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어릴 적 꿈은 세계일주였습니다.

아, 과거형은 아니에요. 현재도 그렇거든요.

중 2때는 다소 오그라드는 감성으로 사하라 사막을 혼자 걷다가 그대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20대 초반에는 워킹홀리데이로 돈을 모은 뒤 태국을 베이스 캠프 삼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조금 구체적인 계획을 짜 보기도 했어요.

(물론 이 모든 계획들에는 돌아오고 난 뒤 어떻게 할 것인지는 포함이 되지 않았지요.)

여러 생각을 하면서도 30살이 되기 전에 세계일주를 꼭 가보겠다는 마음은 항상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초에 얼결에 집에서 나와 자취를 하게 되었고, 그야말로 얼결에 고양이 아롱이를 반려동물로 들이게 되었네요.

그리고 저는 세계일주 계획을 최소 40살 이후로 미뤘습니다. 고양이의 수명을 최소 10~15살로 가정하구요. 실질적으로 장기적인 여행은 포기하기로 결심했지요.

그런데 일년이 훨씬 지난 지금, 저는 비만 고양이와 함께 본가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털 날림 등으로 약간 불만을 지니고 있던 가족들도 9개월이 지난 지금은 모두 고양이 아롱이를 사랑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 30살 이전의 세계일주를 꿈 꾸고 있습니다.

내가 장기간 자리를 비워도 고양이를 사랑해 줄 가족들이 생겼으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민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고양이를 붙잡고 '아롱아, 언니가 오늘부터 1년정도 밖에 나가서 안 들어올거야. 사냥 가서 잡아먹히는 거 아니니까 집 잘지키고, 아프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기념간식 사올게'하고

말해도 이 녀석이 알아들을리가 없잖아요.


제가 하루 정도를 다른 곳에 있다가 돌아온 뒤 가족들의 제보를 들으면 이 고양이가 풀 죽어서 잠만 자다가 제 발소리를 듣고 뛰쳐나왔더라, 이런 말이 돌기 때문에 더욱 걸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양이가 저를 잊어버릴 까봐 두렵기도 하구요. 제 고양이긴 하지만 얘는 좀 바보라서....


머리를 잘 못 쓰는게 이 고양이의 매력이긴 하지만 여러모로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저는 떠나겠지요.


왠지 그럴 것 같습니다.


다들 평안한 밤 보내세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2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78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283
126070 에피소드 #86 new Lunagazer 2024.04.25 7
126069 프레임드 #776 [1] new Lunagazer 2024.04.25 9
126068 ‘미친년’ vs ‘개저씨들‘ new soboo 2024.04.25 102
126067 Shohei Ohtani 'Grateful' for Dodgers for Showing Support Amid Ippei Mizuhara Probe new daviddain 2024.04.25 11
126066 오아시스 Be Here Now를 듣다가 new catgotmy 2024.04.25 40
126065 하이에나같은 인터넷의 익명성을 생각해본다 [1] new 상수 2024.04.25 137
126064 민희진 사태, 창조성의 자본주의적 환산 [5] new Sonny 2024.04.25 310
126063 3일째 먹고 있는 늦은 아침 new daviddain 2024.04.25 65
126062 치어리더 이주은 new catgotmy 2024.04.25 121
126061 범죄도시4...망쳐버린 김치찌개(스포일러) 여은성 2024.04.25 256
126060 다코타 패닝 더 위처스,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악마와의 토크쇼 예고편 [3] update 상수 2024.04.25 142
126059 요즘 듣는 걸그룹 노래 둘 상수 2024.04.24 124
126058 범도4 불호 후기 유스포 라인하르트012 2024.04.24 178
126057 오펜하이머 (2023) catgotmy 2024.04.24 77
126056 프레임드 #775 [2] Lunagazer 2024.04.24 28
126055 커피를 열흘 정도 먹어본 결과 [1] update catgotmy 2024.04.24 161
126054 [넷플릭스바낭] 몸이 배배 꼬이는 3시간 30분. '베이비 레인디어' 잡담입니다 [6] 로이배티 2024.04.24 299
126053 프렝키 더 용 오퍼를 받을 바르셀로나 daviddain 2024.04.24 40
126052 넷플릭스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감상 [6] 영화처럼 2024.04.24 205
126051 "韓, 성인 문화에 보수적"…외신도 주목한 성인페스티벌 사태 [6] update ND 2024.04.24 34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