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주에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신의 소녀들'을 봤습니다. 좋았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도 리얼리즘의 어떤 경지를 보여주는 듯한데, 엔딩 크레딧을 보니까 다르덴 형제가 제작에 참여했더군요. 역시 고수들끼린 뭔가 통하나봐요. 서로를 사랑했던 두 소녀가 진심으로 상대방을 자신이 생각하는 악의 구렁텅이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안달하고, 그 때문에 일어나는 가치관의 충돌이, 빈곤과 그로부터 비롯된 차별 등으로 얼룩진 병리적인 루마니아 사회상과 엮여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이 안타까워서 보는 내내 굉장히 답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양쪽 중 어느 편도 들지 않다가 의사의 입을 빌어 따발따발 총알처럼 종교를 비판하기도 하고, 나중엔 양쪽을 싸잡아다 흙탕물을 끼얹기도 하는 크리스티앙 문주의 태도도 좋았어요. 꾹꾹 참고 지켜보다가 도저히 못 참겠단 맘에 조그만 반항이라도 해보는 듯한 그 태도요.

 

2.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파우스트'도 봤습니다.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권력 4부작의 마지막 편인데, 제가 봤던 '더 선'과는 전체적인 느낌 자체가 많이 다르더라고요. 롱테이크를 많이 쓰고 대사도 적었던 '더 선'과 달리, 장면장면의 호흡도 길지 않은 편이고 쇼트 길이들도 짧고 대사는 거의 끝없이 쏟아지는 수준입니다. 권력 4부작의 지난 세 편과 달리 19세기의 허구의 인물을 다루면서 권력욕의 시작을 다룬다는 점에선 일종의 프리퀄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와는 달리 빈곤의 뻘밭 같은, 삶과 죽음의 가치가 전도된 듯한 세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해결 못하던 파우스트가 식욕, 정욕 등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들을 하나하나 훑다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권력욕에로 이끌리는 그 과정을 그립니다. 빈번하게 등장하는 왜곡된 장면은, 권력욕으로 굴러떨어지게 될 위태위태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좁은 문'의 비유도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성경 속의 '좁은 문'과는 정반대의 뉘앙스로 쓰이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그 좁은 문, 좁은 길을 통과했다면 마땅히 이르러야 할 '구원'의 자리에서 튀어나오는 결말이 그런 식이니까요... 전체적으로 시각적으로 확 잡아끄는 이미지들이 종종 등장해서 지루할 새는 없었지만, 좀 어렵게 느껴지긴 했습니다ㅠㅠ

 

3.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마린스키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3D 공연 실황도 봤습니다. '지젤' 실황도 재미있게 봤지만, 아무래도 익숙한 곡들이 많이 나오는지라 '호두까기 인형'은 그보다 훨씬 재미있게 봤습니다. 1, 2막도 눈 돌릴 새 없이 몰입해서 봤지만, 역시 3막이 진리네요ㅠㅠㅠ 아직 제가 발레에 익숙지 않아서 발레를 예술적인 시각으로 보기보다는 기예 보듯 '우와, 어떻게 저런 게 되지?'하면서 보는 쪽에 더 가깝고 그래서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래도 보는 내내 정말 행복했습니다.

 

4. 오늘 가족들과 '26년' 보고 왔어요. 솔직히 상영관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이 영화가 정말 잘 만든 영화이길 바랐는데, 제가 요즈음 극장에서 본 영화들 중에서 완성도로만 따지자면 가장 안 좋은 축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일부러 평 안 좋은 영화들은 피해서 보는 편인데, 이 영화는 '이 소재'로 만들었으니까 봐야지 생각하고 있던 차에 가족들이랑 보려던 영화를 고르다 본 거였는데... 아... 미술감독 분이 짧은 시간 내에 만들었다는 게, 영화 내에서 티가 좀 난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오돌또기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파트는 개별적으로 놓고 보면 연출도 영화 통틀어 가장 빛나고 좋았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썩 잘 어우러지는 느낌은 아닙니다. 그 이후 영화 초중반은 특히 장면들이 시작하고 끝나는 그 타이밍이나 장면 배치 같은 데서 뭔가 이상하다 싶은 부분들이 꽤 있었어요. 원작에 비해 인물도 줄이고 설정도 좀 바꾸고 하면서 교통 정리를 좀 하려 한 것 같긴 한데, 인물들은 평면적이고 전개는 여전히 산만했어요. 그나마 영화 내에서 재미있었던 부분들은 대개 강풀 원작에 빚을 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론 강풀 원작도 여러 가지 단점이 있었지만 연출력으로 그 단점들을 상쇄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연출에서 결점들이 좀 드러나면서 그런 부분에서조차 힘이 달리는 느낌이었습니다.  클라이막스도 원작과 달리 인물들이 감정을 다 토해낼 때까지 일부러 질질 늘어뜨리는데, 개인적으로 여기서 영화가 터뜨리는 그 감정들을 영화를 보고난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좀 더 깔끔하게 갔다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정말 잘 만들길 바랐던 영화라 더 아쉽네요/

 

5. 연아신은 역시 연아신이네요. 그런데... 제가 친구랑 카톡하다 장난으로 '아, 김연아랑 결혼하고 싶다' 했더니 김연아가 갑자기 넘어지고 '연아님, 그리고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라는 톡을 보내니까 200점 넘네요. 좀 슬퍼요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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