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함박스테이크

2012.05.17 21:07

자본주의의돼지 조회 수:3642

22살때쯤이였어요.


아르바이트로 편지교정 및 답장일을 했죠.


이게 요즘은 워낙에 디지털로다가 쓰고하다보니깐 손 편지 쓸 일이 없고,


그러다보니 쓸 상대도 답장을 받을 상대도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일이죠.


실질적으로는 교정보다는 답장을 주는거였어요.


대부분이 저보다 글을 다 잘 쓰는 사람들이다보니,


그냥 저냥 대충 이 부분 고치면 좋겠다 적당히 첨가하면서 답장을 주는거죠.


몇몇 회원분들과는 친해져서 거의 펜팔하는 분위기도 났어요.





그렇게 6개월 정도 일 하다가 군대를 가게 되서,


제가 담당하던 회원분들에게 이제 일 그만둔다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한 회원분께서 가기전에 집에와서 함박스테이크를 먹고 가라고 하더라고요.


앞서 말한대로 서로에 대해서 어느정도의 정보를 편지를 통해서 주고 받아서 제가 함박스테이크를 좋아하는걸 그분은 아시거든요.


그분은 당시 32살의 주부님이였어요. 아이는 없고, 남편은 모 대기업에서 일하는.





기본적으로 회원님들과 편지이외의 접촉은 금지였어요.


이런저런 사건들이 터질수가 있으니까요.


어떻게 할까 하다가 가보기로 했어요.


나이대비 좋은 아파트에 사시더군요.


스웨터를 입고 있으신데, 굉장히 기품있어 보였어요.(뭐 스웨터라는게 보통 그런 아이템이지만요. 교수들이 잘 착용하고.)





함박스테이크는 맛있었어요.


자신있게 부르실만한 하더군요.


적당히 바삭바삭하게 잘 구워진 껍질 안쪽에는 육즙이 듬뿍 고여있고,


향신료도 알맞게 썼고요.  소스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좋더군요.




밥을 다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그간 편지로 주고 받았던 이야기들을 다시 되새김질 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렇게 수다를 떨고나니, 5시쯤 됐더라고요.


저는 일어나면서,


"남편분 오시겠네요. 저녁 준비해야하시니 전 일어날게요." 했죠.


그러자 그 분은


"남편은 오늘 야근한데요." 라고 말하더군요.





"역시 대기업이라서 바쁜신가봐요."


"네. 늘 늦어요. 편지에도 썼지만 우리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아요."


여기서 말문이 턱 막히면서... 뭐라 말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한동안 적막이 흐르고...


다행히도 그 다음에...


"오랫동안 편지를 써줘서 고마워요." 라고 해서,


저도 "함박스테이크 정말 맛있었습니다." 하고 나왔네요.

















































는 





에 있는 단편 "버트 바카락을 좋아하세요?"를


자돼화, 한국화, 현대화 시켰습니다.






'100퍼센트 여자'보다 이 단편이 더 인상 깊더군요.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은 맨 마지막 네 줄.


전혀 각색없는 본문 그대로.



[나는 그때 그녀와 같이 잤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것이 이 글의 테마다.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나이를 먹어도 알 수 없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이 부분 읽고 완전히 빵 터졌네요.ㅎㅎㅎ




하루키 책은...


달리기 관련된 수필집 밖에 안 읽었는데...


이 단편집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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