게 우신 탓인지 9시 뉴스 톱 뉴스로 나오시더군요.

이게 보수라고, 수구라고 싸잡아 욕 먹는 민주당 정권에서의 일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3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79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293
126071 [왓챠바낭] 전 이런 거 딱 싫어하는데요. '헌터 헌터' 잡담입니다 [4] new 로이배티 2024.04.25 112
126070 에피소드 #86 [2] new Lunagazer 2024.04.25 33
126069 프레임드 #776 [2] new Lunagazer 2024.04.25 31
126068 ‘미친년’ vs ‘개저씨들‘ new soboo 2024.04.25 356
126067 Shohei Ohtani 'Grateful' for Dodgers for Showing Support Amid Ippei Mizuhara Probe new daviddain 2024.04.25 26
126066 오아시스 Be Here Now를 듣다가 new catgotmy 2024.04.25 58
126065 하이에나같은 인터넷의 익명성을 생각해본다 [1] update 상수 2024.04.25 194
126064 민희진 사태, 창조성의 자본주의적 환산 [7] update Sonny 2024.04.25 587
126063 3일째 먹고 있는 늦은 아침 daviddain 2024.04.25 87
126062 치어리더 이주은 catgotmy 2024.04.25 155
126061 범죄도시4...망쳐버린 김치찌개(스포일러) 여은성 2024.04.25 288
126060 다코타 패닝 더 위처스,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악마와의 토크쇼 예고편 [3] update 상수 2024.04.25 156
126059 요즘 듣는 걸그룹 노래 둘 상수 2024.04.24 146
126058 범도4 불호 후기 유스포 라인하르트012 2024.04.24 193
126057 오펜하이머 (2023) catgotmy 2024.04.24 81
126056 프레임드 #775 [2] Lunagazer 2024.04.24 29
126055 커피를 열흘 정도 먹어본 결과 [1] catgotmy 2024.04.24 174
126054 [넷플릭스바낭] 몸이 배배 꼬이는 3시간 30분. '베이비 레인디어' 잡담입니다 [6] 로이배티 2024.04.24 318
126053 프렝키 더 용 오퍼를 받을 바르셀로나 daviddain 2024.04.24 40
126052 넷플릭스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감상 [6] 영화처럼 2024.04.24 21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