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18 13:02
이택광의 정리글 입니다. 가장 정확한 분석을 하고 있는듯 하여 옮겨요!
강조는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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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김규항이 한겨레에 기고한 이 칼럼이었던 모양이다.
오류와 희망
이에 대해 진중권은 의 고정칼럼난을 통해 '공식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 중에서 압권은 다음 글이다.
유토피아와 좌파 바바리맨
사실 나는 이 글을 뒤늦게 읽었는데, 무슨 메니페스토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진중권의 글은 일부 '팬'들에게 '감정싸움'처럼 보였던 이 논쟁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진중권 특유의 '정리'가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역시 진중권은 논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정도에 견줄 만한 사람은 유시민 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데, 여하튼 김규항은 지금 진중권의 페이스에 말려 들었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다. 이번에 김규항이 블로그에 게재한 "이상한 나라의 진중권"을 보면 사실이 더 명확해진다.
물론 페이스에 말려 들었다고 김규항이 손해를 보고 있는 건 아니다. 이 논쟁에서 승자나 패자는 기대하기 어렵다. 김규항과 진중권이 대변하는 각각의 입장은 한국 사회에 '실존'(existenz)하는 '한 줌의 좌파'를 규정하는 해묵은 두 가지 태도들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쟁으로 인해 각자 상처를 입긴 하겠지만, 두 사람이 의미 없는 '감정싸움'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 논쟁은 '사회주의 vs. 자유주의'처럼 보이지만, 진중권의 칼럼이 명쾌하게 보여주듯, 사실은 '근본주의 vs. 실용주의'이다. 물론 여기에서 근본주의나 실용주의는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맥락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특히 여기에서 말하는 '실용주의'는 이명박 정부가 내걸고 있는 '중도실용노선'과 전혀 관계가 없다.
김규항은 80년대의 용어법으로 진중권을 '자유주의자'라고 규정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진중권의 노선은 사민주의를 지향하면서 방법론적으로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것에 가깝다. 아무리 좋은 이념이라도 현실에서 타당성을 갖지 않으면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그의 주장에 짙게 배어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여기에 비한다면 김규항은 사회주의라는 원칙에 충실해야한다는 '믿음'을 강고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근본주의에 가깝다. 근본주의와 실용주의가 싸우면 실용주의가 이긴다. 이게 역사의 법칙이었고, 이런 측면에서 논쟁의 추이는 진중권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김규항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나는 '사회주의'라고 고집하는 그의 용어를 '공산주의'로 수정해주고 싶고, 80년대 사회과학서적을 벗어나기 위해 참고문헌목록을 좀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논쟁을 계기로 이른바 한국의 좌파들은 더 이상 '자유주의'라는 용어를 80년대적인 '욕설'로 사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근대주의'의 정치기획화이다. 최근 최장집 교수가 자유주의를 재평가하자는 주장을 펼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이 논쟁이 감추고 있는 또 다른 측면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문제는 자유주의라기보다 근대주의이다. 이 근대주의의 정치적 기획은 '정상국가'에 대한 요구로 현실화할 수 있다. 진보신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문제는 '사민주의 vs. 자유주의'가 아니라 포괄적으로 근대주의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런 점에서 진중권이 주장하는 '시민상식'도 근대주의적 기획에 대한 요청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사민주의는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근대주의적 정치기획'에 포함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이다. 사민주의가 오고 사회주의가 오는 게 아니라, 근대주의적 기획 내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한 '다른 체제'가 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에게 이름을 먼저 붙이는 부모가 없지 않아 있지만, 모든 새로운 생명은 언제나 '이름' 없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름 붙이기에 열중하는 것보다, 새로운 생명을 위한 산파 노릇을 자임하는 것이 좌파다운 사명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출처 - 이택광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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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8 13:20
2010.08.18 13:27
2010.08.18 13:39
2010.08.18 14:04
그런 점에서, 이택광의 시각, 애시당초 근본주의 vs 실용주의의 논쟁이었다고 보는 게 타당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굵게 강조된 부분 중 "근대주의적 기획 내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한 '다른 체제'가 출현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주장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 힘드네요. 근대주의의 완성 이후에 다른 대안이 가능하다는 것인지, 근대주의의 완성 전에 다른 대안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인지 불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