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인을 위한 한줄 개요: 학예회 수준의 대사만 아니었어도 정말 무서운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그런 아쉬움이 남는 영화.


- 방금 전에 제가 학예회 수준의 대사라고 했는데, 네. 대사에 관한 한 피에타는 절대로 일말의 기대를 하시면 안 됩니다. 밑바닥 사람들은 고사하고 ㅂㄱㅎ 같은 성골 귀족들조차도 안 쓸 법한 무미건조한 어조부터 시작해서, 이 땅에 사는 그 어느 공업 노동자도 안 쓸 법한 종류의 단어들로 조합한 문장들, 그리고 그렇게 가뜩이나 생명력 없을 부분만 넘치는 대사들이 남발까지 되는 데다가 연기자들의 대사 통제까지 안 되고 있으니.


-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상당히 강렬해질 수도 있었던 몇몇 장면들의 힘이 좀 약해졌습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두 부분은 조민수가 이정진의 "엄마"인 것을 밝히고 난 뒤에 그가 찾아간 두 채무자들 부분입니다. 먼저 나온 예비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손 #신이 되어야 한다는 넘이 치는 대사가 초등학생이 만화 대사 읊는 수준이고(손 짤려가며 애를 지켜주고 싶다는 넘이 대사를 그따위로 쳐? -_-), 나중에 나온 노인분 부분은 잘만 하면 클라이맥스의 장면과는 다른 의미의 강렬한 감정을 풀 수 있을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이정진이 치시는 대사라는 게 "죽으면 보험 처리가 복잡해집니다." 이런 거니.... 조금 전까지 채무자 엄마기 있든 말든 사람 귀싸대기 후리며 쌍욕하던 넘이 다나까체를 갑자기 써대니 뭔가 골때리지 않습니까? ㅜㅜ


-이것 외에도 수많은 대사가 들어가는 장면 장면마다 위태위태한 부분들이 참 많습니다. 심지어 관객의 감정을 북받치게 만드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수도관 터진 것처럼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대사 처리하는 수준 때문에 제 머리 한 구석에선 '이러다 미친듯이 깨는 대사가 나와서 이거 망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쉴새없이 돌아갔죠. 모든 스포일러를 다 보고 갔음에도 영화에 감정을 이빠이 이입했던, 그래서 클라이맥스 부분에선 그냥 울면서 봤던 제가 이런 판이니 그보다 이입을 덜 했던 분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사실 대사가 그냥 안습한 걸로 끝났다면 차라리 안 아쉬웠겠죠. 하지만 이 영화의 나머지 부분은 그넘의 대사만 아니었어도, 아니 그 대사들에도 불구하고  좋은 부분들뿐입니다. 주인공이라 대사 문제로 인한 어그로를 홀랑 먹을 수밖에 없음에도 이정진이 몸으로 보이는 연기는 상당한 편이고, '엄마' 조민수는 초등학교 국어책 대사로도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장면들은 잔인하면서도 아름답고요. 제가 그냥 울면서 봤던 클라이막스 부분 말고도, 많은 지점에서 감정선을 무자비하게 두드리고요. 


-다른 분들이 대사 이외에 편집 부분도 일부 지적을 하셨는데, 확실히 일부 지점은 불안하게 깨지는 편집들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클로즈업, 일부 장면에서 보여지는 '랙' 등등. 하지만 이러한 부분 때문에 만들어지는 묘한 불균질함도 어느 순간 그냥 매력적이 되더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설명할 만한 지점이 아니니, 그저 그렇게 느꼈다는 것만 전달하겠습니다.


-아참, 초반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닭 내장이 데굴데굴 구르는 장면도, 마누라만 잘 둔(?) 막장 채무자 넘의 손이 작살나는 장면도 아닌, 노모를 모시던 채무자가 이정진에게 싸대기를 후려맞는 장면이었습니다. 영리하게도 싸대기 소리와 함께 실제로 싸대기를 맞는 것처럼 카메라가 흔들리는데 정말 제대로 그 채무자가 느꼈을 오만 감정이 그대로 들어오더군요.


-아무튼 전반적으로 그넘의 대사 대사 대사 때문에 엄청 위태위태해질 뻔했지만, 나머지 부분이 워낙에 좋아서 전반적으로 대만족했습니다. Q님이 이따금 정말 좋은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링 위에서 고수한테 질펀하게 작살나고 완패를 인정하는 느낌"이라고 하시는데, 제게는 피에타가 그런 영화였습니다. 이런 영화를 본 게 대체 얼마만인지.



-ps. 대학로 CGV에서 본지라 커플 관객이 넘쳐났는데, 사실 그것 때문에 몇몇 분들이 게시판에서 언급하셨던 그런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햇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런 반응은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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