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잡담....

2013.06.01 23:52

조성용 조회 수:2706


[헤밍웨이와 겔혼]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마사 겔혼은 20세기 지구촌 곳곳의 분쟁 지역들을 취재해 온 종군 기자로 명성을 날렸었는데, HBO 영화 [헤밍웨이와 겔혼]은 그녀와 어네스트 헤밍웨이 간의 관계의 시작과 발전 그리고 결말을 2시간 반 넘는 상영 시간 동안 구식 대하 로맨스 스타일로 장황하게 그려냅니다. 우연히 플로리다의 한 술집에서 만나게 된 계기로 친밀해진 겔혼과 헤밍웨이는 나중에 스페인 내전 속에서 같이 취재도 하고 로맨스도 벌이다가 결국 결혼하게 되는데, 처음엔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잘 어울려 지내는 듯 했지만 마침내 성격 차이로 아웅다웅하다가 헤어지게 되지요. 2시간 정도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를 너무 늘린 게 아닌 가 싶고 페이스 조절이 전반적으로 그리 잘 된 건 아니지만, 니콜 키드만과 클라이브 오웬의 좋은 연기 덕분에 영화는 심심한 편은 아닙니다. 로케이션 촬영 안 한 걸 고려하면 영화 속 시대 분위기는 상당히 잘 조성되어 있는 편이고, 특수효과로 자료 영상과 배우들을 섞거나 연결한 기교는 과한 감이 없지 않지만 좋은 볼거리이지요. (**1/2) 





[아웃레이지 비욘드]

 기타노 다케시의 신작 [아웃레이지 비욘드]는 전편 [아웃레이지]의 결말로부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전편에서 죽은 걸로 처리되었던 오오토모는 사실 그를 아는 형사의 비호 아래 살아남아 남은 형기를 채우고 있는 중인데, 그를 배신한 야쿠자 조직이 너무 막강해져서 사회의 골칫덩어리가 되자 이를 해결하려는 형사의 주선 아래 그는 일찍 출소를 하게 됩니다. 그런 동안 조직 내부에서도 슬슬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전편보단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본편에서도 상황이 이리저리 바뀌는 동안 많은 캐릭터들이 죽어나가고 영화는 이 폭력적인 혼란을 무덤덤하게 바라다봅니다. 그나마 본 영화에선 감정 이입이 어느 정도 되는 캐릭터들이 좀 있지만, 여전히 영화는 냉소적으로 이 난장판을 관조하지요. 굳이 만들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적어도 전 전편보다 본 영화를 비교적 더 편하게 봤습니다. (**1/2)       




[Polisse]

 재작년 깐느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프랑스 영화 [Polisse]는 아동 전담반 소속 형사들을 주인공들로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리저리 굴러가는 걸 보는 동안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데, 사실 영화는 TV 수사물 시리즈 하이라이트 에피소드에 더 가깝습니다. 이들의 일상이 전개되는 동안 크고 작은 아동학대 사건들이 연달아 들어오고, 이 사건들을 처리하느라 바쁜 형사들은 동시에 개인적 문제들로 머리가 복잡하기 그지없고, 그러다가 느닷없이 여러 일들이 터지기도 하지요. 일정한 방향이 없이 이리 저리 둘러다보니 때문에 혼란스러운 때가 간간히 있지만, 상당한 현장감 속에서 그 누구 하나 튀지 않는 배우 앙상블은 칭찬할 만합니다. (***)  





 [일대종사]

 왕가위의 신작 [일대종사]는 시각적으론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20세기 중반 중국을 무대로 한 시대극으로써 의상과 세트는 흠잡을 데가 없고, 엽문을 주인공으로 한 무협 영화로써 초반부 동안 여러 격투 장면들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가면 갈수록 덜컹거리고 산만해지는 가운데 방향을 잃어가고,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싶으면 뜬구름 잡는 티가 절로 나는 대사들을 읊기만 하는 양조위, 장쯔이, 장첸 등의 좋은 배우들은 낭비된 감이 절로 듭니다. 장쯔이는 할만 큼 하는 가운데 우아함을 유지하는 반면, 양조위는 너무 수동적으로 다가오는 동안 장첸의 캐릭터는 삭제해도 별 문제가 없을 정도로 곁다리만 돌기만 하고, 그러다가 어느 덧 영화가 1950년대의 결말에 도달하다 보면 공허한 느낌만 화면 안에 맴돕니다. 그리 나쁜 경험은 아니었지만 너무 진지하게 폼을 잡다보니 아리송하기만 하고, 이러니 [와호장룡]이나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 





[Sightseers]

벤 웨틀리의 [Sightseers]는 한 평범하지만 위험한 커플이 주인공인 블랙 코미디 영화입니다. 늙은 어머니 아래서 늘 억압당해 온 신세였던 여주인공 티나는 최근에 사귄 남자 친구 크리스와 함께 같이 여행을 떠나는 데, 알고 보니 그는 생각보다 얌전한 남자친구는 아니었고 그리하여 이 둘은 [내추럴 본 킬러]가 금세 연상되는 살인 커플로 변모합니다. [갓 블레스 아메리카][슈퍼]와 같은 잔혹 코미디에 상당히 찜찜해 했던 저에겐 본 영화에서 티나와 크리스가 벌이는 짓들이 그리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지만, 각본을 맡은 주연 배우들 앨리스 로우와 스티븐 오램의 연기 호흡은 좋은 편이고, 영화는 그 평화로운 영국 시골 풍경을 무대로 벌어지는 잔혹극에 윌리엄 블레이크 시구까지 곁들일 정도의 짓궂은 유머 감각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원 조크 코미디이니 결말에 가서 김이 빠지긴 합니다만, 그 영국적인 덤덤함을 배경으로 간간히 튀어나오는 잔혹 코미디에 저도 좀 낄낄거렸다는 건 인정해야겠습니다. (**1/2)

 



 [업스트림 칼러]

  [업스트림 칼러]의 감독 쉐인 카러스의 전작 [프리머]를 몇 달 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그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지만 동시에 한 좋은 작은 아이디어를 갖고 저예산 독립영화란 틀 안에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고 복잡하게 풀어나가는 게 마음에 들었지요. 그의 신작 [업스트림 칼러]를 보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잘 파악이 안 되었고 영화도 그걸 자세히 설명하는 데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지만, 영화가 벌레, 돼지, 인간, 마인드 컨트롤, 로맨스, 그리고 의문의 생체 실험과 같은 소재들을 갖고 이리 저리 모호하게 굴려대는 광경은 꽤 재미있었다는 건 말씀드리고 싶군요. (***)  





[위대한 개츠비]

바즈 루어만의 [위대한 개츠비]를 보기 전에 전 F. 스캇 피츠제럴드의 원작 소설을 다시 읽어봤고 그런 다음 1974년 영화를 다시 한 번 봤습니다. 루어만은 분명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하긴 했지만, [물랑 루즈]로 대변되는 그의 과장된 멜로드라마 스타일은 그 요란한1920년대 재즈 시대와 어울리지는 몰라도 피츠제럴드의 간결하고 나른한 산문과 별로 맞지 않습니다. 게다가 피츠제럴드의 소설은 러브 스토리라기보다는 그 화려함 뒤에 있는 얄팍함 그리고 그에 따른 환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어쨌든 간에 초반부의 화려한 요란함이야 눈을 끌고 캐스팅이야 1974년 버전보다 나은 점들이 많지만, 결국에 가선 그럭저럭 괜찮게 본 1974년 버전처럼 권태감 속에서 별 감흥이 남지 않습니다. (**1/2)





 [크루즈 패밀리]

 [크루즈 패밀리]는 기성품입니다. 이야기야 이미 [공룡 시대]와 같은 옛날 애니메이션 영화들이나 아니면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 같은 최근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통해 많이 접해 본 부류이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상당히 익숙하고요. 그런 제 불평에도 불구 [크루즈 패밀리]는 잘 만든 애니메이션인 가운데 판타지 버전의 선사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알록달록한 광경들이나 액션들은 좋은 볼거리고, 그러니 저와 다른 어린 관객들은 즐겁게 시간을 때웠습니다. 비록 보는 동안 문득 장-자크 아노의 [불을 찾아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요. (***)





[분노의 질주 – 더 맥시멈]

  이미 7편이 기획 중일 정도로 부지런하게 질주하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6편 [분노의 질주 – 더 맥시멈]은 전편처럼 스케일 크게 한 가운데 요란하게 부서지는 자동차 액션들로 이야기를 잔뜩 치장합니다. 4편에서 죽었던 토레토의 옛 여자 친구 레티가 실은 살아있는 가운데 토레토 일당과 크게 다르지 않는 범죄 조직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란 게 전편 끝에서 보여 졌었는데, 이 정보를 입수한 연방 요원 홉스는 5편에서의 난장판 이후로 은퇴 중인 토레토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완전 사면을 조건으로 토레토와 그의 일당들은 홉스의 요구를 수락하고 그리하여 그들은 런던에서 레티가 속한 범죄 조직과 대치하게 되지요. 4편에서 죽은 캐릭터를 다시 등장시키다 보니 당연히 억지 설정들이 있는 가운데 이야기 자체도 그리 좋은 건 아니지만, 어이없고 황당하기 그지없는 자동차 액션 장면들은 잘 만들었고 배우들 중 몇몇은 육체 액션에 기꺼이 몸을 날립니다([헤이와이어]의 지나 카라노와 [레이드: 첫번째 습격]의 조 타슬림이 조연으로 나옵니다). 그나저나, 결말에 다다른 후 영화는 시리즈 순서를 좀 더 말끔히 정리하는 가운데 7편의 악당을 예고하는데, 그에 따른 모 배우 등장에 낄낄거리지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2) 


P.S.

 시리즈가 가면 갈수록 더 질주해대니 몇 년 후 10편이 나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환상 속의 그대]

간단히 평하자면, 제목이 주는 인상과 달리 영화는 상당히 현실적이고 우울한 드라마입니다. 보기 편한 건 아니지만, 그 우울함 와중에서도 유머가 있는 가운데 배우들 연기도 좋고, 좀 어안이 벙벙한 기분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주인공들 감정에 공감하게 됩니다. (***)





 [비포 미드나잇]

  18년 전 [비포 선라이즈]에서의 그 짧은 로맨틱한 만남, 그리고 9년 전 [비포 선셋]에서의 재회와 그에 따른 로맨스의 재시작 가능성에 이어 [비포 미드나잇]은 로맨스의 종착점에서 주인공들을 바라다봅니다. 전편에서 파리를 떠나기 직전 셀린과 다시 만나게 되어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그녀의 아파트까지 가게 된 제시는 결국 비행기를 놓쳤었고, 9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은 쌍둥이 자매가 딸린 커플이 되었습니다. 전보다 더 현실에 찌든 가운데 이제 그들은 40대 아줌마와 아저씨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같이 있는 게 좋고 그들의 대화 장면들은 보는 동안 절로 흥이 납니다. 그러다가 둘 만의 낭만적인 밤을 보내려고 시도하는 동안에 이들 관계 속에 있었던 불만과 갈등들이 좁은 공간 안에서 표출되고 그러니 둘 사이에 상당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진행시키면서 분위기를 노련하게 조율해가고, 자신들 캐릭터들과 함께 늙고 성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줄리 델피와 이든 호크 간의 연기 호흡은 근사합니다. 비록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로써 멋진 영화이긴 하지만, 이것으로 이들 인생사가 종결된 건 아니니 9년 후에 또 이들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1/2)





[애프터 어스]

비록 바닥을 치지 않았지만 [애프터 어스]는 올해 블록버스터들 중에서 가장 밋밋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빈약한 점들이 군데군데 눈에 띠는 설정, 단조롭게 전개되기만 하는 이야기, 그리고 이런 나쁜 조건 하에서 나오는 별 설득력이 없는 연기 등 영화 속 단점들은 한두 개가 아니고 이러니 영화를 보는 동안 제 머리는 멍해져만 갔습니다. 적어도 영화는 M. 나이트 샤말란의 전작 [라스트 에어벤더]에 비하면 재난 급은 아니고, 그러니 저는 그가 옛날처럼 괜찮은 영화들 만들 수 있는 때가 오길 살짝 빌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 가능성이 날로 줄어가고 있지만 말입니다. (**)




 [스타 트렉 다크니스]

 전편을 통해 스타 트렉 시리즈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재부팅했던 J.J, 에이브럼스는 본 영화에서도 또 준비 운동을 합니다. 지난번에 시리즈 배경과 캐릭터들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가운데 그 안에서 잘 놀았지만, 이번에도 그 안에서 또 한 번 요란하게 노는 거지요. 이야기가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가는 동안 영화가 너무 좀 액션에 치중되지 않았나 하는 감이 들기도 했지만,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좋은 가능성들이 많이 엿보이고, 그러니 엔드 크레딧을 보는 동안 절로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어 집니다. SF 영화라기보다는 액션 영화에 더 가깝지만,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모험을 시작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가운데 영화는 지루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저와 실험실 동료는 기분 좋게 상영관을 나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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