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구 선생님의 독특한 어투는 그렇다치고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몇 번 대사가 버벅이기도 했고, 이렇게 쓰기 죄송스러울 정도로 대단하신 분이시지만 느낀 그대로 적네요.

근데 목소리가 너무 힘이 있고 젊으신 부분은 놀랐네요. 깜놀해서 검색해보니 1936년생이시네요.


박정자 선생님은 그야말로 포쓰가 엄청나더군요.

예언자라는 역할의 분량이 너무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 


이후 다른 연기에는 별다른 불만이 없었습니다만 크레온의 부인인 에우리뒤케역의 연기는 확연히 별로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기울어진 무대 바닥과 그곳에서의 집단 군무는 압권이더군요. 우중충하고 기괴한게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연극 후반부에 군무중 여자 연기자분의 상반신 노출은 예상치 못해서 깜짝 놀랐네요. - 중학생도 아닌데 이런데 아직 놀라다니.


2.

안티고네의 행동에는 어느 정도 고상하고 인간의 본성에 의지한 대의가 보여졌습니다. 

맹자가 말하듯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 아가를 보면 누구라도 달려가 구해내듯이 

처참하게 죽은 사람이, 그것도 자신의 혈육이 땅에 묻히지도 못하고 널부러져 있는데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묻어주는게 무어 잘못이란 말입니까? 


다만 그녀를 타박하자면 나라를 이끌어가야 하는 크레온의 입장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는 부분이겠습니다. 

크레온을 비난하기 이전에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하였을까라는 역지사지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리기에 여기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라 생각이 듭니다. 


크레온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물론 이 연극속의 크레온은 어딘가 어두운 면이 있는건 사실입니다. 

두 형제의 죽음을 뒤에서 유도해낸듯한 뉘앙스도 느껴지고, (연극에선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오이디푸스를 몰락하게 한 계기도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와의 합작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이러한 부분을 떼어내고 보면 크레온의 잘못은 그의 권력의 근원이 과연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고민이 없었다는데 있지 않나 합니다.

자신이 옳고, 옳기 때문에 그 어떤 저항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부분. 


사람들은 이승만을 몰아내고도 죽고나면 불쌍하다 생각하죠.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 마음의 쏠림을 이해하고 결에 맞춰 쓰다듬어줄 줄 몰랐던 모습이 그가 감당해야 하는 비극의 원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완벽할 수는 없는 인간이기에 모든 인간은 비극의 씨앗 하나씩은 가지고 태어나는 거라 봐도 되겠습니다.


3.

에우리뒤케가 자기 장남이 죽었다고 할때에 그리스 비극에 충분한 지식이 없던 저는 폴리네이케스를 의미하는가 싶어서 머리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검색해보니 신탁에 동정인 남자가 테베를 위해 죽으면 승리한다하여 자살한 메노이케우스가 크레온과 에우리뒤케의 아들이었군요.

-동정인채 죽다니... 오늘날 태어났더라면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서 볼 수 있었겠습니다. 


4. 

연극을 보고서 돌아보니 동탁과 채옹이 떠올랐습니다. 

동탁이 끝내 죽임을 당하자 채옹은 슬픔의 눈물을 흘려주었습니다. 

명망있고 강직했던 채옹은 그래도 동탁과 함께 국정을 챙겼기에 인간적인 안타까움이 흘러나온 것이지요. 


그것에 분개한 왕윤은 채옹을 끝끝내 죽이고 맙니다. 

이렇게나 꼿꼿한 왕윤이 크레온과는 내용은 다르지만 똑같이 비참한 결말을 맞게되는것이 참 오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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