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입장에서 본 서해교전

2012.05.17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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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출신 시인인 장진성씨가 회고한 내용입니다.


제2연평해전은 적의 선제타격으로 우리 피해가 발생하고 특히 전사자가 발생해서 승전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북한측 입장에서 묘사한 증언도 한 번 읽어볼 가치는 있다고 보입니다. 비극적인 사건이긴 합니다만

우리가 떠올리지 못하는 인상으로 우리를 보는 타자의 시선은 뭔가 생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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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탈북자 2만명 중 병원에 입원 치료중이었던 

북한 서해교전 참전자들을 직접 만나 본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고 생각된다.


2002년 교전 보도가 나온 후 직장에 출근했는데 당비서가 나 외 3명을 급히 찾았다.


그는 이제 곧 조선인민군11호병원으로 가야 한다면서 서약서를 내밀었다. 

취재대상들의 발언을 외부로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수동에 위치한 조선인민군11호병원에 도착하니 

외과병동 중 건물 하나를 해군사령부 8전대 부상병들을 위한 특별병동으로 봉쇄하고 

무력부보위사령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군의 승리만을 선전하는 북한에서 

처참한 상처를 가진 부상병들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단 교전 참전자들을 회의실에 모두 모이게 했다. 

12명 정도였는데 18세~19세 군인들이 그 중 5명이나 되었다. 

함께 갔던 국장이 통전부에서 나왔고 교전 경험을 위에 보고하기 위해서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웅담을 듣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니 교전소감을 솔직하게 말하라고 덧붙였다.


이 때 문이 열리며 온 몸에 붕대를 감은 한 해병이 휠체어에 실려 왔다. 

그러자 그를 가리키며 모두가 합창하듯 말했다.


"저 애는 온 몸에 맞은 파편이 230개예요"


"???"


경악하는 우리에게 군의관이 렌트겐 필름을 한 장 보여줬다. 

새까만 점들이 가득했다. 교전 참전자들 중 군관이 말했다.


"파열탄에 맞았습니다. 위에서 터지는데 파편 수백 개가 우박 떨어지듯 합니다."


가장 나이 어린 해병이 끼어들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됩니까?"


"그래 그래 그냥 너희들 생각을 편하게 말하면 돼"


"사실 다 무섭지 않은데 그 파열탄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했다.


"놈들은 전투준비! 하면 모두 갑판 밑으로 사라지는데 

우리는 전투준비! 하면 모두 갑판 위로 올라가요, 

그런 상황에서 저 파열탄만 터지면 전투능력이 우선 1차적으로 상실돼요."


"영화에서 보면 전투 중 이름들을 서로 부르는데 당해보니깐 그건 완전한 거짓말이예요. 

일단 포 소리만 한번 울리면 귀에서 쨍-하는 울림밖에 더 없어요, 

그래서 우린 서로 찾을 때 포탄깍지로 철갑모를 때리며 소통했어요"


자기를 상사로 소개한 해병이 말했다.


"한 가지 제기해도 좋습니까? 놈들 배는 부럽지 않은데 제일 부러운 게 방탄조끼입니다. 

방탄조끼는 비싸니깐 우리에게 목화솜옷이라도 주면 파편이 덜 들어가겠는데…"


내 옆에 서있던 국장은 그의 말을 특별히 줄까지 쳐가며 메모했다.

전투 전반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는 국장의 말에 군관이 입을 열었다.


"그 날 함장이 평양에 갔다 온 날이어서 우리는 느슨하게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장이 그날따라 배에 기름을 가득 채우라고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물었다.


"평일엔 기름을 가득 안 채웁니까?"


"사실 채울 기름이 없습니다. 그나마 기름이 정상적으로 보장되는 함선이란 것이 구축함 뿐입니다. 

현재 우리 해군에 소련 50년대 구축함이 두 대 있는데 한 대는 동해에, 한 대는 서해에 있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없어서 순찰을 못하고 작전지역에 진입하면 정박한 채 레이더감시만 하다 돌아오곤 합니다. 

우리 경비함 같은 경우엔 기름공급이 더 부족한 형편입니다. 

순찰이 아니라 한번 북방한계선 근처에 나갔다 오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항에 도착하면 남은 기름을 군관들이 몰래 빼서 난방용으로 집에 가져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연유부에서 절반씩밖에 안 준지 오래됐습니다."


상사해병이 불만조로 보탰다.


"우린 도색감도 받아본지 오래됐습니다."


"그건 뭔데요?"


"배는 물위에 항상 떠 있기 때문에 선체에 골뱅이와 같은 해류들이 가득 달라붙습니다. 

그럼 속도가 느려지죠, 도색감을 정기적으로 발라주어야 

해류방지도 되고 속도에도 제한이 없겠는데 그것도 없다니깐요."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군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날 함장이 기름뿐 아니라 포탄과 탄약들도 만장탄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배 앞에 붙인 레일도 확인하더니 다시 더 단단하게 용접하라고 하였습니다."


"배 앞에 웬 레일이요?"


"전번 1차 때 충돌싸움부터 시작했었는데 

그 애들 철갑이 굉장히 단단해서 우리 배가 찢어지더라구요, 

그래서 고심하던 함장이 창안한 겁니다. 레일을 붙이면 승산 있을거라면서요."


"그럼 그 철의 강도문제는 전번 1차 때 제기 안했었습니까?"


"했죠, 장군님께도 보고돼서 장군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철갑으로 무장해주라고 지시하여 

연형묵 자강도당책임비서를 비롯해서 자강도 군수공장 기술자들이 몇 번이나 우리 배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해결 안됐는가요?"


"장갑을 두텁게 하면 함선이 기울기 때문에 대신 탱크포를 내려야 하는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 주 : 함포 위력이 떨어져서 T계열 탱크 포탑을 떼어다 올려놓은 게 북한 고속정)

사실 우리 함선의 위력은 탱크포입니다. 아무리 파도가 심해도 정조준을 유지할 수 있고 

또 포탄의 위력이 쎄서 놈들 함선에 구멍이 펑펑 납니다. 그런데 그런 위력을 없애면 

]속도도 상대적으로 느린데 싸움이 됩니까? 그래서 고심 끝에 철의 강도 대신 

]화력을 더 보강하는 쪽으로 채택됐습니다. 놈들 자동포는 분당 3000발씩 나오는데 

우리는 600발 정도거든요, 그래서 1차교전 후 소련 4구경 발칸포를 올려놨습니다. 

그거면 우리도 분당 1500발을 쏠 수 있거든요."


이 때 나이 어린 해병이 재잘거렸다.

(*주 : 우리나라의 상륙전대 해병 개념이 아닌 해군 수병을 말합니다.)


"그것도요, 우린 다 갑판 위로 올라가서 쏘는데 

그 놈들은 어디서 쏘는지 보이지도 않아요. 그 놈들 함선 무섭게 발전했어요"


"조용 못해 이 xx야!"


상사가 침대에 있던 베개를 집어던졌다.


"야, 너도 찍소리 마!"


군관이 상사의 과격한 행동에 이렇게 일침을 가하고나서 다시 이어갔다.


"기름과 탄약들을 가득 채우고 쉬고 있는데 이상하게 배를 꼼꼼히 점검하던 함장이 

이번엔 격노해서 기관장을 소리치며 불렀습니다. 보

조조타가 고장났는데 당장 수리하라면서요, 

보조조타란 기본조타가 고장 났을 때 수동적으로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장치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만약 함장이 그 보조조타 수리를 지시하지 않았으면 우린 살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왜요? 그 보조조타 덕이란 게 무엇인데?"


"놈들 폭탄에 기관실이 맞았는데 기본조차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함선은 한동안 한 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했습니다.

아마 놈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막내 해병은 이번에도 못 참고 끼어들었다.


"그때 봤어요,? 놈들이 갑판에 나와 쭉 서서 구경하더라구, 아 그 때 쏴야 하는건데...."


그 말에 옆에서 히히거렸지만 나이 든 해병들만은 침통한 얼굴이었다.


"전투상황을 좀 설명해주세요."


"우린 놈들 배에 접근해서 충돌을 시도했어요. 

함장이 지시해서 발포도 우리가 먼저 시작했구요, 

근데 놈들 첫 포탄에 함장이 먼저 죽었어요, 

우리 함선 규정엔 싸움을 시작할 땐 함보위지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함보위지도원이 정치지도원을 겸하거든요, 

그래서 함장 대신 그 때부터 보위지도원이 지휘했습니다. 

그날은 우리가 작심하고 나갔으니 놈들 배가 손실이 컸습니다. 

작전이 더 길어지면 화력우세나 함선우세에서 우리가 밀리기 때문에 

손실은 불가피했습니다. 마침 전대사령부와 실시간으로 통신하던 조타수가 달려와 

전대의 철수명령을 전했고 우린 보조조타로 조종하며 돌아왔습니다. 

이상한 것은 함장 딸이 세 명이거든요, 

근데 죽은 함장 몸에서 세 개의 파편이 나왔습니다."


국장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이제 다시 싸우라면 싸울 용기가 있어? 어때? 할 수 있지?"


해병들은 군인식으로 일제히 “예!”하고 합창했다.

그러나 그 날 해병들의 용기에서 나는 다른 점도 엿볼 수 있었다.

나이 어린 해병들은 영웅심리에 들떠 있었지만 

나이 든 해병들일수록 한국군의 선진화에 당황하고 겁을 먹은 눈치였다.

우리가 나올 때 군관은 따라 나오면서까지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정말 방탄조끼는 아니라도 좋으니 목화솜옷을 좀 해결해주십시오, 

그것만 입어도 애들 저렇게까지 심하게 부상당하지 않습니다."


(*주 : 이후 목화솜 상의가 보급되었다고 하는 정보도 있습니다.)


뭐랄까 읽다가 꼭 국군이 미군 보듯 하는 느낌이 있어서 좀 므엉하기도 하고, 

저 동네도 사람 느끼는 건 다 똑같구나 싶기도 하고, 

정치체제가 바뀌기 전에는 저 인간들하고는 절대 친구 먹을 수 없겠다 싶고,

한편으로는 체제가 해결되고 나면 저 사람들끼리 또 만나서 우린 그때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네 그렇게 얘기들 할 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느껴집니다.

(노르망디에서 싸운 연합군과 독일군 출신들이 만나면 서로 저런다고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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